데이터 심의위원회, 과반수 이상 외부인원 구성···음성정보 본인 동의 없이 연구 못해
김종엽 센터장 "단체별 정보 소유권 주장 앞서, 완벽한 교과서 위한 사회적 합의 절실”

[의학신문·일간보사=진주영 기자] 의료기기 개발에 활용되는 인공지능(AI) 보건의료 데이터에 대한 가명처리 등을 심의하는 ‘심의위원회’가 외부 위원으로 절반 이상이 구성돼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업계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의료기기중개임상학회가 지난 27일 개최한 2020 추계학술대회에서 김종엽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장이 의료기기 최신 규정 동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대한의료기기중개임상학회가 지난 27일 롯데시티호텔 대전 크리스탈볼룸에서 개최한 ‘2020 추계학술대회’에서 김종엽 건양대병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장은 발제를 통해 AI 데이터 활용한 의료기기 개발 관련 가이드라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내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불과 몇 년 사이 1조 단위로 커지면서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AI 빅데이터 기반 독립형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세계시장 예측 현황을 살펴보면, 2018년부터 2025년까지 기준 소프트웨어 50.1%, 하드웨어 47.6%, 서비스 60.7%의 성장률을 기록한 바 있다.

연도별 논문 현황에서도 지난 2015년에는 논문수가 1459건에 그친 반면 2019년에는 5584건으로 약 4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듯 AI를 활용한 의료기기 연구개발이 한창인 가운데, 최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주목받고 있다.

복지부에서 발표한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관 내 가명정보를 활용하고 외부로 가명정보 제공 여부 및 방법 등을 심의하는 ‘데이터 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도록 권고한다.

문제는 데이터 심의위원회의 구성으로 해당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위원이 과반수를 차지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는 점이다.

절반 이상을 외부 위원으로 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르며, 이는 심의 준비기간을 길어지게 만드는 등 인공지능 의료기기 개발 과정을 복잡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김종엽 건양대병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장은 “이전에는 IRB를 통해 짧으면 2주 안에도 심의가 가능했지만,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이제는 한 달에 한번 회의하는 것도 어려워졌다”며 “가명처리 방법 및 적정성 검토를 위해서는 두 차례 이상의 회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적어도 2달 반 정도의 준비기간이 요구되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런 데이터 심위의원회 구성을 맞추기 힘들어 IRB위원회를 운영하는 많은 기관에서 위탁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며 “복지부에서도 데이터 심의위원회 설치 운영 관련 다소 지나치다는 의견이 접수돼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음성정보의 경우 여전히 본인 동의 없이 연구할 수 없는 점도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됐다.

김종엽 센터장은 “음성정보의 가명처리 가능 여부가 유보됐다”며 “데이터 3법이 만들어진 취지도 병원 내 쌓인 데이터를 활용하게 해주자는 건데, 이미 보유한 음성정보를 활용할 수 없게 돼 아쉬운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절차적·기술적 노력, 판단 과정 통한 면책 여부 결정 바람직

반면 가명처리로 활용한 데이터에 대해 철회를 요구할 경우 거절할 수 있는 권한을 병원에 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미 가명 처리된 가명정보의 경우 재식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가명정보를 통해 식별이 불가능하므로 병원 측에서 개인정보의 처리 정지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또한 악의적인 해커의 공격으로 데이터 유출 또는 재식별이 될 경우, 절차적·기술적으로 적절한 노력을 다했는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면책의 여부가 결정되는 부분도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김종엽 센터장은 “AI 의료기기와 관련 시민단체 등에서 염려의 목소리를 표하고 있다"며 "각자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더 완벽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 의료데이터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쓰일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표를 마치며 “기존의 데이터를 어떻게 연구할지를 생각하는 것보다 이제는 동의를 기반으로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 나가는 고민을 할 때”라며 “디지털 헬스케어도 결국 건강을 위한 것인 만큼 인공지능을 활용해 건강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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