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의료계의 휴진 투쟁이 멈춘 지 석 달이 다되어 간다.

당시 사태가 진정될 수 있었던 것은 소위 ‘의료 4대악 정책’에 대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의정협의체를 구성하여 논의한 뒤 그 결과를 보건의료발전계획에 반영 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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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달이 지난 현재 묘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아직 의정협의체가 운영되지도 않고 있으며, 단지 협의체 운영을 위한 실무협의만 두 차례 가진 게 전부인데 그 사이 정부는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을 위한 기관을 공모하고, 시범사업의 세부 지침까지 확정 발표했다.

이 뿐 아니다. 의료계가 가장 우려하는 공공의대(국립공공의전원) 신설계획도 내년도 예산안을 통해 추진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복지부는 공공의대 구축운영 사업비(설계비) 명목으로 내년도 예산안에 2억3000만원을 반영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는 지금 국회에서 논쟁 중이라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첩약 급여화사업과 함께 모두 ‘의정협의’ 사항인데 정부가 독단적으로 끌고 가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

물론 정부와 여당은 앞뒤 배경을 설명하며 사안별 해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와 여당의 속내다. 공공의대 관련 예산의 경우 아직 대학 설립방안에 관한 법안도 통과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마당에 복지부 장관은 “의정협의체에서 합의되고 관련 법안이 구성 된 뒤에 예산을 집행한다는 부대의견을 달아서 통과시켜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여당 또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예산안은 통과시키는 게 맞다’고 야당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는 누가보아도 ‘공공의대 신설 계획에 변함이 없다’는 정부 여당의 의도를 공공연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분명, 지난 9·4 의정합의문에는 의료현안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도 국회 내 협의체를 구성하여 제반사항을 논의키로 하는 정책협약에 서명했었다. 그랬기에 의협은 제기된 의료현안에 대해 사실상 당정 모두로부터 ‘원점에서 논의한다’는 약속을 얻어낸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금 벌어지는 상황은 의료계의 이해나 정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특히 최근 불거진 이들 두 가지 민감한 정책을 정부가 그대로 밀고나간다면 ‘이는 기존의 정책을 고수하려는 못질'로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에 의료계가 일련의 정부행태에 발끈하며 웅성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9·4 의정합의’는 ‘대화로 풀자’는 원칙이 담겨져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의협이 제기한 4대 현안에 관해서는 ‘협의의 정신’을 살려 타협한 뒤 추진하는 것이 맞다. 만약 정부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의료계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이고 의료계를 비중있는 협상의 파트너로 의식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의료계도 정부 시책에 감성적으로 맞서기 보다는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한다. 그리고 대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신뢰이며, 협상의 기법이 아닐까 싶다. 지금 세상은 '코로나 19'가 재확산하여 뒤숭숭 하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의료계가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와 협력에 나서 정책의 선순환을 이뤄나간다면 국민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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