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13>

[의학신문·일간보사] 신장결석과 천식으로 점차 건강이 쇠하고 있던 과체중의 존 아버스넛은 절친 포프에게 물음의 편지를 보냈다. “왜 글을 쓰는가?” 셰익스피어 버금가는 작가로 평가받는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긴 시(詩) 『아버스넛 박사에게 보내는 서신(Epistle to Dr. Arbuthnot)』으로 답했다.

“내가 왜 글을 썼는가? / ....... / 뮤즈는 아내가 아닌 친구를 편하게 해주었지, / 이 긴 질병, 나의 삶 내내 나를 도우려 / 아버스넛! 당신의 예술과 돌봄을 북돋우려” - 『아버스넛 박사에게 보내는 서신』 중에서 - [필자 번역]

풀이하면, ‘아내를 사랑하듯 개인적 이유로 글을 쓰는 게 아니오. 아버스넛, 자네와 같은 친구가 나의 글을 즐겨 읽어주기 때문에 글을 쓰오.’라는 뜻이다.

아버스넛(출처. Wellcome Images)

존 아버스넛(John Arbuthnot, 1667-1735)은 스코틀랜드 작가이자 수학자이며, 앤 여왕의 왕실 의사였다. 아버스넛은 스코틀랜드의 킨카딘셔(Kincardineshire)에서 성공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애버딘의 마리샬(Marischal)대학과 옥스퍼드대학에 다녔다. 런던으로 이주하여 유력 인사의 아들 가정교사로 일하다 다시 옥스퍼드로 옮겼다. 옥스퍼드에서 스물일곱 살부터 개인적으로 의학을 공부한 후, 이년 후 세인트 앤드류대학에서 논문이 통과되어 의학 학위를 취득했다.

수학과 통계에도 실력과 재능이 뛰어난 아버스넛은 서른일곱 살에 왕립 학회 펠로우로 선출되어, 왕립학회 위원회에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과 함께 활동했다. 같은 해, 앤 여왕과 그녀의 배우자인 덴마크의 조지 왕자가 엡소 온천을 방문하던 중, 천식과 통풍을 앓고 있던 조지 왕자가 별안간 아팠다. 마침 그곳에 와 있던 아버스넛이 진료하게 되었다. 우연이었다. 현장에서 진료 능력을 인정을 받아 왕실 상임 의사로 임명받았다.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 숙소도 제공되었다.

1713년 앤 여왕은 오른쪽 허벅지의 농양과 고열과 급성으로 심하게 아팠다. 온갖 처방으로 치료했으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스넛은 여왕의 병세를 학질로 오진하여 키니네 성분을 투약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여왕은 다음 해 서거했다. 그 후 첼시 왕립 병원의 책임자로 진료를 계속했다.

아버스넛은 존 불(John Bull)이라는 전형적인 영국인 캐릭터를 내세워 정치를 풍자한 『존 불 팸플릿』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스위프트(Jonathan Swift), 《거지 오페라》로 유명한 시인 극작가 게이(John Gay) 등과 스크리블레러스 클럽(Scriblerus Club)을 결성하여 당시의 저속한 취미를 풍자하고 꾸짖는 책을 발간했다. 『마티누스 스크리블레러스의 회고록』은 가공의 유식한 바보 마르티누스 스크리블레러스를 내세워 아버스넛이 주로 쓰고 스위프트와 포프가 일부 가필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버스넛은 『인체에 미치는 공기의 효과에 대한 에세이』 등의 여러 진보적 의학 작품도 썼다.

아버스넛의 풍자는 스위프트나 포프의 풍자보다 더 따스하고 유머러스하다고 평가받는다. 스위프트는 "아버스넛 박사는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재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인간성은 바로 그의 재치다.”라고 평했다. 또한 워싱턴포스트지가 지난 인류 천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과 최고의 작품을 남긴 작가로 꼽은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도 찬사를 보냈다. “자신의 직업에 능숙하고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 과학에 정통하고 고대 문학에 정통하며, 밝고 활동적인 상상력이 넘치는 그 엄청난 지식에 생명을 불어넣을 줄 아는 재치가 뛰어난 학자. 그 재치는 다사다난한 삶 속에서 고귀한 종교적 열정을 유지하고 발견해내는 그런 재치다. 그는 독특한 천재(unusual genius)다.”

아버스넛은 포프와 서신 교환 후 일 년 뒤, 지병의 악화로 예순일곱 생을 마감했다. 아버스넛의 이름을 한 편의 시 『아버스넛 박사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불멸화(不滅化)시킨 포프는 아버스넛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모든 아픈 사람에게 좋은 의사였으며, 건강한 사람에겐 더 좋은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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