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혁신은 결국 아이디어 싸움이다!

서로 다른 업종-직군 교류 통해 새로운 가치창출 가능
R&D-상업화 위한 막대한 자본과 두뇌 단독 확보 한계
열린 생각·대화 땐 글로벌 기업 노하우 흡수 기회 생겨

김동우

- 김동우 메드트로닉코리아 사업개발 상무

[의학신문·일간보사] 의료기기 산업은 전통적으로 선진국들의 각축장이었다. 전 세계 시장규모를 2019년 기준 440조원 정도로 봤을 때, 상위 10개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8%에 달한다.

또한 전 세계 시장의 절반에 가까운 190조 규모 시장을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그 10개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적잖이 고무적이다.

대한민국 의료기기 산업의 규모와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근 6년간(2014년부터 2019년까지) 의료기기산업 연평균성장률(CAGR)은 6.0%에 달한다.

전세계 평균인 3.9%를 훌쩍 넘는 수치다. 게다가, 세계 10대 시장 중에 우리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나라는 중국(9.3%)뿐이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 의료기기산업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추가적인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필자의 주변 아니 우리 의료기기산업 전반으로 시선을 넓혀 봐도, 당장 우리 산업 현실에 만족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확신하는 이는 많지 않다. 명암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10대 시장 중 하나로 간주 되지만, 전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1.6% 내외다.

여전히 해외시장으로의 활발한 진출여부에 산업의 미래 혹은 명운이 좌우된다. 게다가 우리 의료기기 기업들의 대다수가 아직 영세하다. 보건의료산업에서 자본과 규모의 중요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치과용 임플란트, 초음파 장비 등인데, 세계적으로 비중과 규모가 큰 순환계, 정형외과 관련 제품 등에서는 아직 약세인 현실도 아쉽다.

언제나처럼 우리가 처한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자본은 물론 인력과 상업화 경험, 해외진출 역량과 노하우까지 부족하다. 아이디어와 열정만으로 메꾸기 힘든 갭이 존재한다.

외부 환경도 나빠졌다. 일단 유럽시장의 인허가 기준이 한층 강화 되면서 국내 기업의 해당 시장 진출이 더 어려워졌다.

여기에 중국 의료기기 산업이 질적 양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 특유의 규모와 가격 경쟁력에, 첨단기술 분야의 약진까지 더해졌다.

국내 의료기기를 비롯한 보건의료산업이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대안으로서, 요즘 흔히 언급되는 것이 개방형 혁신이다.

개방형 혁신은 적어도 보건의료산업분야에서는 필연에 가깝다. 일단 연구개발과 상업화 과정에 엄청난 자본과 고도의 인적자원이 필요한데, 이것을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업 자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럼 개방형 혁신은 단순히 기업간 특히 큰 기업과 작은 기업 사이의 약속된 분업을 의미하는 것일까.

개방형 혁신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이것이 시장을 주도하는 큰 기업과 작은 기업 혹은 연구소 간에 벌어지는, 기술의 상업화 과정에서의 상호 계약과 거래에 대한 것이란 생각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나, 개방형 혁신이 포괄하는 현실은 이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서로 다른 분야와 직군의 인력이 만나 교류하며 실현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업종간의 만남을 통해 성사되기도 한다. 애플과 구글이 어느 틈에 의료산업의 중심에 서 있다.

정보통신(IT) 분야 대표주자의 발 빠른 변신 역시 개방형 혁신의 결과물이다. 미래를 보는 시각과 혜안까지 자본으로 살 수는 없다. 요즘은 모르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IBM의 인공지능 보건의료 솔루션인 왓슨(Watson)도 그런 예다.

우리 회사(메드트로닉)도 본사 차원에서 IBM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이어가고 있다. 메드트로닉의 제품 가운데 중증 당뇨병 환자를 위한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 펌프 등이 있는데, 인공지능 솔루션과 만나면서 환자들에게 더 나은 사용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1형 당뇨병 환자나 인슐린 의존성이 높은 환자의 경우, 당수치가 예상이 어렵게 시시각각으로 바뀌어 환자의 생명이나 삶의 질을 위협한다.

이 환자들을 위해,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은 환자의 운동, 일상습관, 섭식 등 필요한 행위 전반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할 수 있다.

다른 직군간의 개방형 혁신의 예 또한 필자가 속한 회사에서 찾아보겠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의료기기 회사인 메드트로닉 역시 시작은 작은 창고에서 비롯됐다.

창업주 얼 바켄(Earl Bakken)과 미네소타병원 릴리하이박사(Dr.Lillihei)의 짧은 대화는 이 작은 전자기기 수리점의 운명을 바꿔 놨다. 1950년대 부정맥 환자들은 외부 전원에 연결된 거대한 페이스메이커에 의존해야 했다.

그런데 추수감사절 직전 정전 사태로 수술을 받던 아이가 숨지는 등 많은 환자들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사람 간의 대화는, 외부 전원이 아닌 자체 배터리기반으로 구동되는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하다는 의견 일치로 이어졌다.

그렇게 4주 만에 개발된 메드트로닉의 배터리 구동형 페이스메이커는 회사 최초의 블록버스터 제품이 되었다. 서로 다른 분야에 몸 담은 두 사람 즉 의사와 전기 기술자의 열린 대화는, 창고형 수리점이 세계 최대 규모의 의료기기 회사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물론 개방형 혁신의 상당 부분은 기업간 제휴에 대한 것이다. 이 문제로 돌아와서, 단순히 기업간 제휴의 경우도 상호 협력의 방법과 기회는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큰 기업에 판매하고 상업화의 나머지 과정을 맡기는 방법도 있지만, 지분 투자나 공동판매 등 다양한 협력의 방법론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나 연구소들이 해외 거대기업의 노하우를 흡수할 기회가 발생한다.

우리 기업들이 이른바 개방형 혁신에서 보다 최대한의 가치를 뽑아낼 방도를 고민하고, 실천하면 좋겠다. 개방형 혁신은 우리 기업이 단순히 ‘씨앗 공장’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역량을 키워 더 큰 프로젝트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이왕이면 최종 결과물의 주인이 되는) 자생력 확보의 과정이 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이 개방형 혁신의 논의 과정에서 특히 파트너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를 원한다면, 현재 규모가 크거나 성장률이 높 은 분 야에 도 전하는 것도 권하고 싶다.

기지하는 바와 같이 의료기기 산업은 단일 산업이라 부르기 무안할 정도로 서로 완전히 다른 분야들이 매우 복잡하게 공존하고 얽혀 있다.

그 중에 특히 규모와 성장률이 큰 분야들이 존재하는데 이를테면 체외진단이 대표적이다. 순환계 관련 제품, 외과용 수술제품, 휴대형/이식형 진단기기, 로봇수술, 디지털 기반 예방 및 치료와 돌봄 서비스 등등이 유망하다 하는데, 이러한 분야들은 특히나 연구개발 과정을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렵다. 작은 회사들이나 연구소들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다.

의료기기산업에서 개방형 혁신은 아직 채 여물지도 않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로 열린 개념이다. 혁신의 주체가 누구이며, 과정이 무엇이며, 기대 결과가 어때야 하는지를 단정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

당연히 의료기기의 개방형 혁신에 있어 아직 시도되거나 개척되지 않은 방법론이 많이 남아 있다. 방법론을 구상하고 실천하려면, 일단 다양한 분야의 만남과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산·학·병 협의체의 형태도, 다른 업종과 분야 간 대화와 협력도, 무엇이든 좋다. 정부 차원에서 대화협력의 자리와 여건을 마련해 주면 더 좋겠다. 결국 의료기기 혁신은 아이디어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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