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 대한약사회 정책이사

[의학신문·일간보사] 2월 코로나19 확산 초기였다. 약국에선 동나버린 손소독제, 마스크와 같은 방역물품을 구하기에도 벅찬 하루였다. 방역관련 물품들을 구해달라고 연락 중이던 의약품도매업체 담당자들에게서 아침 일찍 다음과 같은 문자가 날아왔다. “00제약사 2월 말부터 약 3개월 판매 정지 예정. 빠른 재고 확보 부탁드립니다.”

약국 약사들이 모여 있는 SNS 채팅창마다 비슷한 내용의 소식들이 올라왔다. 리베이트 적발로 수개월 전부터 행정처분 소식이 들려오던 제약사여서 너도 나도 빠르게 최소 석 달 치 재고를 확보하려 움직였다. 거래하는 4개의 도매상에 순식간에 해당 의약품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주문 클릭을 한번 할 때마다 사이트에서 줄어드는 재고를 보며 마음이 더 급해졌다. ‘일단 많이 확보해두자’라는 심리가 모두에게 발동하고 있었다. 당뇨, 고지혈증 같은 장기 처방되는 만성질환 의약품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쟁여두려니 약값 부담도 컸다.

‘제약사에서 약만 출하가 안 되고, 처방에는 문제없다고 합니다. 약국 운영에 도움되면 좋겠습니다.’ 헛웃음이 나오는 공지였다. 영업정지 소식이 판촉 소식처럼 들렸다. ‘재고 확보’ ‘마감임박’ 같은 딱지를 붙이고 불티나게 팔리는 홈쇼핑 제품처럼 리베이트 적발사의 제품들이 소위 재고 떨이를 했다. 불법을 저지르고 부당 이득을 챙긴 건 제약사인데 업무정지 직전에 의약품 도매업체에 밀어 넣기 해둔 재고들을 엄한 약사들이 사서 떠안고 있었다. 불합리한 줄 알면서도 해당 약이 업무정지 기간에도 처방은 그대로 나온다는 말에 약사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사재기에 동참했다. 결국 업무정지 기간에도 해당 의약품은 약국에서 아무 탈 없이 정상적으로 조제·투약되었다.

홈쇼핑 완판 신화처럼 사재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해당 리베이트 적발사의 영업이익 분석 소식이 들린다. 한 증권사는 해당 제약사가 코로나19 이슈와 무관하게 “1분기 별도 기준 매출액은 지난해 동기보다 42.5% 증가한 2033억원, 영업이익은 90.4% 늘어난 390억 원에 달할 것”이라며 “일부 판매업무 정지(3~5월)로 유통사가 재고 확보를 위해 1~2월 주요 의약품을 선 매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리베이트 적발사의 행정처분으로 ‘판매정지’ 조치는 실효성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사례다. 오히려 그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과 부담을 약사들이 사서 떠안으며 제약사들 배만 불려주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 행정처분은 ‘판매업무정지’가 아니라 ‘요양급여 적용 정지’다. 2018년 우려 속에 사라진 ‘리베이트 약제의 요양급여 적용 정지’ 처벌지침을 정교하게 다듬어 실질적 처벌이 될 수 있도록 되살려야 한다.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이후 리베이트를 근절하려는 국가적·행정적 노력은 비단 의료계의 도덕적 해이 때문만이 아니다. 불법 리베이트 양산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다. 나아가 보험재정 악화를 불러일으키고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제약사들의 불법 리베이트 방식은 느슨한 법망을 피해 나날이 더 교묘해지고 있다. 여기에 실효성 없는 유명무실한 처벌이니 ‘매출 타격은 미미하다’며 리베이트 적발을 가볍게 여기는 제약사들이 생길까 우려스럽다.

- 정수연 대한약사회 정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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