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최근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의료사고와 해당 의료진의 미흡한 조치를 빌미로 특정 정당과 정치인이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에 집착하고 있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일련의 시도가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할지언정, 그간 의료계와의 소통을 거부한 채 행정편의주의적인 1차원적 대안을 마치 궁극적 해결책인 것처럼 과대 포장하여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왜냐하면 수술실에 CCTV를 설치 할 경우 CCTV에 의해 처리되는 영상정보의 주체에는 모든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포함될 수 있어 환자의 알권리와 보건의료 종사자 간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충돌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술을 바탕으로 한 신뢰’가 주축이 되었지만 최근에 와서는 계약적 법률관계로 변모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사망사고 등 중대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점차 환자와 의료진들 사이에 마찰이나 민원이 증가하는 양상이고, 과거와 달리 환자들이 법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법제화되어 강제 시행될 경우 여러 가지 악영향을 예상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은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토대를 제공하여 의료인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의료인 불신 조장-의료분쟁 확대될 소지 커

수술 관련 의료행위는 기본적으로 침습이라는 위해성을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수술실 CCTV 설치가 의무화 될 경우 단순히 환자가 희망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당초 예상 가능한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일지라도 환자나 그 보호자들은 의료진의 과실로 치부하며,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려는 목적으로 자료열람을 과도하게 요청하는 등 의료분쟁을 확대시키는 부작용을 가져다 줄 공산이 크다.

의료진들 역시 환자로부터 감시를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진의 인격권이 무시되고, 직업수행의 자유도가 위축될 수 있으며, 사측으로부터 근로감시의 명목이나 인력을 통제하는 목적 등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고 본다. 나아가 실시간 녹화로 인하여 수술자에게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런 긴장과 스트레스가 경우에 따라 최선의 의료행위를 수행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문제를 꼽자면 수술실 CCTV 설치는 가뜩이나 부족한 외과 의사 부족난을 심화시킬 소지도 있다. 주지된 사실이지만 대다수 외과계열 의사들은 육체적 과로, 잦은 응급수술, DRG를 포함한 저수가 체계 등으로 전공을 기피하여 현재 외과계열 의료진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서 CCTV 설치가 법제화 된다면 ‘수술과정 녹화’도 외과계 전공을 외면하게 하는 제3의 요소로 얼마든지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같은 전망에서 볼 때 수술실 CCTV 설치는 환자 안전을 추구하겠다는 제도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최선의 진료를 받기 어려운 환경이 조장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앞에서 제기한 의료분쟁의 확대 개연성이나 의료진의 진료기능 위축을 넘어 환자의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따를 수 있다고 본다.

환자 프라이버시-개인정보 유출도 큰 부담

CCTV 설치가 법제화될 경우 환자의 내부 장기 또는 신체의 특정부위가 전체 수술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노출되기 마련이다. 이는 환자의 동의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사생활 피해를 야기 시킬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환자의 신분노출은 물론 신체노출을 보호하려는 기존의 환자권리존중 및 보호를 위한 원내 활동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 유출도 크게 우려되는 대목이다. 현재 의료기관에서는 기존 법률에 따라 끊임없이 보안을 강화하고, 공신력 있는 외부조사를 통해 보안인증을 받더라도 실제로 개인정보가 끊임없이 유출되어 수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환자의 신체가 노출되는 민감 정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누적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누적되는 정보가 많을수록 개인정보유출 사고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몰래카메라 설치로 인한 사회적 병폐도 바로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그 수많은 민감 정보의 관리를 개별 병원의 책임으로만 몰아서 강제하고, 관리 부실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CCTV 설치 본래의 취지를 넘어 개별 병원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고,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파장 역시 그 어떤 사안보다도 심각해질 것이다.

따라서 환자안전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은 보다 신중해야 된다고 본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경우 연간 40만 건 정도의 의료과오가 발생하고, 보고되는 적신호사건이 매년 800~900건에 이르러 세계적으로도 의료소송이 많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Joint Commission을 발족하여 자가 보고시스템, 환자안전 활동 강화 등 의료계에서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이미 10여 년 전 ‘의료기관평가인증제도’를 도입하여 3주기라는 평가인증 사업을 진행하며 각 병원들의 진료와 검사 프로세스는 물론 의료의 질 향상과 감염관리체계, 시설환경, 정보 보안에 이르기까지 환자의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의료현장을 개선해 오고 있다. 정부 또한 선순환 구조로 의료 환경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 2016년 환자안전법을 제정하고, 환자안전보고 학습시스템을 개발하여 의료계는 물론 환자나 보호자 까지 환자안전사고를 자율적으로 보고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해 두고 있다. 이를 통해 각 병원들이 전담자로 하여금 보고가 활성화되도록 지속적으로 유도해왔으며, 그렇게 중앙에 누적된 정보들은 다시 분석을 통해 의료계에 주의경보 발령과 함께 개선활동을 제안하는 등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어쨌거나 의료사고는 막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는 안타깝게도 소수지만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생겨나곤 한다. 그렇다고 이런 사고에 대한 대책으로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라는 규제로 막아보겠다는 것은 단언 코 ‘무리한 시도’가 아닐 수 없으며,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소수 적신호 사건 이슈를 이유로 감시와 처벌 기능을 위한 수술실 CCTV 설치를 강제화하겠다는 것은 기존 10여년 간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신뢰관계로 쌓아온 노력을 부정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어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의료계 자정 노력 통한 정책목표 달성이 최선

우리는 그간 사회적인 경험을 통해 강제화 된 형사법이 강력범죄를 감소시키지 못하고, 강제화 된 도로교통법이 사망사고를 감소시키지 못하며, 공직자 감찰기구가 있어도 권력형 비리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을 보아왔다. 이처럼 모든 문제의 해결이 성문화 된 법제화와 벌칙조항에 근거한 처벌일 수는 없는 것이다.

혹시라도 정치권이나 국가의 지도자들 가운데 단기간에 정치적인 성과를 거두고자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를 밀어붙인다면 이는 인기 영합 내지는 욕망 표출에 불과한 것으로 밖에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위정자들이 진정으로 환자안전이나 국민들의 의료이용 편익 또는 의료서비스의 질적인 향상을 걱정한다면 개인병원에서 마취가 필요한 수술을 시행할 때 ‘왜 마취통증의학과의사가 제대로 상주할 수 없는지, 위급한 상황에서 왜 응급의약품이 적절하게 구비 및 활용되지 못하는지, 혈액공급은 어떤 절차 때문에 원활하지 않은지’ 등 근본적인 문제부터 들여다보고 성찰하였으면 한다.

결국 문제의 해결은 근본적인 원인을 함께 고민하고 척박한 의료 환경을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의료계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며, 이러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의료계 내부의 자정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길이 환자안전을 위한 정책목표를 거두는 지름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 김성덕 중앙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 정용훈 중앙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과장
- 류춘근 중앙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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