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태
고려의대 명예교수(소아청소년과)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의사 파업 사태 한복판을 관통하는 단어는 공공의료이다. 의료계에서 40년 밥을 먹다가 은퇴한 필자는 공공의료, 그 정확한 정의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내 나름대로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어진 의료시설에서, 국가 전액 장학금으로 길러진 의료진이, 적정수준 의료혜택을 안정적으로 국민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의료시스템을 공공보건의료 시스템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 공공의료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 의료시설의 90%는 민간이 세운 것이다. 의사가 되는 과정에 정부가 지원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진료는 언제나 최선 최상 진료를 빠르게 제공해야 한다. 공공이라는 단어를 붙일 여지가 없는 의료시스템이다. 100보 양보해서, 국군병원 정도면 시설도 의료진의 수준도 제대로 갖추어진 공공병원이라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아플 때 국군병원에 갔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없다. 심지어 나라를 대표하는 공공의료시설, 국립중앙의료원을 이용했다는 소리도 못 들어봤다. 국가의 기밀 사항이라서 그럴까? 공공의료시설에 대한 불신이 정관계에 폭넓게 자리잡고 있어서는 아닐까?

요즘 ‘카투사와 어머니’ 이야기로 세상이 시끄럽다. 카투사는 군의관진단서를 첨부해 私製병원에서 치료받았다.

진단서에는 경한 질환이라 국군병원서 치료해도 문제없다고 쓰여있다는데, 왜 국내 최고 의료시설 중 하나인 대학병원을 찾았을까? 국군병원에 대한 불신, 즉 공공의료에 대한 불신이 그 바탕에 있다고 보인다. 공공의료에 대한 불신때문에 사제병원에서 치료받은 아들을 감싸준 어머님은 공공의료 확대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정당 대표였다. 지금은 그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 핵심 관료이다. 자신들도 신뢰하지 않는 시스템을 왜 서둘러 진행하려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국민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은 ‘적폐’ 삼성이 운영하는 병원을 불편 없이 이용하려고?

워싱턴에 살고 있는 미국 대통령이 월터리드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는 뉴스를 가끔 접한다. 상원의원들도 이 병원을 이용한다. 국립국군병원이다. 공공병원이다. 미국 최고 시설과 최정예 의료진을 갖춘 병원으로 꼽힌다.

적폐 민간기업 삼성은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세계적 수준의 병원도 운영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집중된 당과 정부는 국내 최고는 커녕, 믿고 찾을 수 있는 공공병원 하나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들도 믿지 못하고, 제대로 관리도 못하는 의료시스템을 왜 이렇게 서둘러 확산하려 하는가?

돈 많이 들어가고 가까운 시일 내에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든 정책보다는, 차라리 마을마다 구급차 한 대와 기사를 배치해 주는 게 효과도 빠르고 고용도 창출할 방법이지 않을까? 공공보건의료 시스템은 공짜가 아니다. 돈 먹는 하마다. 정부가 말은 폼나게 하지만, 지금처럼 제대로 투자는 안 하고, 경영 합리화하라고 달달 볶아 대고, 민간 병원과 무한 경쟁하라고 몰아대는 대한민국 공공보건의료 시스템은 부실한 치장 장비일 뿐이다. 우선 제대로 된 공공병원 하나 운용해보면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요즘 뻑하면 여론 조사하던데 공공병원 이용 만족도 조사도 좀 해보고.... 글쎄 여론 조사는 좀 그렇다.

-정지태 고려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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