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글로벌 개발본부 전무

- 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 글로벌 개발본부 전무·약학박사

[의학신문·일간보사] 오래 전 청와대 보건복지 당국자와 제약업계 임원들이 모여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당국자는 제약산업은 정부가 시장을 보장하는 온실산업과도 같다. 역사가 긴 만큼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연구개발보다는 내수위주의 경쟁과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갖고 있다는 질타를 했다. 한마디로 ‘제약엔 이병철·정주영이 없다”는 것이다.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당국자의 질타가 바로 국민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약엔 임성기가 있다= 하지만 이병철·정주영이 없다는 말에는 동의가 되지 않았다. 한미의 임성기 회장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시작해서 1조 기업으로’ ‘제약업계 나아갈 길을 개척한 큰 별’ ‘연구개발이 없는 제약은 죽은 기업이다’ 등 그를 수식하는 말이 많지만 “나는 늦게 시작해서 빙 둘러갈 시간이 없다”는 사석에서 하신 말씀이 나의 뇌리에는 깊이 박혀있다. 편집국에서 임 회장님에 대한 추모사를 써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럴 깜냥이 되지 않는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모시고 일한 경험이 있는 새까만 후배로서 무작정 고사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추모사보다 그 분 옆에서 느낀 일화를 몇 자 적어 볼까 한다.

까마득한 후배니까 물론 임성기 회장님을 학교에서 뵌 적은 없다. 처음 뵌 것은 30년 전 한미약품이 강남역 근처 목화예식장 자리에 세 들어 있을 때였다. 학업을 마치고 취직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한미 면접을 보게 되었다. 당시에는 사장님이었고 회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들어선 사장실에서 내 눈에 띈 것은 한입 베어 물고 말라버린 샌드위치였다. 초창기시절이라 바쁘고 시간도 없는데다 젊은 친구가 면접을 온다니까 식사도 제대로 못하신 눈치였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고 정감이 있으셨는지 나오는 길에 차비 대신 주신다면서 한미가 제조한 아연이 함유된 종합비타민 두 병을 집사람과 먹으라고 싸 주신 게 첫 만남이었다. 더 인상적인 것은 왜 인체에 아연이 필요한지 마치 약국에 온 손님 대해 듯 자세한 설명과 함께였다.

세월이 흘러 ‘잘나가는 한미’에 입사하고 김포 통진이 집이시면 그리 멀지 않으니 대학은 통학하셨냐고 여쭤 본 적이 있다. 김포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데가 많았는데 무슨 교통수단이 있냐는 대답이 돌아 왔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회장님이 즐겨 드시던 음식이 들깨가루가 솔솔 뿌려진 칼국수여서 싫어하던 임원들은 곤혹스러웠겠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깡촌에서 대학 유학, 약국 개업을 거쳐 거대기업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묵묵한 걸음에도 어릴 적 고향의 맛은 잊지 않은 인간미가 느껴졌다. 개업시절 늦은 저녁 동네 어귀에서 주민들의 조촐한 술자리가 벌어지면 조카에게 약국을 맡기시고 그 자리에 끼어서 한잔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바로 돌아와서 조제를 하셨다니 요즘 말로 음주조제이지만 작은 손님도 그냥 보내지 않는다는 그 분의 열정과 동네주민과의 친화력은 타고 난 것일지도 모른다.

◇신약개발에 열정 쏟아 = 사내 추모사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월요일 임원회의가 시작되면 신약개발에 대한 열정과 끝장 토론으로 ‘연세 드신 임원들은 전립선이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식사하시면서 회장님은 한미약품의 임원은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하셔서 거기다 한 가지 더 있어야 한다고 말씀 드렸다. “그게 뭔데?” 현답이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물으시길래 “체력입니다. 새벽이슬 맞으며 나와야 하는 새벽회의가 힘듭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더니, 나는 이 나이까지 새벽에 지각할까 봐 과일 한 조각도 다 못 먹고 나올 때가 많았는데 젊은 사람이 뭐가 그리 힘드냐고 하시는데 40때의 어린 임원이었던 필자는 ‘아, 찍혔구나!’ 탄식과 함께 ‘오너도 지각 걱정을 하는 구나’ 새삼 알았다.

앞서 말한 재계의 거인들처럼 건설도 모르면서 공사를 수주하고 무모할 만큼의 도전에 성공한 전설적인 사람이 많다. α가 없는데 Ω를 이룬 사람도 대단하지만 전문성을 바탕으로 α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Ω까지 이룬 사람은 더 대단하다고 필자는 그 분을 기억한다. 계획서 하나하나에 본인의 약국운영 경험까지 담긴 의견, 원칙을 양보하지 않는 품질 고집 등은 내 보잘것없는 지식과 직업의식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질 때가 많았다. 한미의 약 라벨의 색깔을 아시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스카이블루인데, 어떤 날은 이 색도(色度)가 다르다고 지적하신 적이 있다. 그 세심한 지적에 혹자는 ‘별걸 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매출보다는 한미다운 의약품을 원하는 그 분의 집념을 느꼈다. 나는 ‘한미블루’라고 명명된 독특한 색깔을 아직도 기억한다. 골프를 배우실 때 연습장 주인이 새벽 일찍 나오지 못하면 내가 열어 줄 테니 아예 열쇠를 맡기라고 하신 일화는 업계의 회자되는 유명한 얘기다.

◇‘제약강국’ 바통 잇자= 한미를 사직하던 날, ‘내게 배웠으니 어디 가든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야’란 회장님의 짧은 말씀에 “학교에서 배운 시간, 사회에서 배운 긴 세월보다 더 많이 배우고 갑니다”라고 대답했다. ‘한미사관학교’ 졸업장 수여를 대신한 덕담의 힘인지 필자는 아직 업계에 몸담고 있다. 임 회장님의 정신을 배운 사람들이 대한민국 제약강국의 꿈을 가장 앞줄에 서서 이루리라 믿는다. 선배이자, 보스이자, 스승이었던 고 임 성기회장님 영전에서 이제는 편히 쉬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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