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의료계의 파업지형이 안개속이다. 접점을 찾기는커녕 정부는 ‘법대로 대처 하겠다’는 강경대응 기조이고, 의사협회도 ‘총파업 불사’를 외치며 밀리지 않겠다는 태세라 ‘강대 강’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안병정 편집주간

알다시피 이번 의료파업은 ‘의대 입학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신설 계획’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정책효과가 10여년 쯤 뒤에 나타날 일 이어서 기성세대 보다 장래를 불안하게 여기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에 의사협회가 주도한 파업 투쟁에 이들 젊은 의사들이 선봉에 서게 된 것이고, 젊은 의사들이 절규하자 선배와 스승인 전임의와 교수 사회도 거들고 나서 복잡한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일단 의협의 2차 파업은 오늘 끝나지만 아직 총파업 카드를 접지 않았고, 전공의와 전임의들은 더욱 격앙되어 있다. 의대생들도 국시 거부 및 휴학 불사를 외치며 물러서지 않을 태도여서 의‧정 사이에 극적인 합의가 없는 한 파국이 장기화 될 소지도 있다.

솔직히 말해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된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계획안’은 정치권에서 먼저 꺼낸 카드이다. 이 소식은 그동안 ‘문 케어’에 이어 첩약 급여화 시책과 원격의료 추진 계획 등으로 울고 싶었던 의사들의 뺨을 때려준 격이 되었다. 이에 의사 지도부가 휴진투쟁에 나섰고, 여기에 열정 넘치는 젊은 의사들이 가세하여 파장이 커진 것이다.

결국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파업의 강도가 높아지자 정부는 ‘코로나’ 재 확산이라는 엄중함을 내세워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는가 하면 집단휴진 주도자에게 공무집행 방해죄를 적용하겠다고 하는 등 과거 공안정국 때나 볼 수 있던 풍경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더 안타까운 일은 파업이나 휴진 투쟁은 기성세대 의사지도부가 주도했는데 정작 전장에서는 전공의 등 젊은 의사와 학생들이 방패 막 내지는 총알받이로 내몰린 것 처럼 비춰진다. 물론 이들을 투쟁의 동력으로 삼고자 한 것은 아니겠지만 상황만큼은 씁쓸하다. 이러다 순수한 열정으로, 아무런 계산 없이 정의를 외치는 젊은 의사들만 희생될까 걱정이다.

그러나 이번 의료파업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당장 써 먹지도, 급하지 않은 시책을 들고 나와 이를 고집하여 분란의 빌미를 준 당국의 책임도 크다. 따라서 원인 제공자라고 할 수 있는 정부와 정치권이 문제해결에 보다 적극 나서야 한다고 본다.

특히 이번 사태의 본질인 ‘의사인력 증원 시책’에 대한 옳고 그럼에 대해서는 지난 협상과정에서 충분히 이해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원칙을 뒤엎을 수 없다’거나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그 간의 협상 태도는 온당치 않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지금까지의 협상에서 미숙함을 돌아보고 다시 협상 테이블에 나와 대한민국 의료의 백년대계와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대타협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에 앞서 정부는 원칙적, 법적 대응 운운하며 빼어든 칼부터 거둬들였으면 한다. 분명한 사실은 젊은 의사들이 뛰쳐나온 것은 의료의 왜곡과 불합리한 각종 의료시책에 대한 환멸에서 였고,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이는 기성세대와 국가가 저질러 온 일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을 나무라기보다 다독이며 설득하여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가 할 일이라고 본다.

그래도 아직은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여기며 정부와 의료계가 다시한 번, 한시 바삐 진지한 대화채널을 가동해 주길 바란다. 협상의 묘를 살려 파업도 종식하고 누구 한 사람 다치는 사람도 없게 한다면 정부나 의료계 모두 명분과 실리를 거두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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