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8>

셜록 홈즈는 스승의 문화적 화신

[의학신문·일간보사] “이런 표현이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셜록 홈즈는 내 대학시절 은사님의 문학적 화신(化身)이다. (……) 교수님은 진료실에 환자가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진단을 내리셨다. 환자가 뭐라고 운을 떼기도 전에 말이다.”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실리어 블루 존슨 저/신선해 역, 지식채널)

에딘버러 의과대학 시절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의 은사는 죠셉 벨(Joseph Bell, 1837-1911)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외과주치의기도 했던 벨은 진단과정에서 꼼꼼한 관찰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였다. 철저한 관찰을 통하여 애매한 질병의 상태와 병명을 얼른 정확히 집어내는 실력도 갖추고 있었다. 이를 시범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종종 낯선 사람을 지목하여 외모나 흔적 등 을 면밀히 관찰한 후에 직업과 최근의 활동 등을 알아맞히곤 했다. 범죄수사에 과학적 기법이 널리 쓰이지 않던 때에 그러한 방법을 구사했던 벨 교수는 법의학, 특히 법의 병리학의 개척자로 인정받고 있다.

코난 도일은 벨 교수를 ‘환자를 보자마자 완벽한 진단을 내리던 의사’로 기억했다. 다음과 같은 은사의 말과 함께. “의사는 가장 사소해 보이는 단서까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진단을 내릴 수 있으니까.”

죠셉 벨 교수, 셜록 홈즈(시드니 파젯 그림), 코난 도일(왼쪽부터)

대학을 마치자마자 코난 도일은 영국 포츠머스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환자가 별로 없어서 진료 틈틈이 글을 쓸 여가가 많았다. 몇 편의 단편을 발표하고 나름대로 좋은 평을 받자 좀더 본격적으로 장편소설을 쓰기로 작정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 때였다. 추리소설을 구상하면서 도일은 주인공을 맡을 멋지고 유능한 탐정을 창조해야 했다. 이때 벨 교수를 떠올렸다. 강의실로 걸어 들어오던 40대 초반의 벨 교수를 처음 본 순간, 벨 교수의 외래진료 보조로 배정받았을 때의 기쁨,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 독특한 개성 등이 떠올라 스쳐갔다.

주인공을 설정한 코난 도일은 열정을 쏟아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소설은 3 주 만에 완 성되었다. 드디어 1987년 비튼 크리스마스 연감(Beet on’s Christmas Annual)에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소설 속 주인공은 놀라운 관찰력, 과학적 검사, 논리적 추론을 적용하는 탐정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였다.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매력적 주인공이 탄생하였다. 강의실에서 처음 뵌 교수님을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의대생, 십년쯤 지나 그 교수의 의학적 가르침은 그 학생이 쓴 추리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화신하였다.

셜록 홈즈의 출현이 추리소설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당시 다른 추리소설들이 등장인물의 알리바이에 집중하는데 반해, 셜록 홈즈는 흙먼지, 발자국, 지문 등을 통한 증거로 사건을 풀어냈다. 셜록 홈즈는 영화, 연극, 방송 드라마, 만화, 만화영화 등으로 현재도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많은 사람이 셜록 홈즈를 실존인물로 알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1892년 8월, 아서 코난 도일은 벨 교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선생님, 저는 의심할 여지없이 선생님께 셜록 홈즈를 빚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되풀이하여 가르쳐 깨우쳐주신 추리와 추론과 관찰을 중심으로 주인공을 창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월간지 ‘The Bookman’에 벨 교수가 쓴 ‘셜록 홈즈의 모험’이 실렸다. “…… 코난 도일이 학생시절 받은 교육은 그에게 관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일반의 및 전문가로서의 실습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안목과 기억력과 상상력을 지닌 그와 같은 사람에겐 훌륭한 훈련이었다.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 한꺼번에 기록하고 느낀 인상을 즐겁게 되살릴 수 있는 기억력, 이론을 엮고 끊어진 고리를 함께 잇거나, 얽힌 단서를 풀 수 있는 상상력은 성공한 진단 전문의의 쓸모 있는 도구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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