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혜
대한약사회 기획이사

[의학신문·일간보사] 외과적 수술, 주사제 사용 등으로 의료기관 내 감염관리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논의와 발전이 있어왔다. 하지만 약국의 감염관리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예전부터 보건의료기본법상 약국, 의료기관이 모두 “보건의료기관”이다. 따라서 제5조(보건의료인의 책임)에 의해 감염병 유행 시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다른 보건의료기관에 연계하거나 관계기관에 신고, 통지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약국 감염관리의 중요성은 크게 부각되지 않다가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을 계기로 지역사회 약국(community pharmacy)의 감염관리 역할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대한약사회 역시 ‘재난 관리에서 약사의 역할에 관한 선언문’을 채택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약사는 일반 시민의 윤리 의무를 넘어서 보건의료전문가로서의 도움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약사와 약사회는 국가보건의료체계의 일원으로서 첫째는 평상 시 재난 가능성에 대비할 책임과, 둘째는 재난 발생시 제한된 상황에서 응급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가능한 최선의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참여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였다.

약사와 약국의 입장에서 이번 코로나19는 과연 약사가 국가보건의료 시스템 속에서 감염 관리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실천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를 통해 확인한 약사의 역할을 다시 되짚어 보고자 한다.

먼저 약국은 지역사회 가장 문턱이 낮은 보건의료기관으로서 감염의 확산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호흡기 증상 환자에게 1339 콜센터 또는 보건소를 안내하고, 바로 의료기관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 동시에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도록 하고, 손 씻기 및 마스크 착용들을 대면 교육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두 번째로 약국은 방역관련 물품을 안정적으로 확보, 공급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할은 정부가 컨트롤 타워로서 제약회사, 도매업, 약국을 통해 방역물품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뒷받침해야 가능하다. 실제 코로나19 초기 유행 시 사재기로 인한 공급 불안과 가격 폭등이 있었고, 손소독제, 방역마스크는 약국에서 매입 자체가 불가능 했다. 공급 루트를 찾고, 전화와 대면 응대를 하느라 본연의 조제, 복약지도 업무에까지 차질이 매우 컸다. 어려운 시기를 보낸 뒤 공적 마스크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조금씩 공급 불안이 해소되었다. 그러나 공적 마스크 제도 역시 하루 간격의 급격한 제도 변화, 포장 단위와 규격의 무질서한 공급 등은 향후 보완이 필요하다.

약국이 방역용품의 안정적인 공급처로서 수행한 역할을 살펴보면 눈여겨 볼 지점이 두 가지 있다. 먼저, 약국은 약사라는 보건의료전문가를 통해 제품과 동시에 정보, 교육을 함께 제공할 수 있었다. 실제로 대한약사회에서는 KF80, KF94, 비말차단마스크와 의약외품, 공산품 마스크 등의 차이점과 언제 어느 마스크를 사용해야 하고, 주의사항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공급 규칙에 관한 것인데, 약사들 사이에서 ‘더욱 형평성 있는 분배’가 무엇인지 숙고의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다. 초기 공적마스크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도 일부 약국은 노인 우선, 장애인 우선 등의 나름의 원칙을 세워 형평성 있는 공급을 하고자 했다. 방문자와의 갈등을 감당하면서까지 보건의료기관으로서의 올바른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 것이다. 공적 마스크 제도 시행 시에도 ‘공정하고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원칙을 위해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도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시행하려 노력했다. 또한 약국은 대한약사회를 통해 자정, 감독이 가능했다. 정부가 올바른 정책을 수립해도 직접 수행자들의 의지가 없이는 제대로 시행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방역물품 공급 시스템 마련 시 약국의 가치를 가볍게 볼 수 없는 대목이다.

그 밖에도 약국에 수립된 방역 가이드라인을 잘 준수하여 약국을 통한 감염 확산을 예방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특정 지역의 경우 약국과 의료기관의 폐쇄는 의료 공백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또한 기존 의약품 조제, 복약지도, 부작용 관리 등의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현재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전화 처방이 허용되고 있다. 의료기관의 업무 가중, 휴업이나 폐업 등으로 의료 공백이 생기거나 환자들이 병원 방문을 꺼려 만성질환 관리가 되지 않을 위험이 있을 때는 한시적으로 전화 처방, 처방 리필제 등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약국은 접근성이 가장 높은 보건의료기관으로서 올바른 위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국민들의 위험 관련 지식을 높이고, 유언비어에 휩쓸리기보다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필요하다.

감염병 예방과 관리는 사회 전 부문의 협력이 필요한 과제이다. 국가감염관리체계를 세워가는 데 있어 의료기관만 생각하기 쉽지만, 전국 2만3000여개의 약국이 공적 마스크 공급에 참여했던 사례를 고려한다면 지역사회 약국은 놓쳐서는 안 될 정책 자원이다. 소외되기 쉬운 자원인 약국의 감염 관리에서의 역할을 보완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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