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창
동국대 의과대학 의공학교실 교수
IMDRF AET&NCAR 실무그룹팀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생명과학혁신포럼(LSIF)은 APEC 회원국의 생명과학 및 의료제품의 무역, 투자, 규제를 논의하는 산·학·관 협의체로서, 산하에 규제조화운영위원회(RHSC)와 APEC 규제조화센터(AHC)를 두고 있다.

RHSC는 APEC 지역내 국제적 가이드라인 우수사례를 확산시키기 위해 APEC 회원국의 보건당국 및 업계 대표들이 위원으로 참여해 보건의료 각 분야에 규제조화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관련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RHSC가 우선 사업 영역으로 설정한 의료기기 분야에서 한국은 선도 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중 의료기기 사후감시체계는 2015년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의료기기 감시체계 규제융합을 촉진하기 위한 로드맵(Roadmap to Promote Regulatory Convergence for Medical Device Vigilance)’이라는 컨셉 노트를 제출함으로써 시작됐다. 이 로드맵은 APEC 회원국의 MDV 관련 제도와 실행은 국제의료기기 규제당국자포럼(IMDRF)과 이의 전신인 GHTF, 그리고 AHWP의 지침을 따르도록 규정하며, 이들 지침을 중심으로 교육 및 훈련 과정을 구축‧운영함으로써 모든 회원국에 능동적인 감시체계를 구축함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러한 교육 훈련 활동을 위해 CoE(Center of Excellence)를 지정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NIDS)이 MDV 분야 CoE로 지정을 받아 2018년 9월 AHC와 함께 시범 교육을 공동 개최한 바 있다. 한국을 포함해 13개국의 규제당국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는 IMDRF 가이드라인을 비롯해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사례중심의 토론식 교육 과정을 통해 각국의 규정과 의견을 공유할 수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한 연구팀은 의료기기 규제의 글로벌 조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제언을 남겼다.

첫 번째는 국가간 규제조화를 위한 국제적 기준으로 IMDRF/GHTF 지침 문서가 적합하다는 것, 두 번째는 명문화된 국제 기준이라도 규제 적용 시, 규제 당국자의 개인적‧국가적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동일한 교육과정을 국내 ‘의료기기 안전성정보 사례연구 워크숍’에 참여한 규제당국자, 의료기기 사용자, 의료기기 공급자 등을 대상으로 적용한 결과, 의료기기 이상사례를 인식하고 지침을 적용하는 개인 및 업무분야별 이해관계자의 관점 차이는 보고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본 연구는 의료기기 전주기 중 사후관리 일부에 해당되는 이상사례 감시체계에 대한 연구였지만, 국가간 규제조화를 위해 IMDRF 지침이 통용된다는 것과 규제 적용에 있어서 규제 당국자만의 이해뿐만 아니라 산업계를 포함한 전체 이해 당사자들의 인식의 차이를 좁혀야 국제적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줬다.

왜 IMDRF 지침에 관심을 가져야하나?

우리는 왜 IMDRF 지침과 가이드라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IMDRF는 미국, 유럽, 캐나다, 일본, 호주, 중국, 브라질, 러시아, 싱가포르 등 의료기기 규제당국자로 구성된 국제협의체로, 한국은 2017년 1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을 했다. IMDRF는 IEC나 ISO와 같은 국제 표준을 제정하는 단체는 아니지만 국제적 기준을 각국의 인허가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와 국가간 규제에 대해서 논의한다. 이들 회원국은 전세계 의료기기 시장의 약 85%를 차지한다. 결국 IMDRF의 회원국이 결정한 규제의 기준이 전세계 의료기기 시장에 적용되는 것으로 봐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유럽은 기존의 의료기기 지침(MDD)과 체외진단의료기기 지침(IVDD)을 보다 강화한 의료기기법(MDR)과 체외진단의료기기법(IVDR)을 적용할 예정이다. 개정된 입법 과정은 의료기기 규제기준 및 절차를 설정하는 단계에서 IMDRF 가이던스를 참조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IMDRF의 전신인 GHTF의 설립 당시부터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가이던스의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에 유럽의 기준과 IMDRF의 기준을 병행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 IMDRF 비회원국은 IMDRF에서 일정한 기준이 개발되면 이와 조화되는 자국법의 기준을 마련해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규제 지체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또 이러한 상황은 자칫 국가간 중복 규제나 무역장벽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IMDRF 중심의 규제조화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식약처는 국산 제품의 수출장벽 해소와 의료기기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2년부터 IMDRF 총회에 지속적으로 참가하고 워킹그룹으로 활동한 끝에, 2017년 회원국 가입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그 과정에는 각국의 IMDRF 규제당국자를 국내에 초청, 우리나라의 의료기기제도를 소개하고 의료기기제조업계, 시험검사기관 및 임상시험기관의 현장방문을 추진해 규제의 합리성 및 우리나라 의료기기 생태계 구성원들의 역량을 홍보한 식약처의 노력이 있었다. 그 덕분인지 국내 산·학·연·관 전문가로 구성된 IMDRF 가입추진단은 비교적 단기간에 IMDRF 운영추진단으로 덩달아 승격됐다.

국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기술 표준화는 매우 중요하다. 외국 기술이 표준으로 정해지고 자국 기술이 표준에서 제외되는 경우, 애써 개발한 제품을 외국에 수출할 수 없게 될뿐더러 국내 산업은 외국에 종속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나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국제 표준에 반영하기 위한 표준화 활동은 국제적 무역 장벽을 뛰어넘고 국내시장 보호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또한 국가와 기업은 지속적인 표준화 활동을 통해 네트워킹을 돈독히 다짐으로써 해당 기술 분야의 입지와 인지도를 얻을 수 있다.

국제시장서 생존 위해 기술표준화 중요

규제분야 또한 다를 바 없다. 기술이 있다하더라도 의료기기분야에서는 이를 규제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의료기기 개발, 인허가, 품질관리, 사후관리까지 전주기에 걸쳐 국제적 조화가 요구되는 시기이다. 그리고 이 역할은 표준분야보다 더 신중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따라서 국내 산업계의 기술과 시장을 보호하고, 국민 보건을 지키기 위해 산·학·연·관 전문가가 적극 협력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국제적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미 조직된 IMDRF 운영추진단에 참여한 각계의 국내 의료기기 이해당사자들의 노력과 봉사에 무한한 감사와 박수만 보내기보다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체계가 기대된다.

한국은 IMDRF 후발주자이지만 2021년 의장국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지난 6월 IMDRF 운영위원회에서는 식약처가 회원국 만장일치로 ‘인공지능 의료기기 국제규제 실무그룹(AIMDs)’의 초대 의장으로 선출됐다. 이는 그동안 국내에서 인공지능 관련 기술을 상용화한 국내 기업과 이를 규제에 반영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인공기능 의료기기 허가 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식약처의 역량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국내 의료기기산업 보호와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학계와 산업계가 힘을 모아 식약처의 동반자로서 국제활동에 협력하고 국제 규제에 국내 기업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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