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문화로 읽다<22>

[의학신문·일간보사] 1987년 3월 30일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1889년 작 ‘해바라기’가 3985만 달러(지금 한화로 약 530억원)를 부른 익명의 응찰자에게 낙찰되었다. 이 경매 결과는 곧바로 전 세계에 속보로 타전되었고, 필자도 이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고흐는 생전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을 500프랑에 팔았으면 한다고 했다. 1987년도 환율로 환산하면 대략 125달러 정도라고 하니 100년 동안 약 32만 배가 오른 것이다. 크리스티에서는 이날 밤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으로 장식한 케이크와 함께 자축 파티가 열렸다. 오베르에 나란히 잠든 고흐 형제가 이 소식을 듣는다면 과연 무엇이라 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고흐 ‘해바라기’ 100년간 32만배 올라

경매 당일 이 작품 낙찰자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크리스티 측은 열흘 후 일본 도쿄에 소재한 야스다 해상화재보험회사가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 작품을 구매해 새로운 소유주가 되었다고 언론을 통해 확인해 주었다. 당시 일본은 거품경제의 정점에 다다른 시기로 미쓰비시는 뉴욕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록펠러 빌딩을 사들여 그들의 경제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일본이 막강한 자본력으로 세계 미술 경매시장에 뛰어든 이후 기록적인 경매 낙찰가는 종종 세계 미술계 특종 뉴스가 되었다. 점차 작고 작가뿐만 아니라, 생존 작가의 경매가격도 예상을 뛰어넘는 천문학적 가격에 낙찰되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잠시 주춤했으나, 작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생존 작가인 제프 쿤스의 ‘토끼’가 수수료 포함 9,107만 5천 달러(약 1085억원)에 낙찰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낙찰자가 스티븐 므누신 미국재무장관의 아버지여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경매 가격 급상승 현상은 한국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2007년 국민화가 박수근의 ‘빨래터’가 45억 2천만 원에 낙찰되었고, 2018년 이중섭의 ‘소’가 47억 원에 낙찰되었다. 하지만 한국 경매시장에서 대표 작가는 점화(點畵)로 유명한 추상화가 김환기다. 2018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붉은색 점화 ‘3-II-72 #220’가 85억 원에 낙찰됨으로써 과연 언제 그의 작품이 100억원을 넘기는지가 초유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작년 11월 23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김환기의 ‘우주’가 132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에 낙찰되었다. 드디어 한국 미술 작품가격도 100억원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우주’의 낙찰자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청담동에 소재한 피카프로젝트의 송자호 공동대표라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이는 사실인 듯하다.

이 글과 관련하여 올 3월에 오픈한 피카프로젝트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자사 소개가 눈길을 끈다. 그들은 미술 작품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미적 효용을 주는 소비재의 역할과 일정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수단”으로 정의하며, 궁극적으로 고객에게 안전하고 만족도 높은 고가의 작품을 소유 또는 투자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자 회사를 설립했다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공동구매를 통해 공동소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객은 소비의 행복과 수익의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조성된 자금으로 자신들이 유망한 작가를 발굴해서 현대 미술 시장 흐름에 영향력을 미치고자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서도 미술작품 투자 2006년 시작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미술작품 투자는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 그해 9월 굿모닝신한증권이 국내 최초로 미술작품에 투자해서 수익을 내는 아트펀드 상품을 출시하였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총 75억원 규모로 ‘서울명품아트사모1호 펀드’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펀드는 최소 가입금액이 1억 원으로 만기는 3년 반이며, 목표수익률은 연 10%+α이며, 미술품 매각 수익의 일부를 추가로 지급할 예정으로, 투자 작품 선정은 표화랑이, 펀드 운용은 서울자산운용이 맡는다고 했다. 굿모닝신한증권은 1호 아트펀드의 성공에 힘입어 그 이듬해 2호 아트펀드를 최소 가입금액 2억원에 4년 만기로 출시하여 3시간 만에 완판했다. 하지만 이듬해 미국발 금융위기로 미술시장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이제 ‘미술품가격지수’라는 말은 미술 애호가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프랑스의 아트프라이스와 독일의 아트넷 같은 미술품가격지수 제공업체가 세계 경매회사들의 작품 판매가격 결과를 집계하여 작가의 가격지수 변화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보고 전 세계 화랑과 미술관 그리고 수집가들은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투자할지 결정하는 데 참고한다. 국내에서도 모 언론사가 지난해 ‘K-Artprice’라는 사이트를 개설하여 국내외 주요 작가 200명의 작품가격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 경매가 미술시장을 선도하게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올해 들어 경매회사와 은행이 제휴해서 미술품 담보대출, 경매자금 대출, 아트펀드 같은 금융서비스와 더불어 아트컨설팅도 제공하고 있다. 작품이 아니라 완벽한 상품이 된 듯하다.

소더비-크리스티, 미술 경매시장 견인

지금 세계 미술시장을 이끄는 양대 경매회사는 소더비와 크리스티로 영국에서 1744년과 1766년에 문을 열었다. 그들은 의뢰인의 소장품을 경매에 부쳐 낙찰되면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경매회사다. 그런데 1914년 3월 2일 프랑스 파리의 드루오 호텔에 있는 시립 경매장에서 전례 없는 미술품 경매가 개최되었다. 이 경매는 경매회사가 개최한 것이 아니라, 사업가이며 비평가였고, 미술품 수집가였던 앙드레 르벨을 중심으로 모인 13명의 수집가 모임인 ‘곰 가죽’이 10년간 수집한 작품을 경매에 부친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작품을 구매하는 것은 일종의 투자라고 하였으며, 10년이 지나면 그동안 수집한 작품 모두를 무조건 팔기로 했었다.

그들 약관에 따르면 회원은 매년 1월에 250프랑을 내고, 11명이 내는 2750프랑(1991년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20만 9318달러)이 1년간 작품 구입 예산이었다. 구매할 작품은 르벨이 선정했다. 그는 19세기 말에 작업했던 작가보다는 20세기 작가 작품을 집중적으로 구매했는데 신인이라 할 수 있는 피카소와 야수파 작품이 가장 많았다. 당시 파리에 있는 화랑 중에서 온전히 20세기 작가 작품을 취급하는 화랑은 단지 베르트 베유 화랑뿐이었으니, 르벨이 피카소와 마티스 같은 신인들 작품을 집중적으로 매입한 것은 대단한 모험이라 할 수 있었다. 이는 고수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고질적인 위작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경매에 부친 작품은 모두 145점이었는데, 피카소 작품이 12점이었고, 마티스 작품이 10점이었다. 그날 경매 총 낙찰가가 11만6545프랑이었으니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중 피카소의 총 낙찰가가 3만1301프랑이었고, 마티스는 1만7928프랑이었다. 최고 스타는 단연 피카소였다. 그날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르벨이 1908년 피카소에게 1000프랑에 산 ‘곡예사 가족’으로 예상가 8000프랑을 훌쩍 넘긴 1만1500프랑에 뮌헨의 화상 탄호이저에게 낙찰되었다. ‘20세기 천재 화가’ 피카소의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경매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점은 ‘곰 가죽’의 약관에 따라 경매 이익의 20%를 작가에게 나누어 준 것으로, 이것이 바로 오늘날 추급권의 모태가 되었다. 그 결과 ‘곰 가죽’은 동시대 미술 작품도 상품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고, 추급권 적용으로 작가들에게도 큰 호응을 받았다. 수집가와 작가가 공동의 목적을 달성한 첫 번째 경매였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추급권이란 미술저작자가 원저작물을 최초 양도한 이후 재판매 될 때 수익의 일정 비율을 분배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음원 저작권에 따른 사용료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추급권을 인정하는 나라는 82개국에 이르며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한국 미술시장에서는 작가들의 절대적인 찬성 기류에 반하여 유통을 담당하는 화랑과 경매회사가 시장 위축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같이 상반된 견해는 추급권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시장의 투명성, 즉 정확한 매매 이력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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