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6>

시인 키츠에 영감 준 것은 ‘의학지식’

[의학신문·일간보사] 결핵으로 스물다섯 생을 마감한 천재시인 셸리, 바이런과 함께 영국 3대 낭만주의 시인,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후계자, 가장 잘 알려진 의사시인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년).

아버지는 말에서 떨어져서, 어머니와 삼촌은 알 수 없는 병으로, 형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키츠는 조부모의 주치의였던 외과의사 토마스 해몬드(Thomas Hammond)의 수습생으로 들어갔다. 의사가 되려고 한 동기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위의 권유였다. 처음엔 약 조제, 수술 마무리, 치료용 거머리 준비, 장부 정리 등을 했다. 차차 익숙해지면서 상처 드레싱, 발치, 골절치료 등을 맡았다. 그 후 성토마스병원과 가이병원에서 외과수술 조수로서 고된 수련을 받았다.

존 키츠. 1821년 1월 28일 3시 죠셉 세번 그림. 그는 스무엿새 후 숨을 거두었다.

키츠는 고단한 스케줄 가운데서도 꾸준히 시를 썼다. 첫 시는 19세에 지었다. 이즈음에 시인이야말로 최고의 인간이라는 믿음을 이미 굳혀갔다. 1816년 의사면허시험에 붙었고, 약종상 면허를 취득했다. 그러나 시에 몰두하기로 하고 그해 10월 31일까지만 병원에 근무하였다. 그날은 스물한 번째 생일이었다. 다음 해 첫 시집 ‘시집(Poems)’을 출간했다.

시인 키츠는 의사라는 이유로 적지 않게 가혹한 비판을 받았다. 의사를 시인 아래 품위라고 괄시하던 당시 시단의 풍토가 작용하였다. 한 예로 저명한 비평가 록하트(Lockhart)는 ‘에든버러 매거진’에 익명으로 다음과 같은 조롱을 투고했다.

“키츠는 의료계에 근무할 운명이었다. 몇 년 전에 마을의 이름난 약종상의 견습생이었다. 주린 시인보다 굶주린 약종상이 더 좋고 더 현명하고, 시속에 있는 것보다 완화제와 수면제를 조금이라도 아끼는 것이 더 좋고 현명하다.”

이 조롱은 역설적으로 키츠의 시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즉, ‘키츠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거나 잠을 자게 하는 약처럼 행동하는 시를 쓴다’고 비난했지만, 이는 오히려 ‘키츠의 시는 마약처럼 시학적 힘을 지니고 있다’는 찬사가 되었다. 키츠는 록하트의 비평 후에 발표한 ‘나이팅게일에게 바치는 노래’에서 이 시의 힘을 제대로 드러냈다.

랭커스터 대학의 샤론 러스턴 교수는 키츠 시의 힘을 말한다.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들으면 마치 ‘독미나리’를 마신 듯한, ‘배수구에 멍한 아편을 비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아편이 제공한 해방과 같은 나이팅게일 노래의 아름다움은 일시적일 뿐이며, 결국 쾌락은 사라지고 변화와 소멸은 피할 수 없다.

화자는 필멸의 한계를 받아들인다. 접근할 수 없는 불멸의 힘으로.”

흥미로운 점은 키츠가 ‘과학적 지식이 우리의 미적 감각을 망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 예로 대표적 이야기 시 ‘라미아(Lamia)’에서 ‘과학은 천사의 날개를 자르고 / 규칙과 선으로 모든 미지를 억누른다’고 읊고 있다. 과학에 대해 어떻게 그런 태도를 가지게 되었을까? 그래서 의학을 접고 시를 추구하기로 했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키츠가 그렇게 의학을 무시하고 포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키츠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육체적 고통과 쾌락과 성적 욕망을 노래한 가장 관능적 시인 키츠에게 확실한 도움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의사 키츠의 의학지식이었다.”

존 키츠는 1821년 2월 23일 로마의 허름한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화가 친구 죠셉 세번(Joseph Severn)에게 부탁한 그의 마지막 바람대로 묘비엔 이름도 생몰일자도 없이 ‘젊은 영국 시인’ ‘물로 자기 이름을 쓴 사람 여기 누워있다’고 새겨져 있다.

우리는 ‘의사 키츠가 시인 키츠에게 물려준 가장 위대한 유산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낫기를 갈망하는 사람에 대한 공감이었으며, 그 공감이 키츠를 그가 바라던 신화 속의 아폴로 같은 시인-의사로 바꾸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키츠를 ‘의사시인’ 대신에 ‘시인의사’라 부른다. 시 한 부분을 옮겨 천재 시인의사를 기억한다.

“귀에 들리는 선율은 아름답지만, 들리지 않는 선율은 더욱 아름답다 / 자, 네 부드러운 피리를 계속 불어라 / 육신의 귀에다 불지 말고 / 더 사랑스럽게 영혼의 귀에다 불어라, 소리 없는 노래를”
[존 키츠, ‘그리스 항아리에 바치는 노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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