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과거 노무현 정권의 대표적인 실정 중 하나는 부동산 정책이었다. 당시에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예상과는 달리 역방향으로 흘러 부동산 급등세를 초래하여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내성’만 키우는 결과를 만들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어떤 경제학자는 인위적인 정부 규제로만 부동산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주장까지 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정부 실책에 학자나 관리가 만든 부동산 정책 보다는 차라리 강남의 부동산 중개업자나 부동산 투기꾼의 자문이 낫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듯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과밀 현상이 점차 과열되자 한곳에만 집중돼 있는 수도의 기능을 지방으로 분산 이전하자는 명분에 기름을 쏟아 부었다. 수도 이전이 일부 위헌이라는 헌재 판결에도 중앙 부처 등 주요 관공서의 지방 분산과 세종시 행정수도의 분할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정부는 평소 신념과도 같았던 사회간접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소신과는 달리 수도권 주변의 주택증설로 스스로 수도권 과밀 현상을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정책을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수도 지방 이전으로 인한 서울의 과밀해소는 어느새 까맣게 잊었나보다.

카드 돌려막기식 근시안적 땜질처방 부동산 정책 의사인력 정책과 너무나 닮아 있어

복잡하게 맞물려 있는 부동산 정책은 그 누구도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기간에 급조한 근시안적인 정책보다는 국가 차원의 거시적 목표를 설정한 후에 여러 가지 사안을 함께 고민하여 만들어도 그 성공여부는 쉽게 점치기 힘든 고질적인 사안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고 봐도 과장이 아니다. 대도시 특히, 수도권 과밀화 현상은 서울과 같은 대도시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자산의 접근성이 우월하다는 점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잘 관리되고 유지되는 교통체계와 일자리, 교육 시스템, 그리고 다양한 문화시설 등 소도시나 지역에서 갖추기 힘든 우수한 삶의 조건들이 진화하고 발전해 나가기 때문에 현대인의 본능적 욕구와 맞물리면서 속칭 대도시 포화상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집중 현상은 전 세계 공통사안이기도 하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교육, 취업, 문화, 의료, 복지 등 모든 요소가 고려된 복합적이고 장기적 관점이 아닌, 그리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부동산 정책이 아닌, 매우 근시안적이고 세금 부과 등 감정적이고 징벌적인 조치의 강화로 여겨진다. 때문에 정부의 반복적인 악성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똥이 다가구 소유자에 대한 맹목적인 적개심과 증오심마저 일렁이게 하고 있다. 양도세, 다가구 주택보유자에 대한 증여세 강화와 전월세 대출 제한 등 매우 좁고 급한 정책의 산물이 초저금리 시대의 거대 부동자금이 떠돌아다니는 이 시점에 정부 정책에 대항하여 내성만 강화시키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고위 관리들에게 주택 1채만을 보유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권고한 기한 내에 강제 매각하라는 정부 방침도 명백한 사유재산의 침해임에 틀림없다. 전 세계에서 1주택 보유 기준을 도덕적 관점에서 판단하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지방에서 성장해서 서울로 이주하여 고위관료가 된 사람이 2채의 집을 보유했다고 해서 이것이 중대한 도덕적 흠결로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증오가 바탕인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의 한 과정으로 봐야 할 것인가? 매우 혼돈스럽기도 하고, 고위 관리직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 사정이 딱하게 여겨진다. 크게 번지고 있는 ‘부동산 불길’을 잡기 위해 고작 고위관리 몇 십 명이 당장 주택을 처분한다고 하여 상징적인 의미 말고는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순식간에 진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이 있는지조차 의문시된다.

카드빚을 돌려막다 눈 덩이처럼 불어난 규모를 감당 못하고 결국 파산에 직면하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임시방편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하다 회복하기 힘든 낭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까지 정책 실패로 책임진 공무원이나 정권은 보지 못했고, 그 참담한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민생과 세금으로 떠안았다.

반복되는 의사인력 증원 획책 의사 억압하면 국민 지지도 높아질 것 관치 성향 반영된 듯

구 소련 시절에 노동자 혁명에 성공한 뒤 노동자의 삶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거주지 이외에 주말의 휴식과 여유로운 삶을 위한 공간을 제공해 주기 위하여 일정부분 토지를 무상으로 나눠 줬다. 집과 텃밭이 딸려 있는, 우리나라에서 전원주택이나 별장에 해당되는 단어가 러시아어로 ‘다차’인데, 요즘 시대에 맞게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1가구 2주택 장려정책’이다. 이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구 소련 정부가 국민의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 택한 정책인데,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방식에서는 이를 ‘사회악’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이하게도 아파트 가격이 다른 형태의 공동주택과 개인주택에 비해 보편적으로 매우 높은데 비해, 일부 전통 가옥과 전통방식의 삶을 선호하는 민족과 국가에서는 아파트 거주를 ‘home’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home이란 단어는 우선 주택을 의미하고, 주택은 자신의 개성대로 자신의 형편에 따라 가꾸는 방식을 의미한다. 우리는 전국 어디에 가도 쉽고 흔하게 아파트를 볼 수 있다. 산간지방, 해안지방 모두 아파트의 편리성을 추구한다. 땅이 넓은 나라에서 온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다수 국민들이 공동 기숙사 생활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하여 웃은 적이 있다.

우리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비슷한 정책 추진 메뉴에 의과대학 증설 및 의사 수 증원 정책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제21대 국회의 거대 집권 여당의 신 패러다임에서 불가능이 없어 보이는 이 시점에 정권의 단골메뉴인 의료관련 정책에서 신설의대나 의사인력 증원이 코로나 19사태를 맞이하여 다시 파도타기를 하고 있다. 속칭 ‘떳다방’이나 기획부동산처럼 즉흥적이고 근시안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이 설익은 부동산 대책과도 매우 흡사해 보인다.

이미 여러 나라의 경험으로 효과성이 의문시 되는 공공의대나 의사인력의 양적 증원에 대한 추진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숨은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의사가 많으면 좋은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한다. 정치인의 전문성 결여로 인해 예기치 못한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최근 의대설립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약 10여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정착시킨 의학교육 분야의 질 관리 제도라 할 수 있는 ‘평가인증제도’ 마저 한방에 무력화시킬 태세를 취하고 있다.

의료취약지 근거 의대 설립 논리라면 장르별 예술의 전당 전국 문화취약지에 건립해야

공공의대의 실패 사례는 이웃 나라 타이완의 ‘양명의대’를 보면 왜 의사단체가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책입안자의 귀와 눈에는 유통되지 않는가 보다. 인구 1000명당 5명 이상의 높은 의사 수를 보유한 국가의 해결되지 않고 있는 고질적인 ‘의료 취약지’ 문제와 아이러니한 공공 의료기관의 의사 취업 기피현상을 보면, 의사 수의 단순한 증원 정책으로 일이 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국가 전문직인 고학력자에 대한 심각한 국가 사회적 병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사안의 심각성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의 심각성을 알기 때문에 전문가 단체를 표방하는 의사협회로써는 정부의 무분별한 의사인력 정책에 우려를 표하고, 신중을 기해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료는 시장경제의 실패사례로 ‘공공성’이 높다는 주장은 귀안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었음에도 의사의 양적 증가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그 누수효과로 취약지까지 잘 분산되어 스며들 것이라는 상호 모순되며 충돌적인 비전문가적인 의견을 마치 의료정책의 최고 전문가 의견으로 포장하여 제시하고 있다.

취약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의사를 배치하였다고 하여도 실제 취약지의 상태가 곧바로 일거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의료 역시 팀워크에 의한 고도화되고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한명의 의사가 취약지에서 할 수 있는 역할과 역량에는 분명히 넘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할 것이다. 취약지의 삶에 익숙하고 취약지적인 삶의 양식을 자발적으로 택한 의사가 아닌 한 국가가 의사를 강제로 취약지에 거주하도록 하는 것은 취약지 해소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닐 것이다. 장기간 강제 근무 방식은 거주지 제한이나 수용소 아닌 수용소 생활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일부 국가에서 취약지 문제의 해결로 성공을 본 지역은 취약지 출신의 학생을 선발하여 의사로 만든 후에 고향으로 되돌아가 근무하게 하는 것인데, 이 또한 단순히 고향 근무 이상의 유인 정책이 동반되어야 성공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취약지라고 해서 모든 취약지에 동일하게 적용하거나 연결시킬 정책도 아니다. 필자가 몇 년 전에 호주의 의학교육평가원을 방문하였을 때 들었던 설명이다. 호주에서 원주민의 건강문제 해결을 위하여 성공한 정책은 원주민 출신의 학생을 선발하여 의대에 입학시키고, 특별한 교육수련 관리를 제공하여 무사히 의대를 졸업시켜 귀향하도록 한 정책이다.

의사인력 인기영합용 단순 산술에서 탈피 의료 본질에 접근 종합적 대안을 마련해야

평균 90점대를 상회하는 도시 출신의 호주 입학생에 비하여 60점대의 원주민 학생의 입학은 누가 봐도 균형이 안 맞고 파격으로 볼 수 있다. 학교 측에서는 이들 원주민 학생들이 수학능력의 부족 보다는 문화적 격차나 균등한 기회의 차이로 보고 입학과 동시에 개인지도를 제공하여 결국 졸업시점에는 도시 출신이나 원주민 출신에 상관없이 동등한 역량을 갖춘 의사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원주민 학생 중에는 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동기부여나 필요성 혹은 요구가 형성이 되지 않은 이유로 단지 수능성적이 낮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입학 후 집중 관리와 별도의 개인지도로 다른 학생들과 차이 없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캐나다도 미국과의 국경지대에 주로 인구분포가 형성이 되어있고 북쪽으로 갈수록 광활한 영토에 거주인구 수 또한 매우 적다. 온타리오 주는 캐나다의 가장 큰 주로 북쪽 지역은 툰드라에 가까운 매서운 추위의 기후이다. 과거에 온타리오 주 최북단에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온타리오 북부 지역의 거주자 80만 명을 대상으로 학생선발을 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수능성적이 토론토 등 대도시 지역과 거의 동등했다고 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1차 진료에 집중된 교육과정에 투입하고 호주에서 취약지 교육으로 명성을 얻은 의사를 학장으로 초빙하여 온타리오 주의 북부 의료 취약지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졸업생 중 지역에 필요한 전문의는 다시 선발하여 토론토 등 대도시에 전공의 위탁교육을 시킨 후 본인들이 자발적으로 귀향하여 자신의 고향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취약지 문제 해결에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성공사례다.

그러나 알고 보면 온타리오 주 북부 지역의 넓이가 우리나라 영토의 5~6배쯤에 이른다는 것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지형과 교통체계, 그리고 영토 규모와는 단순히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인 것이다. 이런 사실은 호주나 온타리오 주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우리나라에 의료취약지라는 개념이 성립조차 할 수 있을지 의문시 된다. 어떤 나라도 거주지를 미분하여 계산하여 적용하면 취약지는 성립될 수 있다. 서울지역도 동 단위로 미분하면 취약동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 도서 지방 등 취약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외 지역은 거주민의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취약계층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의사의 배치로 취약계층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의사인력 정치적 증원보다 의료수요 질병양태 인구변화 고려 내실 있는 양성체계가 시급

취약지에 배치된 의사를 위한 시설과 인력의 제공도 쉽지 않는 문제로 전문의가 배치되었을 때 반드시 적절한 업무량과 시설이 있어야 하고 수술을 하려면 마취 전문의도 연결되어야 한다. 어디 이 뿐인가? 검사시설과 환자진료에 필요한 다양한 직종 등 산적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해결책은 모호하다. 적절한 직무양이 부족하면 의료인이 갖고 있는 역량은 저절로 쇠퇴하고 감소한다. 이들을 위한 보수교육지원도 매우 중요하다. 휴가에 대체인력 근무도 있어야 하는데 갈수록 쉽지 않은 문제가 덧붙여진다.

의사 수 과잉 상태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의료취약지나 공공의료기관 근무 기피 현상은 의료전달체계 미비,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낮은 신뢰, 전공의 수급 조절기능 저하,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보이는 조건에서 가파르게 심화된다. 의사의 과잉공급에도 취약지나 공공의료기관 취업을 해결 못하는 이유는 양적 증가라는 단편적인 정책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급여, 근로조건, 보수교육, 자기개발 등 근로 환경과 전공의 교육에 대한 튼실한 지배구조와 투자, 의료전달체계, 취약지 근무 의사에 대한 맞춤 의학교육, 취약지에 대한 조기경험, 의과대학 선발정책과 지원정책 수립 등 복합적이고 복잡한 다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없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수천억 원이 소요되는 공공의대 신설과 유지에 들어갈 예산이 있다면, 이 예산은 양적증가로 해결할 수 없는 의료의 질적이고 사회문화적인 요소의 개선에 투입되어야 할 소중한 국민의 돈이다. 현재의 공공의대신설이나 정원증가 정책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의료 환경 개선보다는 정권장악이나 정권연장을 위한 세금 낭비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엉뚱하고 어설픈 정부정책의 포퓰리즘의 DNA가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는 정책으로 둔갑되어 나라의 건강을 망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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