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의학신문 기자]갑자기 하늘이 무너졌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우강(又岡) 권이혁(權彛赫) 선생님을 하늘처럼 믿고 따르던 후배, 제자들에게는 말입니다.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동창, 후배, 제자 및 보건대학원의 제자들을 비롯하여 의료계 인사 및 선생님과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 겨레, 나아가 세계 인류의 큰 스승(mentor)으로 군림하시면서 비와 눈을 뿌리듯 그 은덕을 베풀어 오신 하늘같은 우강선생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조병화 시인(예술원 회원)께서도 우강선생님을 찬양하여 ‘인류의 지성’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칭송하였습니다.

선생은 심오한 학식에 있어서나/ 고귀한 인품에 있어서나/ 참으로 대한민국, 우리 조국을/ 훨훨 사시는 분/ 참으로 존경스럽고 순결하시옵니다.

실로 선생은 인류의 지성,/ 그 인류의 지성으로/ 세계로 열려가는 대한민국, 우리 조국을 사시는/ 존경스러운 겨레의 큰 어른이시옵니다.

우선 우강선생님께서는 예방의학자답게 건강으로 솔선수범하시면서 특히 정신적 건강으로 사회적 건강을 강조하셨기에 선생님께서 이룩하신 수많은 눈부신 업적이 선생님의 굳센 정신력과 근면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르러 보행이 불편해지신 관계로 그 유명한 건배사를 사양하시기도 하였지만 공사(公事)는 물론 모든 사람의 인간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시고 크고 작은 모임의 초청에 응해주시는 초인적 노력을 보이셨었습니다. 이는 보통사람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우강선생님의 건강과 근면성의 결과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희 후학들은 우강선생님께서 백수는 물론 장수의 최고기록까지 누리실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는데 별안간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일찍이 필자는 ‘구만리장천을 나는 대붕(大鵬)의 뜻을 연작(燕雀)이 어찌 알랴’라는 옛말을 인용한 바도 있지만 연작격인 필자가 대붕 같으신 우강선생님을 모시면서 배운 중요한 가르침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우강선생님의 인생관입니다. 선생님의 서울대학교총장 이임사에서 ‘매일 비나 왔으면 하고 바랐다’고 학생소요사태로 인한 고뇌를 유머스럽게 표현하신 것이 단적인 예라 생각합니다.

이 보다 더욱 모든 사람들에게 감명과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우강선생님의 좌우명이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삶,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삶이 참된 삶’이라는 신념으로 평생 동안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 오셨기에 우강선생님의 은덕을 입은 사람들은 행복을 누렸고 그들의 직장과 소속 사회가 행복한 낙원으로 변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우강선생님의 모든 행동은 이 좌우명에서 비롯된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주례 같은 개인적인 부탁으로부터 공적인 헌책(献策)에 이르기까지 우강선생님께서는 ‘No’하시는 법이 없으셨고 어떻게든지 방법을 일러주시거나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특히 우강선생님으로부터 꼭 배우고 싶었던 것은 선생님의 탁월한 지도력(leadership)이었습니다. 우강선생님의 평생 지도자로서의 경륜은 자연적으로 성취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생래(生來)의 소질에 더하여 발군의 넓은 시야와 사고력을 바탕으로 미래를 투시하는 능력이 뛰어 나시어 언제나 지향할 목표와 비전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근래에 매년 해가 바뀔 때 마다 화두(話頭)를 내려 주시고 이를 설명하는 에세이집을 한권씩 발간해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새해에 생활지침을 삼도록 말입니다.

이제 대붕이 떠나신 무너진 하늘아래에서 우강선생님을 가까이서 모셔왔던 연작으로서 대붕의 뜻을 본받아 그 가르침을 세상에 펼치는 것이 남겨주신 소명(召命)이라 깨닫고 있사오나 역부족으로 생각되옵니다. 하나 최선을 다할 각오이오니 천상에서라도 적극 도와주시옵기를 기원하옵니다.

부디 명복을 누리시옵소서.

이순형 호곡

전 서울의대 학장/현 인제대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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