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정 편집주간

[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놓고 의약업계의 반발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거두절미하고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계획안은 ‘안전성·유효성·경제성 어느 것 하나도 확보된 것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민의 요청이다. 한약 특성에 맞는 안전성 강화 방안을 찾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원안 추진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의 계획안은 이미 지난 3일 건정심 소위원회를 통과했고, 이달 하순의 건정심 본회의 의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본회의에는 소위원회에서 제기된 의협의 ‘전면반대’와 병협의 ‘의료일원화 이후 시행’ 안이 각각 소수의견과 부대의견으로 올라왔지만 정황으로 보아 의약계의 반대와는 무관하게 정부에서 정한 로드맵대로 의결될 공산이 크다.

결국 첩약 건강보험 급여화 사업이 졸속으로 제도화 되고, 나중에 급여 범위가 확대되는 등의 경우를 내다보면 여간 걱정이 아니다. 무엇보다 보약을 선호하는 국민정서를 고려할 때 과학적으로 검증도 안 된 첩약의 수요가 더 늘어나 장차 급여에 쏟아 부어야 할 재원이 만만치 않을 것 같고, 다음 수순으로 의과 의료기기 사용권이 또 하나의 논쟁거리로 부상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의과 의료기기 사용권은 한의사들이 첩약치료에 대한 효과를 알아보겠다는 명분으로 정당성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물론 복지부도 그 속내는 답답할 것 같다. 한의사들이 그들의 직능 육성 내지는 활로를 강력히 요구하는 상황이고, 한약에 대한 국민적 수요도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 보장성확대시책에서 한약만 빼고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한의사들의 업권이나 건강보험 재정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좌우하는 ‘약’을 과학적인 검정도 않고 공적 재원으로 비용을 충당해 준다는 것은 정말 곤란한 일이다. 그럼에도 밀어붙이면 막아낼 도리는 없다. 정부가 주도하는 일이기에 논쟁 속에서도 여기저기 땜질을 하면서 제도는 굴러갈 것이다.

대다수 의약인들은 이처럼 원칙에 어긋나고 부작용도 우려되는 시책을 바라만 봐야 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논쟁의 본질이 우리나라의 독특한 의료이원화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의사라는 직능이 존재하는 한 의약업계에서 앞으로 또 어떤 논쟁이 불거질지 모를 상황이다. 만약 첩약 건강보험 급여화 사업이 이대로 추진된다면 의료이원화 구조는 더욱 고착화 될 것이며, 정부와 한의계가 주창해 온 한의약의 과학화는 오히려 더 멀어질 것이 뻔한 이치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4차 산업이 물결치고, 뉴노멀이 펼쳐지는 변혁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유독 의사 직능만 이원화된 체제로 꿈쩍도 않고 있으니 시대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첩약 급여화의 적정성이 어떻고, 범위나 비용이 어떻고 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본질은 이런 논쟁이 생기지 않도록 의료체계를 새롭게 확립하는 즉, 토대를 바꾸는 의료일원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의‧한 양립이라는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두 직역의 갈등은 앞으로도 끊일 수가 없고, 경우에 따라 서로 발목을 잡아 대한민국 의료발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저해 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과연 의료발전이나 국민건강 증진에 보탬이 되겠는가. 때늦었지만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편익을 높이고, 의료전문가들이 전문가로서 올바로 기능하며 역할을 제대로 발휘해 나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 길이 의료일원화라고 본다. 물론 의료계로서는 이것 말고도 원격의료니, 의사인력 증원 같은 절박한 현안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매듭을 한꺼번에 다 풀기는 어렵다. 우선 이번 첩약 급여화 논쟁을 계기로 ‘의‧한‧정’이 대승적인 견지에서 의료일원화 논의에 의기투합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