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5>

[의학신문·일간보사]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호세 리잘(José Rizal)은 안과의사다. 리잘은 어린 시절부터 부유한 집안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다. 이는 훗날 다양한 분야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호세 리잘(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과 첫 소설 『나를 만지지 마오』 초판본 표지.

열일곱 살에 산토 토마스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하던 중 모친이 시력을 잃자 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그즈음 시(詩) 경연대회에 민족주의적 생각을 담은 『필리핀 청년에게』를 출품하여 일등을 하는 등 문학적 소질을 보였다. 의과 대학에서 병리학, 외과병리학 및 산부인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등 명석한 학생으로 평가받았다. 졸업 후 인트라무로스의 산후안데디오스 병원에서 4년간 임상 트레이닝을 받았다.

선진 교육을 원했던 그는 1882년 5월 스페인으로 건너가, 마드리드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 후 1885년에 파리에서 홍채 수술용 가위로 유명한 안과의사 웨커(Louis de Wecker) 밑에서 안과수술 트레이닝을 마치고, 다음 해에 하이델베르크에서 안과병리학의 개척자 오토 베커(Otto Becker) 교수 아래서 안과 전문 과정을 마쳤다. 거기서 그는 새로 발명 된 안과용 헬름홀츠 현미경 사용법을 익혔다.

1887년 첫 소설 『놀리 메 탕헤레(Noli Me Tángere)』를 발표했다. 『놀리 메 탕헤레』의 제목은 라틴어로 ‘나를 만지지 마오(Touch me not).'라는 뜻이다. 리잘의 오랜 벗인 오스트리아 제국의 블루멘트리트는 『놀리 메 탕헤레』를 읽고 리잘에게 편지를 썼다. “가슴의 피로 쓴 글이군요. 당신의 조국은 당신과 같은 충성스런 애국자 아들을 둔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당신은 조국의 변화를 갈망하는 영혼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식민지 출신의 젊은 유학생이 식민지 지배의 모순을 지적한 소설은 조국의 점령국인 스페인의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충격은 식민통치에 대한 비판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그의 소설은 불온 소설로, 그는 불온 작가로 찍혀 추방을 당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리잘은 저서를 통하여 국민들의 독립운동 지각을 일깨우며 조직적 활동을 했다. 『놀리 메 탕헤레』와 그 속편 『엘 필리부스테리스모(El filibusterismo, 탐욕의 통치)』를 비롯한 그의 저서들은 애국자들을 하나로 묶는 힘을 발휘하였다. 두 소설은 필리핀 교육 과정에 포함시키도록 법으로 제정되어 있어서 정규 교육을 받는 필리핀 사람이면 누구나 읽고 있다.

마침내 1896년 독립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나자 스페인 총독부에 의해 붙잡혀 공개 처형을 당했다. 리잘은 무릎 꿇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뒤돌아서 등에 총탄을 받았다. 총살집행 전에 지은 시 「나의 마지막 작별(Mi Ultimo Adios)」의 첫 두 행과 마지막 두 행을 옮긴다.

‘안녕, 내 숭배의 땅, 태양이 포옹하는 곳, /
동방 바다의 진주, 우리의 잃어버린 에덴이여

---중략---
안녕, 다정한 이방인, 나의 친구, 나의 길을 밝혀주었던; /
안녕, 내 사랑하는 모든 이여. 죽음은 휴식.’

독립영웅 의사 문인은 서른다섯 해를 마감하고 휴식에 들었다. 이태 후 필리핀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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