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4>

[의학신문·일간보사] 서른 편의 희곡, 서른 편의 소설, 열 편의 논픽션, 백 이십 편이 넘는 단편, 그리고 에세이들. 이만큼을 옹골차게 지은 의사문인이 있다. 바로 ‘영국의 모파상’이라 불리는 윌리엄 서머싯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이다. 변호사 아버지가 근무했던 파리 주재 영국대사관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각각 위암과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영국으로 돌아와 목사인 숙부 집에서 성장했다. 목사가 되길 원했던 숙부의 바람을 멀리하고 열일곱 살에 독일로 건너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일 년 후 귀국하여 런던의 성토마스병원 의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연 없었다. “겨우겨우 간신히 보냈다.”는 고백처럼 오히려 읽고 쓰고 박물관을 관람하고, 연극과 소설의 아이디어들로 노트를 채우는 데 열중하였다.

서머싯 몸. (1967년 Washington Square Press에서 출판한 『The complete short stories of W. Somerset Maugham I』의 뒷 표지, 필자 소장본을 스캔함)

졸업 즈음에 의사면허를 따기 위한 의무과정으로 템즈 강변의 슬럼지역인 램버스에서 분만을 도와야 했다. 삼 주 동안 예순두 명의 아기를 받으면서, 모옴은 자신도 모르게 흥미진진한 열중에 빠졌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물세 살 의과대학 4학년생 모옴은 첫 소설인 『램버스의 리자(Liza of Lambeth)』를 출간하였다. 최종 졸업시험 직전에 출간된 이 소설은 호평 속에 성공하였다. 이 성공에 강한 인상을 받은 산과 과장은 모옴에게 병원 스태프 자리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해 의사 면허를 받았지만 실제 진료를 하지는 않았다. 그 후 의학과 관련된 일에 접했던 것은 1차 세계대전 중에 의무 장교로서 적십자 야전병원에 잠시 복무했던 게 전부다. 훗날 그는 몇 년간 더 의료 경험을 쌓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를 하곤 했다.

예순네 살에 쓴 자서전 형식의 『서밍업』에 의학교 시절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여기서 나는 내가 가장 접촉하기 원했던 것, 바로 생생한 삶과 만났다. 인간이 드러낼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또렷이 목격했다.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보았다. 어떻게 고통을 겪고 있는지 보았다. 희망과 두려움과 구제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았다. 절망이 얼굴에 드리운 어두움을 보았다. 용기와 확고함을 보았다. 믿음을 보았다. 그것들은 내 안의 소설가를 흥분시켰다. 소중한 경험이었다. 의학계에서 몇 년을 보내는 것은 작가에게 가장 좋은 훈련이다.”

스트레스 속의 인간 성격을 연구하고 관찰할 수 있었던 의학 수련이 자신의 문학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모옴은 믿었다. 이 믿음은 산수(傘壽)에 BBC 방송에 출연하여 행한 강연에서도 고스란했다.

“나는 불만족스러운 의대생이었다. 늘 작가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고민 없이 의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지낸 5년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그때 그곳에서 배웠다. 병원에선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그들은 아무것도 숨기려 하지 않는다.”

모옴의 작품은 인간의 불가해한 복잡성을 의표를 찌르는 글솜씨로 간단명료하게 드러내는 탁월한 문학적 품성(品性)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믿음처럼 그 품성은 의학 경험에 뿌리박고 있다. 모옴의 의학적 문학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감상하려는 이들에게 필자는 『비(Rain)』를 권한다. 의학적 냉철과 예리한 응시가 생생히 번득이기 때문이다. 특히, 폭우 속에 미스 톰슨과 하룻밤을 지낸 선교사의 자살에 대한 의사 맥패일의 속내를 묘사한 마지막 두 단어 문장은 모옴의 문예 품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는 이해했다(He underst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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