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글로벌 개발본부 전무

[의학신문·일간보사] 사스나 메르스도 겪었으니 사상 초유의 사태라는데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번 코로나는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바꾸고 있다. 사람 만나기 꺼려지고, 개학이 자꾸 연기되니 취학연령대의 학부모인 직원 중에서도 애들 맡길 곳, 밥 먹이는 문제로 한숨이 깊어진다. 외부회의도 비대면 접촉을 위해 ZOOM, WEBEX 등 평소엔 관심도 없던 애플리케이션에 적응해야 한다.

사태초기 학교에서 비대면으로 강의하라 해서 연세 드신 교수가 아들 도움으로 힘들게 영상강의파일을 만들었는데 날라가 버려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한탄을 들은 적이 있다. 여기까진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정작 문제는 다음부터다. 코로나 초기에는 이런 상황이 낮 설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학생이나 선생이나 잘 적응해버려서 앞으로 학교의 사이버화를 앞당겨 SKY대나, 많은 수의 교수나, 넓은 부지의 캠퍼스도 필요없어 질지도 모른다는 거다.

코로나의 환란 뒤에 지금은 짐작 못할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도래하겠구나 절감했다. 주식시가 총액 상위기업 중에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현대자동차 등 전통적인 제조업기반의 회사들이 네이버나 카카오 등 IT기반 기업들에게 윗자리를 내어 주고 있는 것이 이런 시대의 전조(前兆)일지도 모른다.

제약분야에서도 비대면 영업의 여파로 매출이 줄어든 데가 많다. 이번 사태를 겪은 경영자들은 포스트 코로나시대에는 IT기반의 온라인마케팅과 근거기반 마케팅을 강화하려 한다. 한편으로는 K방역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세계적 평가를 받으면서 코로나 진단키트가 각 나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치료제로는 미국 대통령이 항말라리아제인 ‘Hydroxychloroquine’을 복용하고 있다 하여 유명세를 치렀다. 현재는 항바이러스제인 ‘Remdesivir’의 1063명 감염자대상의 무작위대조 임상결과가 발표되면서 감염자의 회복기간을 줄이고 병상포화도를 낮출 치료제로서 유일한 희망이 되고 있다. 이런 임상근거에 기반해서 미국FDA가 긴급 사용을 승인했고, 일본도 특례 승인했으며, 유럽도 조건부 사용승인을 검토중이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독점성과 가격이다.

미국 Gilead라는 제약회사에서 최근 개발한 ‘Remdesivir’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허가된 바가 없다. 빨리 허가된다 하더라도 물질특허도 최근에 공개 되었으니 출원일로부터 최소 20년간은 배타적 독점권을 가진다. 최소라고 표현한 건 앞으로 임상시험과 허가과정에 들어간 시간만큼 더 기간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질병관리본부가 식약처와 긴급사용승인을 논의한다고 한다. 국가적 긴급사태니만큼 긴급수입과 중증 감염환자에 대한 사용승인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실제 임상현장에 약이 공급되는 것은 경쟁자가 없으니 Gilead의 선의(善意)에 기댈 수밖에 없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Remdesivir’의 10일 분의 생산원가는 10달러 정도지만 자국인 미국 내에서 실제로 판매되는 가격은 4460달러에 달한다 한다. 강제실시권을 동원하지 않는 한 Gilead에게 인류애(人類愛)를 발휘하여 11달러에 공급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프랑스 기업인 Sanofi도 치료제를 개발 중인데, 성공하면 연구과제를 지원해준 미국에 우선 약품을 공급하겠다고 했다가, ‘매국노 기업이냐’며 프랑스가 발칵 뒤집혀, CEO가 직접 나서 사과한 일이 있었다. 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치료제가 개발된다면 공공재화하여 세계 어느 나라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하자, 세계제약연맹(IFPMA)에서 ‘그럼 누가 돈과 시간을 들여 개발하냐’는 강한 반대에 부딪친 일도 있었다. 미국대통령이 ‘이미 특허가 만료된 싼 말라리아 약을 복용해서 효과가 있다면 손해 볼 일이 뭐가 있겠냐’는 메시지를 내는 이유는, 뭘 몰라서가 아니라, 아직 배타적 권리를 가지는 독점적인 약품에 대해 공적 의료 보험에서 지출해야 할 막대한 비용에 대한 고민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우리가 저녁을 먹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위한 이기심 때문이다”라고 ‘국부론’에서 아담 스미스가 갈파했다. 코로나사태로 치료제나 백신의 개발에서 자국우선주의화, 전략무기화를 다투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도 스스로 개발하지 못하면 빵집 주인의 자비심에 기대거나 구걸해야 한다는 제약주권론이 부각되고 있다. 정부도 BT의 전략가치를 인식하고 범부처적으로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을 돕겠다고 적극 나서고 있으니 우리 힘으로 이 사태의 파고를 넘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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