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구 대한의학회 회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수개월 째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의 끈질긴 공격으로 국민들은 물론이고, 의료계도 지칠 대로 지쳐가고 있다. 마치 ‘바이러스와 우리나라 의료자원이 상호 대결 양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된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모든 전염병은 극복 되었고, 우리나라의 현대 의학적 의료수준과 국민성을 바탕으로 반드시 극복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의사의 한 사람으로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든 의료진께 감사를 드리며 응원과 격려의 큰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피곤이 쌓일 대로 쌓인 사람들에게 분추경리(奔趨競利)라는 아주 어려운 말로서 인사드리게 되어 죄송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사회 정의를 정도로 이끌고 있는 의사 선생님들이 한번 생각해 볼 문제라고 판단해서 글을 올린다. 옛날이야기 대하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보기 바란다.

먼저 아주 생소한 한자의 구조를 살펴보면, 분(奔)은 앞으로 달려간다는 의미 ‘달릴 분’이고, 추(趨) 역시 ‘달려갈 추’다. 경(競)은 경쟁을 벌인다는 의미의 ‘다툴 경’이고, 이(利)는 이득을 의미하는 ‘이할 리(이)’자다.

이 사자성어를 해석하면 ‘분주히 쫓아다니며 이익을 다툰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출세를 위해서 경쟁적으로 여기저기 고관대작들에게 뇌물을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가 망해가는 고려 말과 조선 개국 초기의 혼탁하고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 이러한 일들이 횡행하였다. 그래서 나라의 기틀을 잡고, 사회적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분추경리를 축약하여 분경금지법(奔競禁止法)을 만들어 조선 2대 임금인 정종 원년(1399년)에 교지를 내렸다. 곧 이어서 3대 임금인 태종 원년 음력 11월에(1400년) 분경금지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곤장 100대에 처하고 3000리 밖으로 귀양을 보낸다고 했으니까 나라 밖으로 내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종 원년(1470년)에는 조선시대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이 법의 강력한 시행령을 매우 구체적으로 명문화해 법으로 만들었다.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겠다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넘쳐나는 사회적인 법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에 준하는 현재 우리나라의 법을 예로 든다면 2016년 9월 28일 제정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처음 이 법 제정의 기본 정신에서 한참 빗나간 법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울러 법으로서의 실효성이나 법률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법률가들도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전문가들이 따져야 할 일이다.

다면적 사회인 요즘에 비하여 단층적 구조를 갖고 있던 조선시대의 상황임을 견주어 보더라도 사회적 부패 속에 이 법을 어기는 사람들은 다양하였을 것이다.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이 법이 엄정하게 집행 되었을 때 사회상은 발전적 평온을 유지하였고, 이 법이 잘 지켜지지 않았을 때는 분명히 혼탁한 사회로 추락하였다.

벌써 여러 날 동안 인권운동가 인지, 여성운동가 인지 몰라도 위안부 문제에 오랫동안 관여 했던 한 국회의원의 사회운동과 연관된 불분명한 과거사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제국주의 일본의 패륜적 행위는 형언할 수 없지만, 그 중에 여성을 강제로 성 노예로 삼았던 위안부 문제는 반인륜적 사건의 상징이다. 여기에 희생된 분들의 일생이 상상할 수 없는 형극의 고통이었다는 것은 거론할 여지도 없이 유추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분들의 억울함을 밝히고 여생에 도움을 주겠다는 사회운동은 고귀한 것이었기에 여러 단체에서 수십 년 동안 직간접적으로 후원도하고, 때로는 직접 여러 기관들을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부터 아름다운 사회운동으로 평가 받았기 때문에 전 국민적으로 많은 지지와 후원을 받은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늘진 이면에 독사의 혀와 같은 짙은 암약이 있었다는 점은 슬픔을 떠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일이다.

현행법적으로 위법한 행위 여부는 법의 수사와 잣대로 결정될 일이다. 그러나 너무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졌기에 마음 한 구석에는 엄격하고 공정한 수사 결과 ‘별일이 아니었다’라고 결론이 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실망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에 비추어 오랫동안 이 일에 관여했던 국회의원 윤미향이라는 사람은 분명히 분경금지법을 어긴 사람이다. 착하고 순수한 운동을 빙자하여 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열심히 뛰어 다닌 다음, 국회의원이라는 고위 관직에 올랐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사퇴하여야 한다고 하였지만 이 권고를 일축했다는 점은 처음부터 그 자리를 추구하였다는 의미로서 대표적인 분경금지법 위반이다.

현행법을 어겼냐, 아니냐를 논하기 이전에 과거 활동 내용의 외형적인 순수한 동기에 견주어 보아 현재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그 자체만으로도 참 부끄러운 일이다. 법 이전에 자유인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의 거취를 결정하여 할 문제이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난 사람이 과연 정상적인 입법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아무리 얼굴이 두껍다 하더라도 대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의심스럽다. 물론 대중들의 기억상실증에 기대를 하겠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분경금지법이라는 것은 분명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 조선사회의 법이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정신과 개념은 사회통념과 윤리로써 아직도 우리 사회에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오로지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하여 아름답게 포장된 사회운동을 하면서 출세가도를 만들었다는 슬픈 현실을 바라보면서 과거의 ‘분추경리금지법’이 떠올랐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우리 선조들의 현명함은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한다. 수백 년이 지난 오늘의 사회적 부조리도 예측하여 분경금지법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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