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돈 투자한 미국 우선’ 발언에 프랑스·유럽 ‘발칵’
투자 대비 돈 되는 신약만 개발 기조 변화에 한미약품도 피해

[의학신문·일간보사=김영주 기자]글로벌 제약기업 사노피가 작년 말 부임한 CEO 폴 허드슨 사장에서 시작된 구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노피는 며칠 전 한국 제약기업인 한미약품의 당뇨신약을 임상 도중 반환하겠다고 해 논란을 일으킨 프랑스의 세계적인 제약기업이다.

사노피 신임 CEO Paul Hudson. 로이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은 최근 사노피 폴 허드슨 사장의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로 발칵 뒤집혔다. 허드슨 사장이 이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위험을 감수하는 일에 많이 투자했기 때문에 사노피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미국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히면서 부터다.

당장 프랑스는 총리와 장관이 나서 사노피에 경고 메시지를 던졌고, 유럽연합(EU)은 백신의 공평한 사용을 주장하는 논평을 내놨다. 프랑스 재정경제부 아네스 파티에 뤼나셰 국무장관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금전적 이유를 근거로 특정 국가에 백신 제공의 우선권을 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사노피의 ’미국 우선 공급‘ 언급에 분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사노피 경영진을 호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세계적인 제약기업으로 성장한 사노피의 배경에는 그동안 프랑스 정부로부터 R&D 명목의 각종 지원이 있었다는 점에서 프랑스 국민들은 배신감까지 느끼는 분위기다.

그동안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점잖기로 소문났던 사노피가 이런 구설에 오르내리는건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라게 업계 견해다. 작년 허드슨 사장 취임 이후부터 사노피의 기조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허드슨 사장은 노바티스, 아스트라제네카 등 굴지의 제약기업에서 영업과 마케팅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그동안 의사 출신 연구원들이 오랜기간 사노피를 이끌며 환자를 위한 의미있는 글로벌 임상이라면 대규모 투자도 망설이지 않았던 전통과는 달리, 허드슨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소위 ’돈 되는 개발‘에 천착하고 있다. 사노피는 작년 폴 허드슨 사장 취임 시기와 맞물려 500여명에 달하는 연구조직 일부를 해체하는가 하면, 일본 등 일부 지역에서의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도 했다.

허드슨 사장은 작년 말 공식석성에서 사노피의 R&D 개편안을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주력해 온 당뇨치료제 등 분야를 접고, 항암제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겠다는게 발표의 핵심이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사노피가 거창하게 R&D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속내는 그야말로 ’돈 적게 들고 수익이 보장된 사업‘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이라며 “책임있는 제약회사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사노피가 가야할 방향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평가했다.

사노피의 이같은 기조 변화는 당장 한국 기업의 피해로 이어졌다. 최근 사노피는 한미약품으로부터 기술을 이전 받은 당뇨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권리 반환 의사를 밝혔는데,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에페글레나타이드 글로벌 임상 3상에 참여 중인 환자들이 5000여명에 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신약 기술을 이전 받은 글로벌 제약기업들이 약물의 지속 개발 여부를 판단할 때는 임상을 종료한 뒤 객관적 평가와 분석을 근거로 결정한다. 반면 사노피는 5000여명 환자가 걸린 ’현재 진행 중‘인 임상을 그대로 둔 채 권리 반환 의사를 표명한 것이어서 책임있는 제약사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노피나 한미약품 양쪽 모두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약물 유효성이나 안전성과는 무관하다“고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결정을 두고 사노피가 글로벌 임상 3상에 투입해야 할 자금을 줄이기 위해 환자를 볼모로 ’협상의 판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한미약품 관계자는 말을 아끼면서도 “사노피가 자신 회사의 명성에 걸맞는 결정을 내리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노피의 행보를 두고 국내 의료진 역시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서울의 한 내과 전문의는 “사노피는 란투스 같은 당뇨치료제를 전세계에서 판매해 현재 규모에 이른 대표적인 당뇨 전문 제약기업”이라며 “당뇨치료제로 몸집을 불린 제약회사가 향후 이 분야 발전을 위한 투자를 멈추겠다고 한 결정은 매우 이율배반적인 태도”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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