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 유형준 교수의 의사 문인 열전<1>

의학과 문학의 만남으로, 진료실에 윤기를 불어넣자!

본지는 매월 한 차례씩 음악(클래식 편지/ 김윤경 피아니스트), 미술(미술 문화로 읽다/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등의 문화 컨텐츠를 소개하여 환자 진료에 헌신하고 있는 의료인들에게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며, 독자들의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 본지의 이런 노력은 환자진료에 지친 의료인들의 고단함을 풀어드리며, 인문학적 소양을 더욱 축적하여 전인치유에 필요한 감성을 일깨워나가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본지는 이 같은 목적으로 이번 호 부터 문학칼럼 ‘의사 문인 열전’을 추가로 신설하여 문화적인 컨텐츠를 확장하는 한편 의학과 문학의 '만남의 장'을 조성하여 진료실에 더욱 매끄러운 윤기를 불어넣고자 한다. 이번호부터 신설될 문학칼럼은 시인이자 수필가인 유형준 박사(한림대 명예교수, 현재 CM병원 내과과장)가 집필을 맡아 한 달에 2번씩 역사 속 의사문인들의 발자취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이어갈 예정이다. 앞으로 본란에 ‘의사 문인 열전’을 이어나갈 유형준 박사는 서울의대 출신(1977년 졸업)으로 당뇨병과 노인병 세부전문의로 이름이 높지만 의사문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유형준 박사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당뇨병과 성인병연구실장으로 근무하다 한림의대로 자리를 옮겨 내과학 및 의료인문학 교수로 재직한 뒤 2018년 2월말 정년퇴임 했다. 현재 CM병원 내과과장으로 환자진료에 임하고 있으며, 국제노인의학회 이사, 의료의 미래를 그리는 모임과 대한의사협회 시니어클럽 운영위원, 한국만성질환관리협회장을 맡고 있다.
특히 유형준 박사는 한국의사시인회 초대회장·문학예술동인회장·박달회장·문학청준작가회의 초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함춘문예회장·쉼표문학 고문·한국의사수필가협회 감사·의료예술연구회장·의학과문학접경연구소장 등을 맡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노화수정 클리닉’, ‘당뇨병 교육’, ‘당뇨병의 역사’, ‘당뇨병 알면 병이 아니다’ 등과 단독 시집으로 ‘가라앉지 못한 말들’, ‘두근거리는 지금’ 등을 상재했다. 지난해에는 수필집 ‘늙음 오디세이아’도 펴내 끝없는 문학적 재능을 과시하고 있다. 필명은 유담(柳潭).

의사와 문인은 자못 다붓하다

[의학신문·일간보사] 의사와 문인. 언뜻 보기엔 둘 사이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눈여겨보면 둘은 자못 다붓하다. 저 깊숙한 사람의 고통과 생명의 의미를 헤아려 낫게 하려는 존재, 둘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사람에게 질병이란, 넓은 의미에서 극심한 고통을 비롯하여 신체 기관의 기능장애, 정신·심리적 스트레스, 사회경제적 문제, 사고나 장애 그리고 늙음 죽음과의 연관도 아우른다. 의사는 진료실에 들어서는 환자의 인상, 걸음걸이, 음성과 성격에서부터 혈액, 소변, 영상 등의 검사 결과에서 사생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늬들을 살핀다. 환자만이 아니다. 함께 온 보호자의 표정과 언행도 눈여기고 귀 기울인다. 또한 인체해부학과 분자생물학으로 어느 인문학자도 넘볼 수 없는 심오하고 세미한 인간 실체의 고갱이를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의사는 생로병사의 순간순간들과 밀접하게 접촉하여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는 전문적 실력과 자격을 갖추고 있다.

헌주하는 아폴로(출처: Sofia Soulia 저 『Greek Mythology』)

질병과 관련한 몸과 마음의 고통스런 문제와 변화의 체험은 고스란히 문학의 소중한 소재이며 주제다. 의사가 사람의 무늬를 진찰하고 진단하고 치료하고 예방하듯이, 문인 역시 사람의 무늬에 모든 관심을 쏟아 문자 언어를 도구로 글을 짓는다. “임상적 시선은 작가의 감각과 공통점이 많다”는 미국 텍사스의대 마취과학 및 의료윤리학 교수인 맥렐란의 말이 떠오른다.

이처럼 인문학적 자양분이 풍요로운 토양에 뿌리박은 의학과 문학이 다붓한 건 어쩌면 당연하다. 따라서 의학과 문학이 맞닿으면 서로 인간적 본바탕을 자극하여 서로를 더 여물게 하고, 의사가 문학과 만나면 인간 이해라는 시각에서 직관과 사변(思辨)과 창의적 공감이 더욱 풍성해진다.

그래서였을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의학과 시 둘 다 태양신인 아폴로가 주재하도록 하여 의학과 문학의 연결을 인정하고 존중했다.[그림] 그러나 현실은 의학과 문학이 과학과 예술로 구분되어 각각의 영토에 제각기 놓여 있으려 한다. 말미암아 언어가 메마른 의학, 검사 데이터만 수북한 진료실, 마주 보고 앉아 있어도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 점점 더 멀어져 아예 환자는 최첨단 진단기기 속에 누워있고, 의사는 동떨어진 곳에서 모니터에 뜨는 숫자와 기호만을 분석하고 있다. 안타깝다. 메마른 목마름에 슬그머니 익숙해지는 관성이 더 안타깝다.

이러한 관성을 거슬러 의학과 문학의 사이에 쌓여있는 건조한 구별을 헐어낼 재능을 지닌 의사가 있다. 미쉘 푸코의 어법을 빌리면, 과학의 도움을 받아 환자의 내부로만 파고들던 ‘의학의 시선’을 사람 전체로 돌리려 글을 짓는 의사다. 그를 의사 문인이라 부른다.

이제, 인간 이해의 시선으로 차별을 걷어내는 의사 문인을 만나러 의학과 문학의 접경지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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