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무진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장

[의학신문·일간보사]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주변국으로 퍼져 나갈 때만 해도 방역의 모범국가로 불리었던 인구 580여 만명의 싱가포르는 지금은 폭발적인 확진자 증가로 인해 초기의 명성이 무색하게 됐다. 이러한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이주노동자 거주시설에서의 집단감염 발생을 꼽고 있다.

지난 4월 22일 기준으로 누적확진자 1만 141명, 3일 연속 신규 확진자가 1천 명대를 유지하고 있고 누적확진자의 약 80%가 이주노동자 기숙사에 거주하는 취업허가자라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기숙사 방에서 12~20명씩 공동생활하며 열악한 위생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음에도 관리는 당국의 사각지대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정부도 지난 4월 23일 ‘지금까지 관심이 덜 했던 사각지대, 특히 불법체류 외국인과 노숙인, 그와 유사한 주거환경을 갖춘 쪽방 거주민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그만 사각지대만으로 대규모 확산이 발생할 수 있어 방역 당국이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등록취업자 약 86만 3천 명과 불법체류자(미등록) 약 36만 6천 명(2019년 6월 기준, 통계청)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집단생활 등 감염확산에 취약한 환경에 있으며, 언어 장벽으로 인한 정보 부족, 그리고 도시 외곽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도심 약국으로 갈 시간조차 없어 마스크 구매와 보건소 또는 의료기관 방문의 어려움 등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을 위해 법무부에서는 지난 2월 발표를 통해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불법체류 외국인이더라도 코로나19 감염증이 의심돼 검진받는 경우 신상정보 통보의무 면제 조치를 시행했고, 질병관리본부와 지자체에서도 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언어로 코로나감염 예방수칙을 번역해 제공했으나 1339 콜센터 조차 소통이 불가한 경우가 많아 이들의 건강 위협은 지속되고 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은 개발도상국, 북한, 재외동포, 외국인 근로자 등에 대한 건강증진을 통해 전 세계인의 건강한 삶을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이다. 재단 사업의 중요한 한 축인 외국인 근로자 건강증진을 위해 그동안 건강안내서를 다양한 언어로 번역해 외국인 커뮤니티와 무료진료를 통해 제공했다. 무료진료 지원 사업은 언어의 장벽과 평일에 의료기관을 찾아가기 힘들거나 불법체류로 인해 의료기관 방문시 신상 노출 우려가 있는 외국인 근로자 등에 대한 최소한의 건강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지난 2월 이후 감염 등을 우려한 각 진료 봉사 단체들의 진료 취소로 인해 이들을 위한 진료는 현재까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단체에 따라서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의 경우 비대면으로 약만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나아가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 증가는 더욱 이들의 건강과 인권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를 바이러스 전파자로 취급해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거나 일터에서 해고되거나 CCTV로 출입감시 등의 차별을 받고 있으며, 공적 마스크와 같은 코로나 관련 국가정책에서도 이들은 소외되고 있다. 또 경제위기로 인한 실업 등에 내몰린 청년층의 분노가 외국인 근로자를 적으로 만들고 진리의 전당인 대학 내에서조차도 외국 유학생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 등 비교적 이주민에 우호적인 국가에서조차도 우리 국민을 포함한 아시아인에 대해 욕설, 모멸, 출입금지, 불매, 기피 현상이 생겨 마침내 ‘I am not Chinese’ 티셔츠 판매까지 등장했고, ‘아프리카에서 백신 테스트하자’는 더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과 한인 영국 유학생이 폭행당하는 일, 그리고 미국이 60일간 이민을 제한한 일까지도 생겼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우울과 불안, 분노는 점차 대상을 넓혀 지역사회의 집단 불안과 더불어 혐오 현상이 생기고, 그 희생양을 찾게 된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최근 중국인과 조선인을 비롯한 외국인, 유학생, 신천지, 해외 역유입 교민 등이 혐오와 분노의 표적이 된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인권 교육과 민주적으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외국인 근로자들의 권리 수준을 지켜주는 것이 우리를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는 1960~70년대 독일(당시 서독)에 파견된 1만여 명의 간호사와 8천여 명의 광부를 기억한다. 당시 독일은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으로 인해 힘든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외국인노동자를 받아들였고 당시 우리의 젊은 형제자매는 가난을 이기고자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머나먼 이국땅으로 갔었다. 탄광의 막장에서 그리고 병마와 싸우는 병실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번 돈을 경제난에 허덕이는 고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송금하였고, 그 돈은 대한민국의 경제 부흥에 기여했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그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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