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19>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

[의학신문·일간보사] 탁월한 피아니스트는 과연 어떤 피아니스트일까?

탄탄한 테크닉을 겸비한 풍부한 감정 표현과 함께 작품의 감성과 스토리가 녹아져 있는 연주, 한음 한음에 정성이 들어간 섬세한 터치, 때로는 폭발하는 듯한 강렬한 타건과 웅장한 울림 등의 요소들이 어우러져 뛰어난 피아노 연주가 만들어진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세 명의 여성 피아니스트들은 “탁월한 피아니스트”의 자질을 모두 갖추었을 뿐 아니라, 뛰어난 미모, 남다른 패션 감각, 남자 못지 않는 파워를 겸비하여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연주자들이다.

■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Khatia Buniatishvili)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데뷔 앨범 Franz Liszt (2011)

올해 33살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는 그루지아 트빌리시에서 태어난 프랑스 태생의 피아니스트이다. 그녀는 트빌리시 음악원을 거쳐 빈국립음대를 졸업한 후, 호로비츠 콩쿨(2003)과 루빈슈타인 콩쿨(2008)에서 입상을 하게 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 후 2011년에 데뷔 앨범 ‘리스트’를 발표하면서 전 세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신예 피아니스트’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 앨범에는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리스트(Liszt)의 ‘사랑의 꿈(Liebestraum)’과 현란한 테크닉이 요구되는 ‘메피스토 왈츠(Mephisto Waltz)’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니아티쉬빌리는 순결한 고귀함과 끓어오르는 욕망의 기로에서 살았던 리스트의 삶이 자신의 내면 세계와 통한다고 느꼈기에, 데뷔작을 ‘리스트’로 정했다고 한다.

그녀의 연주는 따뜻하면서 강렬하고, 때때로 깊은 우수가 느껴진다. 인형같이 고혹적인 외모와 과감한 노출의 드레스, 매혹적인 화장과 헤어스타일과 함께 더불어 피아노 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그녀의 관능적인 감각은 클래식 애호가뿐 아닌 일반 대중의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https://www.youtube.com/watch?v=3jbHbDena_U&list=PL0Y8KcJFblfSpWF6pIWC8P-cP-Y6lxS9F

■ 유자 왕(Yuja Wang)

유자 왕 앨범 자켓

부니아티쉬빌리와 동갑의 중국 피아니스트가 있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우아함의 상징으로 느껴지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에게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극적이다. 그녀가 무대를 걸어 나올 때면, 순간적으로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도발적, 섹시, 과다 노출, 미니스커트, 킬힐, 플랫폼 슈즈 등 마치 나이트 클럽에 어울린 만한 단어들이 막 떠오르게 되는 것. 하지만 그녀의 연주를 보고 있자면 눈에 거슬리는 야한 여자에 대한 생각은 떠나가고, 어느새 파워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음악에 넋을 잃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2011년 미국 할리우드 보울 공연장에 등장한 그녀의 패션에 청중, 언론, 시청자 모두 큰 충격을 받았고, 연주가 아닌 의상에 관련된 기사는 SNS를 통해 널리 퍼져 나아갔으며, 그 해 10월 카네기홀 데뷔 리싸이틀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피아니스트는 바로 유자 왕. 여느 유명한 피아니스트와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남다른 재능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모든 영재들이 유명세를 타는 것은 아닌 것처럼, 모든 성공에는 자신의 노력과 우연을 가장한 황금같은 ‘기회’가 필요하다. 유자 왕에게는 세 번의 기적과도 같은 우연의 기회들이 찾아왔고, 바로 이 기회들을 통해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 중 가장 큰 화제가 된 연주가 바로 저명한 피아니스트인 마르타 아르게리치(Martha Argerich)의 대타로 연주하게 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유자 왕은 작은 체구에서 상상하기 힘든 괴수 같은 파워, 열정적으로 몰아치는 테크닉과 완벽에 가까운 기교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jQyoD3kGwA&feature=youtu.be

■ 엘렌 그리모(Helene Grimaud)

늑대보호운동에 앞장서는 엘렌 그리모

앞서 소개한 젊은 피아니스트들과 띠 동갑이나 차이가 나는, 아주 색다른 매력의 50대 프랑스 출생 피아니스트가 있다. 그녀 또한 부니아티쉬빌리와 왕과 마찬가지로 음악가로서의 탁월함과 함께 아름다운 외모로 극찬을 받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엘렌 그리모의 매력은 부니아티쉬빌리와 왕과는 사뭇 다르다. 무대에서 드레스 대신 쉬크한 바지와 재킷을 즐겨 입는 피아니스트이며, 시각적인 자극이나 퍼포먼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담백한 그리모의 연주는 그녀의 깊고 파란 눈빛과 함께 어우러져 아련한 감동을 남겨준다.

프랑스의 마르세이유 음악원, 파리 콩세르바트와 국립 음악원에서 수학한 엘렌 그리모는 1987년에 깐느 미뎀(MIDEM: 국제 음반 박람회)에서 클래식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로부터 러브 콜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2002년에는 프랑스 문화부장관이 수여하는 예술 문학훈장을, 2008년에는 국가공로훈장 기사장을, 2005년에는 에코 음악상의 ‘올해의 연주자’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모는 음악적 활동 외에도 두 권의 책을 집필하였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1999년에는 늑대보호센터를 설립하여 늑대보호운동과 더불어 자연보호운동 및 국제적인 자선활동도 펼치고 있다. 그리모의 특별함은 그녀의 섬세한 감수성, 진지한 자세, 심오한 음악적 해석과 울림있는 연주에서 발견된다. 그리모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제 2번을 감상해보면서 음악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몇 달째 이어지는 전염병의 여파로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는 이 시기에 아름다운 벚꽃은 어김없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사회적 거리에 동참하여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 지고, 생활의 많은 제약들로 지쳐 가는 이 시간에, 좋은 음악과 글로 소소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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