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보사 30주년 창간특집]

이기원
와이브레인 대표

[의학신문·일간보사] 헬스케어 산업의 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애플의 애플워치는 심전도 측정기술, 심박수, 운동량 측정기술을 탑재해 미국 3대 보험업체인 애나트와 제휴를 시작했다.

구글은 자회사를 통해 핏비트를 21억 달러에 인수했고, 생명과학 자회사인 베릴리를 통해 연속혈당측정기, 의료용 스마트렌즈 등을 개발하며, 10개 이상의 헬스케어 연구를 진행 중이다. IT와 헬스케어의 결합이 이제 약의 진화를 부추긴다.

전자약(electroceuticals)은 전자(electronic)와 약(pharmaceutical)의 합성어로 전류, 자기장 등의 에너지로 뇌 또는 신경 기능을 조절해 치료 효과를 내는 기술분야를 뜻한다. 기존 약들은 혈관을 타고 돌면서 원하지 않는 부위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전자약은 치료가 필요한 특정 신경만 선택해 자극하기 때문에 인체에도 안전하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전자약 시장규모는 2016년 172억 달러(약 20조원)에서 2021년 252억 달러(약 29조원)로 추산되고, 연평균 성장률 8%에 이른다. 세계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식품의 약국(FDA) 승인을 받은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5월 미국 전자약 기업 노보큐어는 기존 항암제와 병용 치료하는 뇌종양 치료 전자약에 대해 FDA 승인을 받았다. 미국 인스파이어 메디컬 시스템스사는 2014년 기도의 신경을 자극해 수면무호흡증 치료로 FDA 승인을 받았고, 미국 엔테로메딕스사는 중증 비만을 치료하는 전자약을 개발해 2015년 FDA 승인을 받았다. 또한 칼라헬스는 손목시계 형태로 말초신경을 자극해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전자약을 개발해 지난해 FDA 승인을 받았다.

자가면역질환·염증치료 효과 입증

최근 자가면역질환 및 염증치료에 전자약을 도입해 효과를 입증한 바 있다. 미국의 페인 슈타인 의학연구소의 케빈 J. 트레이시(Kevin J. Tracey) 연구팀은 미주신경이 면역체계를 조절하는데 도움이 되는 화학물질을 방출한다는 연구를 통해 미주신경자극술을 통한 자가면역질환 및 염증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미주신경은 인체에서 가장 긴 뇌신경으로 소화관과 뇌 사이의 상호 신경작용 뿐만 아니라, 염증조절, 장내 항상성유지와 음식 섭취, 포만감, 에너지의 항상성 조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레이시가 설립한 셋포인트메디컬은 인체에 삽입하는 형태의 미주신경자극 장치를 통해 류마티스관절염과 장의 염증과 관련이 있는 크론병에 대해 FDA의 허가를 받았다. 이제 전자약은 염증성분으로 유발되는 심혈관질환, 대사질환 및 치매와 같은 질환은 물론, 미주신경의 저활성화로 나타나는 루푸스와 같은 자가면역질환 치료에도 고려되고 있다.

기존 인체에 심는 임플란트 형태의 전자약은 효과 대비 수술적 방식에 대한 개선의 노력이 있어 왔다. 전자약의 최근 추세는 인체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소형화기술과 비수술적 방법을 통한 사용과 휴대가 간편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구글과 GKS의 합작사인 갈바니 바이오 일렉트로닉스는 쌀알만 한 크기의 소형장치를 체내에 삽입해 전기 자극으로 류마티스관절염 증상을 치료하는 전자약을 개발 중이다. 7억 달러(약 8200억원)을 투자해 2023년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기업들이 전자약 사업에 매진해오고 있다. 2013년 카이스트 뇌자극, 기기 소형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전공한 석·박사들이 모여 창업한 와이브레인은 뇌질환 및 신경질환 분야의 전자약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손바닥 크기의 전자약을 통해 다양한 뇌질환의 환자들이 진단·치료·관리를 위해 동시에 전자약 플랫폼에 접근할 수 있다.

국내서도 다양한 기업 전자약사업 매진

특히 환자들은 의사의 처방을 받은 전자약을 병원을 자주 방문하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치료를 위한 최적의 전류자극을 만들고, AI기술이 자극강도를 즉각 모니터링하고 제어한다. 처방대로만 동작하도록 설계한 전자처방기술이 전자약의 오남용을 원천 차단하면서, 전자약 사용 순응도를 실시간 관리하는 기술까지 적용됐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자살자의 80%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동반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로 정신건강치료를 받는 사람은 23%에 불과하다. 작고, 간편하고, 부작용 없이 치료가 가능한 전자약이 가장 먼저 도입돼야 할 분야가 바로 뇌질환 영역이라고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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