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보사 30주년 창간특집]

성진경
뷰노 의학이사(CMO)

[의학신문·일간보사] 최근 몇 년 동안 의료분야에서 인공지능 역할에 대한 기대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공지능이 의료인력을 바로 대신할 것 같이 여겨졌던 2016년 대, 딥러닝의 대부로 잘 알려진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는 단 5년 안에 딥러닝이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능가할 것으로 보고,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양성하는 것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고 말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 인공지능이 실제 임상 현장에 도입되기까지는 정확한 니즈 파악부터, 각기 다른 학습 가능한 형태의 데이터 구축, 소프트웨어 개발, 임상적 검증, 식약처 인허가 획득에 다다르는 모든 과정이 다른 분야에 비해 훨씬 어려웠다. 이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응당 요구되기 때문에, 의료 인공지능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일부 시각도 존재한다.

기대가 우려로 바뀌는 과정도 잠시, 이제 인공지능은 연구실에서 벗어나 실제 의료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시작점에 있다.

국내에서는 2018년 5월 뷰노가 ‘뷰노메드본에이지’로 최초로 식약처 인허가를 획득한 이후 인공지능 의료기기 인허가 사례가 빠른 속도로 증가 해왔다. 또한 2019년 12월 말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혁신적 의료기술의 요양 급여 여부 평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높은 수준의 peer-review 있어야 별도의 요양 급여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산업계의 아쉬운 목소리가 있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급여 가이드라인이 발표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의료 개발에 참여한 일부 대형병원만이 아니라 중소병원을 포함한 실제 임상 현장 도입이 본격화될 것임을 보여줘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국내에서 병원에 도입된 의료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들은 골 연령 판독처럼 의료진 입장에서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업무의 효율을 높여주거나, 흉부 X-ray처럼 짧은 시간에 다량의 판독을 해야 하는 경우 진단 정확도를 높여줌으로써 의료진과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처음에 크게 다가왔던 인공지능이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업무 효율 향상으로 인력 부족 문제나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한 의료진 번아웃 등 의료계에서 항상 제기돼 왔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또한 상대적으로 숙련도가 낮은 의료진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았을 때 진단 정확도의 향상 폭이 더욱 크기 때문에, 어려운 사례에 대한 오진율을 줄이고 전반적인 의료의 질 향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의료 인공지능은 영상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안저질환 진단이나 피부암 진단 등에서도 높은 정확도를 보여주고 있고, JAMA나 Nature 등 저명한 의학학술저널에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해당 의학분야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국내 식약처 인허가를 받는 사례가 생긴다면, 안과 전문의나 피부과 전문의가 부족한 지역에서 의료 공백을 메꾸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더 나아가 의료 인공지능 연구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병리과, 심장내과, 소화기내과, 치과 영역 등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유수의 국내기업에서도 제품화를 향해 한발씩 다가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의료산업은 자율주행차처럼 사고 위험성이 큰 분야로, 현재 최종 결정은 인공지능이 아닌 의료진의 몫이다. 모든 의학적 검사가 그렇듯 인공지능 진단 소프트웨어도 어느 정도의 위양성과 위음성이 있기 때문에, 의료진이 인공지능과 각 제품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의료 인공지능은 100%의 정확도를 보이거나 모든 문제를 만능으로 해결해주지 못한다. 대신에 진단 정확도와 진료 업무의 효율을 높임으로써 의료의 질을 높이고 환자의 outcome을 개선하는 보조적 도구로서 지속해서 발전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환자들에게도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의료진 혹은 의료 인공지능이 단독으로 진단한 결과보다 의료진이 인공지능을 사용해 진단 업무를 수행하였을 때 정확도가 가장 높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는 의료 인공지능 자체가 의료진을 대체한다기보다는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의료진이 더욱 높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실제 임상 진료 현장에서 의료진의 적극적 활용과 feedback만이 인공지능 의료기기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인공지능 기술력은 가히 세계 상위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개최된 세계 영상의학분야 최대 학술대회이자 전시회인 북미방사선의학회(RSNA)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연구발표와 전시가 호평 받았고, 이는 해외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국가 정책으로도 우리나라 식약처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의료기기 인허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글로벌 공룡기업들이 점점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의료 인공지능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이 한 발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실제 임상 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하도록 의료산업계의 실상을 반영한 규제 완화와 제도 및 산업적 환경 조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