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보사 30주년 창간특집]

이언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인류 역사에서 기술의 진보는 항상 우리의 삶의 방식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불의 사용, 수레바퀴의 등장, 철기, 증기기관으로 촉발된 교통혁명, 이어지는 시계의 폭발적 보급 등 예를 들자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2016년 우리사회에 느닷없이 나타나 인공지능이라는 화두를 던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도 벌써 4년이 지났다.

그로부터 약 6개월 뒤 IBM의 왓슨포온콜로지가 가천대길병원을 필두로 의료에 들어왔다. 지금 시점에서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의 진보가 의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앞으로 의료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어떻게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이 난을 통해 짚어 보고자 한다.

현 시대에 의료계의 뜨거운 이슈는 폭발적인 의료비 상승과 의료접근권의 불평등이다. 의료비 상승은 의료비용의 상승과 연결되어 있다. 의료비 상승은 미국·유럽 등 선진국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중진국과 개발도상국 역시 원인은 다르지만 의료비 상승으로 인한 나름의 문제를 겪고 있다. 미국 선거마다 의료비상승이 이슈로 등장하고 있고, 미국이 부도가 난다면 아마 북한 미사일보다 의료비 상승 때문일 것이라는 농담이 돌아다닌다.

이러한 의료비의 상승은 나라간 계층간 심각한 의료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비 상승 역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의료비의 상승이 실제 의료의 질 상승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데 있다.

의료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접근성(Accessibility), 비용(Cost), 의료 질(Quality)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비용대비가치(value for cost)를 향상시켜야 한다. 그동안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기는 방안을 찾아내기란 매우 어려웠다. 의료의 유통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여러 이해당사자와 그에 따른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료 질을 좋게 하자면 비용이 올라가고 비용이 올라가면 접근성은 나빠진다. 비용을 낮추면 접근성은 좋아지나 의료의 질은 떨어진다. 이렇듯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기란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 그러나 인공지능기술의 발전이 이 지난한 과제에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WHO(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Health for all’을 내세우며 의료를 인간의 기본인권 차원에서 바라보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최소한의 기본적인 의료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 할 수 없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다. 인류의 약 1/3이 평생 제대로 훈련받은 의사를 만날 수 없다. 의료비용의 상승이 이러한 현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AI진료·수술로봇 소외지역에 필요

인공지능진료와 수술로봇은 이러한 소외지역에 먼저 필요하다. 고난이도 수술을 하는 선진국에 필요한 로봇보다 간단한 창상봉합이나 시술과 소독을 하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로봇이 먼저 개발 되어야한다. 인공지능 진료도 이러한 소외지역에 일차 진료를 담당하는 방향으로 먼저 진화해야 한다. 영상판독, 피부과진료, 안과진료, 당뇨 고혈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당장 진료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인공지능 진료 시스템이 시급하다. 특히 선진국과 의료접근권의 격차가 크고 인공지능이 이러한 격차를 매우기 용이한 분야부터 서둘러 도입되어야 한다.

피부과 진료를 살펴보면 피부과 진료는 인구수에 비해 전문의의 숫자가 매우 부족한 분야이다. 한편 전문의로부터 진료를 받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치료결과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크다.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서는 전문의와 일반의의 격차를 줄여야 하는데 단기간에는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이 경우 일반의가 피부과진료 보조를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상당부분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진료의료의 질을 희생하지 않고도 비용과 접근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인공지능을 적절히 활용하여 모든 이에게 질 좋은 의료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의료비용을 줄이려면 의료시스템의 혁명적 개선이 필요한데 이것 역시 지난한 과제이다. 현재의 의료시스템은 ‘fee for service’를 기반으로 구축되었다. 진료한 양에 근거하여 수가가 지불되는 구조에서는 자연스럽게 진료의 양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현재는 결과와는 무관하게 진료에 투입된 서비스의 양으로 지불할 수밖에 없지만 향후 진료결과를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하여 의료비를 지불하려면 역시 인공지능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의료서비스는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과다하다. 이러한 비용은 잘 보이지 않지만 실제 진료의 질과 접근성 개선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중간자(middle man)에게 지불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개원을 성공하려면 환자를 많이 치료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위치가 좋은 곳, 즉 유동인구가 많은 목이 좋은 곳에서 개원을 해야 한다. 그러한 곳은 당연히 지불해야 할 임대료가 비싸다. 즉 의료비용의 상당부분이 건물주에게 유입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불가피한 점이 있다고 인정해도 과다한 부분은 체계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의료비용이 의료의 질과 접근성 개선에 쓰이기보다 유통비용 등 간접비용에 과도하게 투입되는 일은 막아야 의료시스템이 지속가능하다.

인공지능과 더불어 주목받는 기술적 진보는 통신기술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5G 상용화 시대가 되었다. 원격진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대용량의 데이터가 빠른 속도로 전송되어야 하며, 보안과 데이터의 무결성(integrity)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여려가지 기술이 이미 활용단계 수준으로 진보하여 우리 곁에 있다. 의료의 질을 희생하거나 의료비용의 증가 없이 의료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초고속통신망을 통한 온라인 진료와 오프라인 진료를 유연하게 병행해야 한다. 의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진료를 할 수 있어야 하고 환자의 입장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신뢰도 높은 진료에 접근 할 수 있어야 한다.

온·오프라인 진료 병행은 세계 추세

이미 미국과 중국 등에서 텔라닥(Teladoc) 같은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제 온라인 진료와 오프라인 진료의 병행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아직 성급한 예측일 수 있으나 코로나19 감염확산 사태가 온라인 진료 시대를 여는 방아쇠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감염병은 앞으로도 반복 될 것이고, 사람들은 불가피한 경우만 오프라인에 의존하고 가능하면 온라인으로 일상의 일을 해결하려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우리 인류의 생활패턴이 온라인 중심으로 변화할 것이다. 의료 또한 예외 일 수 없다. 따라서 의료계도 ‘어떻게 하면 원격진료로 이야기 되는 온라인 진료로의 방향성을 멈추도록 할까’가 아닌, ‘이러한 경향성 속에서 의료계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로 바뀌어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이 의료분야의 국경간 의사소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 세상에는 7000개가 넘는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구글을 비롯한 수많은 회사들이 자동 동시통역을 위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다. 각 언어간에 동시통역이 이루어지면 의료의 국경은 허물어질 것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전세계 의사들에 접근할 날이 머지않았다. 또 다른 의미의 국경 없는 의사회가 출현할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환자의 욕구에 기반하고 있으며 결코 인위적으로 멈출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이 정부나 몇몇 전문가, 초대형 의료기관이 아닌 일반 의료 소비자 시장에 먼저 자리를 잡고, 기술의 성격도 다양한 환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유동성을 띨 것이다. 의료에서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의 진보로 초래된 변화의 물결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환자들은 더 이상 의료에 대해 무지하지 않다. 의료, 환자의 필요에 자신을 맞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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