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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보사 창간 30주년 특별초대석]의료계 원로에게 듣는다.한광수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

"코로나 위기에서 보여준 숭고한 희생 정신, 의사들의 본래 모습으로 국민들 가슴에 남겨야"

한광수 의약평론가회 회장

2020년 봄 의료계는 고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문재인 케어로 잔뜩 지쳐있는 상황인데 느닷없이 신종 감염병 ‘코로나 19’가 엄습하여 대다수 의료기관과 의료인들이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그러나 국가 보건문제에서 위기가 닥치면 치다꺼리는 언제나 병원과 의사들의 몫이 된다. 국가 방역체계가 어떻고, 의료제도와 시책이 어떻고 하는 문제를 떠나 의사들은 나서서 막고 볼 일이다. 이번에도 위기는 고조되었지만 의사 등 의료인들의 희생적인 노력 덕분에 코로나 19의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는 양상이다. 물론 아직 긴장의 끊을 놓을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코로나 19와의 사투에서 보여준 의료기관과 의사들의 전문가 정신은 눈물겨울 정도로 빛났다. 국민들도 의사들의 그 같은 헌신과 희생정신에 감동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분명 코로나 19는 국가적인 큰 재앙이었지만 ‘역설’이라고나 할까, 이번 사태는 의사들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다소나마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 4월 2일은 본지(일간보사)가 창간 30주년을 맞는 뜻 깊은 날이다. 이에 본지는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보여준 의사들의 전문가 정신을 앞으로도 어떻게 정립하여 국민적인 신뢰와 존중을 계속 받아 나갈 것인지, 특히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항구적인 의료발전 방안은 무엇인지 그 답을 찾는 노력으로 특별초대석을 마련했다. 초대석의 주인공은 한광수 대한의사협회 고문이자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이다. 한광수 회장은 공군의무감 출신으로 서울시의사회장과 대한의사협회 회장(직무대행)을 지냈으며, 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를 거쳐 현재는 의약학계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임인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을 맡고 있는 원로다. 현대의료의 산증인이자 역사의 부침을 함께 해 온 경륜가의 생각을 통해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요즘 ‘코로나 19’ 확산 사태로 온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회장님께서도 큰 요양병원을 경영하시는데 어려움이 많겠습니다. 어떻게 대처하시는 지요.

⇨힘들어요. 철저한 관리 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외부에서의 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해 병원 전체를 봉쇄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직원들 고생도 많고, 환자나 보호자들의 불편도 여간 큰 일이 아닙니다. 그나마 우리처럼 장기 입원하여 관리하는 병원은 좀 나은 편입니다. 외래진료와 급성기 병상 운영에 집중하는 일반 병의원들의 부담이 훨씬 클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조기에 종식되길 바랄 뿐이지요.

 창간독자로 알고 있습니다. 일간보사가 1990년 4월 2일 창간되었는데 회장님께서는 당시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계셨는지요.

⇨벌써 그리되었나요. 세월 참 빠르네요. 저야 늦깎이 개원 의사였지만 일찍이 의사단체에 참여했고, 의료현안에도 관심이 많아 일간보사를 창간 때부터 꿰차고 살았지요. 사실 저는 1965년도에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바로 입대하여 군의관으로 젊은 시절을 모두 보냈어요. 1983년도에 예편하여 3년 동안 외과 봉직의로 경험을 쌓은 뒤 1986년 마포에 개업을 했는데 당시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던 ‘화상진료’를 특화하여 일찍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일간보사가 창간하던 1990년 4월이면 제가 서울시의사회 대의원으로 활동하던 시기 같습니다. 당시 마포에 개업하던 의사가 150여 분쯤 됐었는데 가톨릭의대 출신이라곤 4명밖에 안되었지만 그래도 시의사회 대의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군대 얘기가 나왔는데 당시 의사들에게 직업군인은 별로 인기가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떤 동기로 군의관으로 장기복무를 할 수 있었나요. 군 경력도 듣고 싶습니다.

⇨사실 젊은 시절에는 대양을 누비는 마도로스 같은 직업을 떠 올려보곤 했어요. 그래서 기왕 군데는 갔다 와야 하는 일이고, ‘그렇다면 빨리 갔다 오자’는 심산으로 의대 졸업 후 군의관을 자원했고, 그곳도 해군을 택했어요. 군에서 외과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아마 직업군인이 체질에 맞았던 것 같아요. 특히 군에서 외과 수련을 받으며 미국에 유학하는 특전도 누렸는데 이 때 최신의학, 그것도 피부이식 기술 등 성형외과를 섭렵하였기에 나중에 개업할 때 화상크리닉을 열수 있었던 모멘텀이 되었다고 봅니다. 지난 55년의 의사생활 중 꼬박 18년간 군문에 있었는데 대부분을 해군에서 복무했고, 1979년 공군으로 전군하여 공군의무감을 지낸 뒤 예편했지요. 어쨌거나 제 의사 인생 중 군의관 시절이 가장 보람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오랜 군 생활 뒤에 개업을 하셨음에도 개원 직후부터 의사단체에 참여해 오셨습니다. 의사단체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동기나 목적이 있었는지요.

⇨사실은 제가 공군의무감 때 의협 감사를 경험 했어요. 당시 감사로서 특별히 의협에 기여한 바는 없지만 의사단체 조직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마포에서 개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 선배이신 김영택 박사님(서울의대 1952년 졸업)이 마포구의사회장이 되신 거예요. 그 어른을 친 형님처럼 모셨는데 그 분 손에 이끌려 심부름도 하고 돕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의사회 조직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1980년대 후반 서울시의사회 파견 대의원 이었고, 이어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서울시의사회장 등 과분한 직책들을 맡게 됐었습니다.

대한의사협회 회장도 하셨지요.

⇨직무대행을 했지요. 지난 2000년 의약분업을 반대하며 휴진 투쟁을 벌였던 김재정 전 회장이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한 달 동안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었고, 나중에 김재정 회장이 회장직을 사퇴하면서 다시 회장 직무대행을 맡아 직선제 선거제도를 만들고 신상진 회장을 선출하여 바통을 넘겨줄 때까지 5개월 반 정도 직무를 더 수행했었지요.

긴박했던 시기에 의협회장(직대) 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수행하였기에 돌아보면 감회가 새로울 듯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의약분업 반대투쟁이 가장 큰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이건 제 개인의 일이 아니고 대한민국 의료사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당시 60의 나이에 영어(囹圄)의 생활까지 경험했으니 꿈만 같습니다. 그러나 정의와의 싸움이었고, 의사들의 자존을 지키고자 했던 업보였기에 고초라기보다 훈장으로 삼고 있습니다.

약분업 반대 투쟁 때 구속되어 한 달간 수감생활

'고초' 였지만 '정의'와의 싸움이었기에 후회는 없어

벌써 20년이나 되었네요. 당시 고생 참 많으셨지요.

⇨2000년 7월 김재정 회장이 구속되어 직무대행으로 의협을 이끌었는데 당시 의쟁투에서 회원들에게 파업 여부를 물은 결과 찬성 비율이 70% 이상 나왔어요. 그리고 울산시의사회와 경기도 파주시,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은 이미 파업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회원들의 의사를 존중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7월 31일 저녁 ‘내일(8월 1일)부터 파업을 결행하겠다’고 선언 했습니다. 그러자 바로 사전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저는 8월 1일 오전 제 발로 걸어 들어가 구속되고 말았지요. 그리고 한 달간 수감생활을 한 뒤 8월 30일 보석으로 나왔는데 참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의협회장(직대)을 마칠 때 직선제 선거제도를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그 제도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선제에 대한 문제점은 지속 제기되는 실정입니다.

⇨다른 것 보다 항상 낮은 투표율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지요. 2001년 7월말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의협회장 직선제 선출안이 통과된 이후 당시 법제이사였던 서울의대 이윤성 교수와 함께 선거제도의 틀을 만든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그러나 직선제를 하려면 엄격한 선거관리규정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왜 빨리 선거관리규정을 만들지 않느냐”는 주변의 성화 때문에 서둘다보니 규정이 촘촘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같아요. 실망스러웠던 것은 첫 직선에서 회원의 50%는 아예 유권자가 될 수 없었고, 유권자 중에서도 절반가량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도 회장을 뽑았으니 대표성에 대한 신뢰가 제기되었던 것이지요. 최근의 상황도 별반 달라진 게 없는데 어쨌건 회장 직선제는 좀 손질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의협회장 선거관리규정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물론 전문가와 여러 직역이 더 검토해봐야 하겠지만, 현재와 같은 방식보다는 차라리 직역이나 직능별 선거인단을 구성해서 선거인단 투표로 선출하는 방법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대의원제와 직선제의 중간 정도로 봐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오히려 좀 더 많은 회원들의 뜻을 반영하고, 혼탁하지 않게 선거를 치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의료 정상화 위해선 정책역량 확보하여 정부 설파해야 

정치권의 지지와 국민적 신뢰 얻기 위한 노력도 중요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 도입, 2000년도의 의약분업 시행, 그리고 최근의 ‘문 케어’에 이르기까지 지난 30년 우리나라 현대의료사가 질곡으로 점철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국가 의료시책 가운데 무엇이 가장 잘못되었다고 보시는지요.

⇨ 본질적인 문제는 의료보험 제도를 잘못 시작한데 있습니다. 알다시피 1977년 처음 의료보험을 도입 할 때 일본의 제도를 베껴오면서 모두 의사에게 불리한 것만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정부가 국민들에게는 선심을 쓰면서 의사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되풀이되고 쌓여 현재와 같이 겹겹이 매듭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개해 나갈 방법이 없을까요.

⇨국민들도 오랜 세월 값싼 의료에 길들여져 있는데다 ‘문 케어’와 같이 인기에 영합한 정책이 남발 되다시피 하여 걱정입니다. 한국의료의 정상화와 의료가 산업으로 경쟁력을 가지고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의료계가 보다 전문적인 정책역량을 확보하여 정부를 설파해 나가야 된다고 봅니다. 특히 이번에 우리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국민들이 외신보도 등을 통해 한국의료가 얼마나 선진화 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가격은 미국의 10분의 1이하라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잖아요. 이를 십분 활용하여 국민과 정치권의 지지와 신리를 계속 받아 잘못된 의료정책을 하나 하나 바로잡아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회장으로 재임할 때인가 의사들에게도 국가가 연금을 주어야한다고 제안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국민의료보험시대가 되면서 의사들은 국가가 정한 수가만 받고 환자를 진료합니다. 특별히 이윤을 추구하기 어려운 구조인데 그렇다면 의사들의 노후는 누가 어떻게 책임지겠어요. 전선을 지키는 군인이나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처럼 국민건강을 지키는 의사들에게도 공무원에 준하는 연금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였습니다. 비단 금전적인 집착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묵묵히 봉사하는 민초의사들의 가치를 국가가 제대로 알아달라는 요구인 것입니다. 특히 일선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개원의들에게 은퇴 후 공무원에 준하는 연금을 반드시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들 숫자 늘고 직능 분화되어 뭉치기 어려운 구조 

상경하애의 정신으로 적극 소통하는 조직문화 만들어야 

국가 시책도 문제지만 의료계 내부의 결속이나 대응력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래요. 의사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의사들의 직능이 다양화 되면서 구심점을 모으기 어려운 측면이 많습니다. 의료기관 종별, 전문 과목별, 세대별로 각자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전 같은 결속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정부가 각개 격파하기 좋은 형국이 벌어지는 겁니다. 어쨌거나 조금씩 양보하고 역지사지 하는 마음이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니까 참 안타깝습니다. 각론에서는 이해가 좀 다르다 할지라도 의업이나 의권을 지켜야 된다는 대명제에서 모든 의사들이 의협을 중심으로 뭉쳐야 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의료사회가 상경하애(上敬下愛)의 정신으로 적극 소통하는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힘이 모아지고 투쟁이던 정책개발이던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거든요.

작년여름인가 의협지도부가 문 케어에 반대하며 릴레이 단식투쟁을 벌일 때 단식농성을 벌이던 지도부를 찾아 위로하던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광수 회장이 단식중인 정성균 의협 총무이사 위로 방문한 모습.

 ⇨사실 요즘 의협지도부의 상임임원들과 특별히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후배 의사들이 고생하며 투쟁하는데 이를 격려하는 것은 회원의 한사람으로서 책무이고, 특히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천막 농성장에 갔더니 정성균 총무이사께서 단식하고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고 선배라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단지 제가 정리해서 발간한 ‘의권쟁취투쟁사’와 투쟁기금을 전달하고 왔는데 발길이 참으로 무거웠습니다.

3년 전 의협이 회관건립사업을 처음 시작 할 때 가장 먼저 회관건립기금 1,000만원을 기탁하여 화제가 됐었지요.

⇨자랑거리는 아니고, 그것도 의사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책무를 한 것입니다. 내 작은 정성으로 우리의 얼굴이고 상징인 의협회관이 멋지게 우뚝 선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어요. 저는 특별히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당당한 의사라는 자존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기금을 냈습니다. 아마 13만 회원 모두가 각자 10만원, 또는 그 보다 조금 씩만 더 출연한다면 회관건립사업은 문제가 없을 거라고 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1916년 의사가 되신 선친과 저 보다 7살 위인 서울대 출신 한영수(1958년 졸업)와 3살 위인 연세대 출신 한남수(1962년 졸업) 두 분의 형 등, 3분 명의의 기금도 각각 100만원씩 납부 했습니다. 아마 작고회원 명의로도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하면 많은 회원들이 호응할 것 같습니다.

 요즘 대다수 의사들, 특히 중소병원의원을 운영하는 개원 의사들이 경영적으로 대단히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를 짊어진 의사들에게 힘이 될 만한 덕담을 부탁드립니다.

⇨저도 중간 규모의 요양병원을 운영 중이라 절감하고 있지만 의사 개인의 풍요는 이미 따지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고, 경영으로 들어가면 정말 복잡하고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보았듯 전문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만약 의사가 더 이상 지치거나 무너진다면, 국민건강은 누가 지키겠습니까. 정부가 생각을 달리해야 된다고 봅니다. 아마 생각을 바꿔 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우리 의사들도 상황은 어렵지만 높은 직업윤리를 실천하며 새로운 지식과 기술로 무장하여 환자 곁으로 다가가는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의사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정부도 의사 프랜들리 정책을 펼 수 있는 명분을 삼을 수 있다고 봅니다. 당장은 힘들지만 모두가 인내하면서 전문가로서 꿈을 키우는데 집중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으로서 의료문화 발전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계시는데 의약평론가회의 역할이나 지향하는 목표는 어떤 것인지요.

⇨한국의약평론가회는 의학신문사에서 추천한 의사, 약사 평론가들이 각자의 역할을 모아 의료와 약학계의 품위 있는 발전을 이끌고자 하는 모임입니다. 회원 개개인은 의료, 약학 세부 전분야의 최고 권위자로서 소위 오피니언 리더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입니다. 앞에서 의료계의 비전을 위해 의사들의 직업윤리와 직업 전문성을 얘기했는데 사실 한국의약평론가회에서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의료의 건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들을 토론하며, 모아진 지식과 방법을 확산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점차 역할이 쌓이면 의료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기여하는 포럼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일원화 달성을 위한 여론을 모으고자 노력 중이며, 교육일원화를 통한 접근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열정이 넘치십니다. 의료사회에서의 활동도 대단하시고, 요양병원도 운영 중 이신데 의사로서의 남은 목표나 꿈이 궁금합니다.

직접 회진하면서 환자의 손을 잡아주는 한광수 회장

⇨일하는 게 욕심처럼 비춰질까봐 걱정입니다. 그러나 이 나이에 제가 무슨 명예욕이며, 물질적인 욕심이 있겠습니까. 이 만큼 건강한 것을 고맙게 생각하며, 사는 동안 제가 가진 것을 나눠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지금 요양병원도 저로서는 경영의 개념은 아니고 사회복지사업의 실현이라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함께 늙어가는 노인들에게 보다 안락하고 품위 있는 병원 생활과 생의 마감을 돕겠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고, 부수적으로 직원들에게 보다 질 좋은 직장을 제공하는 것으로 미력이지만 나눔을 실천 하는 것을 보람으로 삼는 정도입니다.

오랜 시간의 대화였지만 한광수 회장은 막힘이 없었다. 박식함에 달변가의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사에 거리낌 없이 반듯하게 살아왔다는 자신감 일 수 있고, 내면의 넉넉함 때문으로 읽혀졌다. 광수 회장은 원래 개성 사람이다. 특히 그의 선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도적인 복지사업을 펼쳐온 ‘유린보은동산’의 설립자인 의당 한철호 선생이다. 선친은 유린보은동산 설립에 앞서 1937년 개성유린관을 설립하여 병원 및 실비 이발관으로 서민들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했고, 기아와 고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보육사업과 양로사업을 추진한 우리나라 원조 복지사업가였다. 이 복지사업은 한광수 회장의 모친으로서 독실한 원불교 교도였던 헤타원 윤치덕 대호법으로 이어졌고, 한광수 회장도 1979년부터 약 30년간 유린보은동산의 법인 이사장으로 봉사했다. 특별히 가문을 소개하는 것은 한 회장의 선친이 ‘덕불고 필유린 (德不孤必有鄰)’을 좌우명으로 삼아 재단의 명칭에도 유린(有鄰)을 붙였다고 해서다. 그 후예인지라 한광수 회장도 외롭지 않아 보이고,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안병정 기자  bjahn@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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