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구

<대한의학회 회장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COVID-19라고 명명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폐렴 환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 경험했던 SARS, 신종플루, 메르스와 비교해 볼 때 깜짝 놀랄 정도의 강력한 전염력을 갖고 파급되는 기세가 공포에 가깝다.

하루에 수 십 명의 환자가 새로 발생되는 것만 하여도 매우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이 감염성 질환의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며칠간 전국적으로 하루에 백여 명의 신환이 발생되었다는 소식에 질병의 기세가 좀 꺾이는 것을 기대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은근한 희망을 걸어 봐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도 많이 맞으면 이력이 생긴다는 말과 같이 워낙 폭발적인 환자의 발생에 놀란 가슴이기 때문에 하루 수십 명이 발생되었다는 소식에는 둔감해 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것은 감염원에 대한 사회적인 높은 관심사 이다. 집단 감염이 발생되었을 때 누가 첫 환자로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병을 전파 했을까 하는 점에 국민들은 지나칠 정도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방역이라는 관점에서 초기 진화를 위해서는 감염원과 경로를 빨리 파악하여 질병 전파의 맥을 끊는다는 의미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COVID-19의 감염은 우리의 기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역사회 감염으로 이환 되었다. 지역사회 감염이라는 뜻의 이해를 돕고자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매일 만나는 그 모든 사람들이 환자일 수 있다는 말이다. 아울러 지역사회 감염 단계에서 환자들은 자기가 환자라는 사실을 알 수도 없을 뿐더러 병을 어디서 옮았는지도 알지 못하며, 자기가 병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옮겨 주었는지도 당연히 모르게 되어 있다. 한 마디로 모든 환자들이 피해자다.

서울의 어느 call center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되었는데 깜깜히 감염이라고 언론마다 난리를 떨고 방역당국에서는 감염원을 찾겠다고 분주하다. 지역사회 감염은 본래가 깜깜히 감염이다.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에는 소위 첫 번째 환자에 해당하는 감염원은 절대 찾을 수 없다. 아울러 찾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 한다. 어느 한 집단에서 누군가 처음 감염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환자 역시 어디서 병에 옮았는지 모르는 엄청난 피해자이다. 그래서 지역사회 감염이 무서운 것이다.

이번 COVID-19 폐렴이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의 저급한 질시 현상은 여지없이 표출되었다. 환자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의사나 간호사는 자신들이 전염병에 걸리는 것을 무릅쓰고 사투를 벌리고 있다. 그러는 반면 다른 한편인 SNS에서는 환자의 신상을 공개고 죄악시 하는 파렴치한 일이 벌어졌다. 질시의 눈초리로 예리한 공격의 창을 꼬나 잡고 어제까지 동료였고, 미래에도 친구가 될 수 있는 환자를 향해서 일순간에 창을 날려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인류 역사 속에 가장 파렴치한 패륜 행위로 기록될 법한 마녀사냥과 다름이 없다. 16, 17세기에 진행된 마녀사냥은 6만 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주로 여인들)을 마녀라는 올가미를 씌워서 불태워 죽였다. 마녀의 누명을 씌워 불에 태워 죽이는 것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환자의 신상을 털고 공격하여 한 사람을 매장하고 거의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나 차이는 전혀 없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갈등과 불신의 원한만 남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지역사회감염에서 감염원을 찾는 일은 의미가 없다. 그 이유는 첫째, 정확하게 찾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요란만 떨어 국민들을 불안에 빠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둘째, 감염원을 찾는 것이 질병을 차단하는 방역에 실효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며, 셋째, 사회적인 분열과 분란만 초래하는 것이며, 넷째는 그 와중에 감염원으로 어떤 사람이 잘못 지칭되는 경우에는 이 사회의 추악한 모습이 그대로 노정(露呈)될 것이다. 이러한 정황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언론도 사회적 관심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 주었으면 좋겠다.

코로나 폐렴에 걸린 환자들은 본인들의 사투와 의사들의 협력으로 질병에서 회복되면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감염원으로 낙인찍힌 사람은 질병으로부터 회복도 힘들고, 회복된다 하여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명심 했으면 좋겠다. 우리 이웃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도 사용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끝으로 당국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필자는 과거 메르스가 점차 숙으러들 무렵 한 기고문을 통해서 메르스와 싸운 환자나 의사 그리고 관계 공무원과 국민들은 모두가 피해자이고 동시에 모두가 승리자 이다. 그렇기 때문이 이 모든 사태가 종료된 이후에 과거의 잘못된 관행처럼 문책의 칼을 번뜩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 하였다.

결국 글 썼던 사람의 희망은 그저 한낱 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많은 사람들이 문책 속에 깊고 큰 한을 품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흔히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이번 COVID-19 폐렴은 감염성 질환이기 때문에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 위대한 극복과 함께 그야말로 전철을 밟지 않는 아름다운 끝맺음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