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 없는 의료진, 블랙홀처럼 인력 흡수하는 코로나…진료·수술·케어 프로세스, 도미노처럼 쓰러져

[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전국을 강타한 가운데 국가보건의료시스템의 핵심인 의료전달체계가 왜곡을 넘어서 완전히 무너지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환자 내원부터 수술, 처치 후 모니터링까지 프로세스 전체가 무너지는 현상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이를 어떻게 이겨내야할 지를 살펴본다.

②코로나19, 의료인력 삼켜버리는 '블랙홀'

중증환자 한 명 치료하려면 5명은 달려들어야

코로나19 확진환자가 2일 기준 전국 4212명을 기록한 가운데 이에 대응하는 의료인력 또한 급격히 소진되고 있다.

현재 코로나19 중환자 한 명당 투입되는 인력은 현장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최소 5명 이상의 의료인력이 투입되는 수준이다.

코로나19 중증환자를 치료 중인 서울의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현재 한 개 층을 전부 비운 상태에서 중증환자 한 명을 간호사 5명이 워크스테이션에서 대응하고 있다”면서 “경증환자도 입원 중이긴 하지만 확실히 중증환자에 대한 인력 투입이 많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중증환자는 인력이 많아도 항상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중증환자를 돌보는 경우, 레벨D 방호복을 착용하고 업무를 진행하는데 방호복을 입는 경우 업무 지속성이 평소보다 훨씬 떨어진다.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근무 중인 모습.

방호복을 착용한 의료인들은 한결같이 ‘시야 확보가 어렵고, 땀이 차며, 화장실에 갈 때도 탈의하고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한다.

게다가 의료인과 선별진료소 인력 중에서 일부는 레벨D 방호복 탈의 과정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한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몇몇 지자체 등에서 보고된 보건소 및 선별진료소 인력 코로나19 감염 사례는 대부분 방호복 탈의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방호복을 잘 벗는 것도 정말 어렵고,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애로사항으로 인해 중증환자 치료에 투입되는 의료인력들의 고갈이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계 봉착한 대구·경북 의료진, ‘좀 더 버텨야 하는데’ 안간힘

그나마 다른 지역에서는 해당 의료기관의 의료인력 사정에 맞춰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대구경북 지역은 의료인력 대비 환자가 너무 많아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급기야 포항의료원에서는 최근 간호사 15명이 코로나19 전선을 이탈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포항의료원 간호사들은 코로나19 확진자 140여명을 돌보기 위해 단 하루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장례식장에서 생활하며 단절된 채 업무를 지속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내 주요 거점 의료기관의 상황도 이탈만 안했을 뿐, 사투를 벌이고 있다. 현재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의 경우, 지난 2월 22일부터 인력 교체 없이 약 열흘간 업무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하루하루 한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것이 병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또한 마찬가지다. 대구가톨릭병원 음압 중환자실에서 근무 중인 한 간호사는 “평소보다 5배는 힘이 드는 것 같다”면서 “방호복으로 인해 온몸이 땀에 젖어 숨쉬기가 힘들고 입도 굉장히 마르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현재 해당 의료기관들은 의료진이 번아웃(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으로 인한 무기력증) 되기 전에 동산병원(감염병 전담병원이 아닌 대구 성서동에 위치) 혹은 일반 진료로 로테이션을 돌리는 이른바 2선 배치가 이뤄질 예정이지만, 인력 부족이 심각한 현 상태에선 인력을 빼내기도 만만찮다.

정부 또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정부는 군 의료인력을 중심으로 의사와 간호사 111명을 추가로 투입하며, 올해 신규 임용 예정인 공중보건의 750명을 오는 5일부터 현장에 보낼 방침이다.

이에 더해 정부는 야전부대를 제외한 군병원 의료인력 327명도 코로나19 대응에 투입하기로 했다. 아울러 11일에 소집되는 군의관 후보생 680여명 중 대구 현장 등에서 이미 활동 중이거나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군사교육 기간을 한 달 정도 단축해 입영시기를 최대한 늦춰줄 계획이다.

하지만 이정도 인력으로는 코로나19 교대 인력 충원에도 버거운 수준이라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탈진한 대구경북, 전국으로 확산되는 의료인 ‘번아웃’

급기야 의료계 내부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의료인력 자원 투입을 재분배해야 한다’고 판단, 코로나19 치료대응체계를 중증·경증환자 대응 차별화 방식으로 전환시켰다. 중증환자만 음압격리병상을 배정하고, 경증환자는 시설서 격리하는 방안이다.

오는 4일 생활격리시설로 전환될 예정인 서울대학교병원인재원. 생활격리시설 또한 의료진 대부분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근무한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2일 브리핑을 통해 “어려운 여건하에서 애쓰는 의료진들의 보호를 위해 진료 치료체계의 개편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면서 치료시스템 전환의 이유를 설명했다.

중증위주의 우선 의료자원이 집중적으로 투입이 돼야 의료인과 의료기관, 의료장비들, 시설들이 효율적으로 이용이 되고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추가적인 의료인·의료기관들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상당할 것이라는게 김강립 총괄조정관의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권영진 대구시장은 아예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통해 코로나19 환자 3000명을 타 지역에서 받아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타 지역에서도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의료인력·시설 자원 배분에 적극 동참해달라는 의미다. 이미 광주, 경북, 경남, 대전 등의 지자체에서는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병상을 준비·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일종의 격리시설인 생활치료센터 또한 외진 곳에 위치한 시설이기 때문에 해당 시설에 투입되는 의료인력은 파견 형태가 되어야 한다. 각자의 의료기관에서 근무 중인 의료인력이 격리시설에 투입되면 진료 공백을 단시간에 메우기가 힘들다.

여기에 더해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코로나19와 무관한 응급·중환자를 서울 등 타지역에서 받아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등이 포함된 국립대병원협의회에 따르면 최근 회의에서‘코로나19 감염 환자의 입원으로 우선 순위에서 밀렸지만 수술 등이 필요한 일반 중증환자도 서울에서 소화해 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을 들은 주요 대형병원들은 난색을 포하는 입장이다. 이미 수술 스케쥴이 밀려있는 상황에서 타 병원 환자에 대한 우선순위를 어떻게 배정할 것인가부터 음압격리병상 운영과 생활치료센터 파견 (혹은 예정 및 가능성)에 따른 인력 자원 소모 증가 등이 우려된다는 것이 이들 병원의 주장이다. 일부 의료기관은 계열 병원 폐쇄 등으로 인해 환자를 인계 받아 이에 대한 케어도 버거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음압격리병상 운영을 통해 중증환자를 치료할 수는 있지만, 일반 환자까지 죄다 떠맡게 되면 그 리스크가 너무 크다”면서 “혹여 잘못돼 원내 감염 확산이라도 일어나는 무책임한 사태가 벌어지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럼에도 불구, 정부 입장에서는 환자 이송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강립 총괄조정관은 “앞으로는 국립중앙의료원의 전원지원상황실에서 직접 통제를 하고 추후에, 사후에 시도에 통보를 하는 방식으로 변경토록 개편하겠다”면서 “반발할 경우 적정한 패널티 부과를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진 코로나19 중증환자에 국한된 상황이지만, 대구경북지역서 시급히 조치가 필요한 일반 중증환자 또한 포함될 가능성도 점차 커질 것이라느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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