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16>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

[의학신문·일간보사] 새해를 맞이하여 매해 오스트리아 빈 뮤지크페라인(The Musikverein) 황금홀(Goldener Saal)에서는 신년음악회가 열린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 필’)는 1941년부터 시작하여 80여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장면.

이 음악회는 새해의 밝고 긍정적인 시작을 기원하듯 밝고 경쾌한 풍의 왈츠와 춤곡들로 주로 연주가 되고, 매해 같은 앙코르 곡들을 연주함으로써 연주회를 마치는 전통이 있다. 연주회는 오스트리아 빈 현지시각 1월 1일 오전 11시 15분에 시작이 되며, 90개가 넘는 나라에 생중계로 방송이 되고 있는, 한마디로 전 세계적인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빈 필의 신년음악회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경쾌하고 아름다운 왈츠에서 전혀 생각하기 어려운 반전이 있다.

1938년은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독일로 편입시킨 해이다. 원래 오스트리아 출생이었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합쳐 게르만 민족의 통일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오스트리아를 이끌던 슈슈니크(Schuschnigg) 총리와 미크라스(Miklas) 대통령을 끌어 내리고, 나치 당원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Arthur Seyss-Inquart)를 내세워서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였다.

잉크바르트는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와 더불어 빈 필의 활동을 열정적으로 지원하였는데, 그들은 빈 필을 나치 정권을 선전하는 정치적 도구 즉, 문화적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특히 베토벤과 바그너의 음악을 독일 민족을 대표하는 최고의 음악이라고 여기고, 그 음악을 통해 독일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나치즘을 홍보하고자 하였고, 이에 빈 필이 동원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빈 필에서 유대인 혹은 유대인 배우자를 둔 단원들은 즉각 해고 당하고, 그 중 일부는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 죽임을 당하였다고 한다. 1941년 123명의 빈 필 단원 중 60명이 나치 당원들이었다고 한다.

군인·국민 사기진작 위해 경쾌한 왈츠 선택

이러한 빈 필은 1939년 12월 31일 송년음악회를 개최하는데, 표면적으로는 형편이 어려운 게르만 민족(순수 혈통에 해당했다)에게 추운 겨울에 필요한 땔감을 나누어 주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된 자선음악회였으나, 실제 목적은 음악회를 통해 히틀러와 나치즘을 칭송하고, 히틀러 치하의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결속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 송년음악회에서는 베토벤이나 바그너의 음악이 아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작품들이 연주되었다.

나치 정부는 1939년 시작된 세계 2차대전의 전쟁 상황에서 군인들과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경쾌한 왈츠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는 독일과의 합병으로 인하여 엄습한 예상치 못한 불안, 그리고 유대인과 타민족들에 대한 탄압과 학살로 인한 공포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음악회를 도입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때 마침 이미 1929년부터 빈 필의 당시 지휘자였던 클레멘스 크라우스(Clemens Krauss)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의 왈츠 작품들로 연주회를 이어가고 있었으니, 이를 자연스럽게 송년음악회로 연결한 것이다.

그리고 1939년의 송년음악회는 1941년 1월 1일 첫 신년음악회로 이어졌고, 오늘날까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프로그램이 연주되는 신년음악회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빈 필의 신년음악회가 역사상 가장 공포스럽고 참혹했던 현장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빈 필도 2013년이 되어서야 신년음악회의 시작이 나치 정권의 개입 아래 이루어졌음을 인정했다.

2020년 경자년을 시작하는 시점이다. 빈 필 신년음악회의 즐겁고 경쾌한 음악을 긍정적으로 감상하면서 따뜻한 나눔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풍성한 겨울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이 아름답고 희망적인 음악이 다시는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역사를 홍보하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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