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글로벌 개발본부 전무

- 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글로벌 개발본부 전무

[의학신문·일간보사] 우리에게 지금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라는 ‘갑질’을 하고 있는 일본은 대략 두 번의 국운 융성기를 맞았다고 한다.

첫 번째는 페리 제독이 이끌고 동경만을 찾아 왔던 흑선(黑船)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은 개국을 선택했고 명치유신(明治維新)으로 이어진다. 서구의 옷을 빌려 입고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 등 전분야에 걸쳐 혁명적인 변화를 이뤘다.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의 힘으로 열강의 반열에 오르고 여세를 몰아 쇄국을 고집하던 이웃나라들을 침략했다.

두 번째 기회는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후 항복문서에 서명하던 미주리호에서 시작되었다. 5년간의 점령국 미국군대에 의한 통치와 민주주의와 자유경제체제를 받아들이면서, 동양의 스위스를 만들려던 미국의 의도와 달리, 1980년대까지 경제적으로 미국을 추월하고 전세계 경제를 주름잡았다. 여기서부터 사단이 시작된다.

고도성장의 원인은 일본인 특유와 근면과 성실로 평가하고, 일본만의 방식을 고집하기 시작했다. 절정에 이르면서 사회는 점차 폐쇄적으로 변해서 잃어버린 20년을 맞게 되었다. 지금 잘나가는 기업인 유니클로의 회장은 일본은 이미 후진국으로 전락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짐작하겠지만 일본의 국운이 융성하던 때는 묘하게도 개방성을 방향으로 잡았을 때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가 멀리서 시작했지만,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우리말로 하면 “개방적 혁신” 정도가 될 것 같다. 2003년 미국 버클리대학의 헨리 체스브로우(Henry Chesbrough)교수가 기업혁신이론의 책제목으로 쓰기 시작했다니, 17년의 나이다. 미국은 수많은 경영이론이 나오는 나라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개별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혁신은 개방성에서 나온다는 공감이 크기때문이다.

우리 제약산업에는 어떤 개방적 혁신이 요구되나? 어떻게 적용할까? 우리에게 묵직한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담장을 허물고 혁신하라니 도둑만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의 척화비(斥和碑)가 한구석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제약의 특징이 오너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보수적인 산업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제약은 잘 뜯어보면, 종적·횡적으로 외부와 힘을 합쳐서 생존하고 발전해 온 산업이다. 원료를 외부bGMP에서 아웃소싱하고, 생산은 CMO, 개발단계에서도 전임상은 GLP기관과, 임상, 심지어 생동시험도 GCP라는 외부기관과 협력해야 되며, 마케팅단계에서도 잘 팔 수 있는 회사와 코마케팅(co-marketing)하는 등 연구개발단계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혼자 힘만으로는 잘 나갈 수 없는 구조로 점차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정도의 합종연횡을 소극적 개방성이라 한다면 요즘 강조되는 오픈이노베이션은 아예 종자(seed)나 아이디어부터 기업경계를 넘나들고 지식재산권도 나누는 적극적 방법이다. 혁신도 협업하여 더 큰 혁신을 만들라는 것이다.

기업단위뿐 아니라 나라의 경계도 넘나든다. ‘파트너링을 통한 동반성장과 오픈 이노베이션의 실현’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신약개발조합이 주관하는 ‘인터비즈 포럼’이란 장터가 매년 제주도에서 열린다. 유한양행, 보령제약, 한미약품, 일양약품, 종근당, 동화약품 등 국내유수의 기술수요자뿐 아니라, 화이자, MSD, 사노피아벤티스 등 해외기업의 임원급 인사도 몰려드는 걸 보면 기술이전, 라이선싱, 공동연구, 생산·마케팅 제휴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여 한국의 쓸만한 물건을 건져내기 위한 국경없는 노력을 실감하게 된다.

한미약품같이 경험 많고 잘나가는 회사도 위기가 닥쳤을 때 살아남기 위해 기술을 공유하고 성공적인 오픈이노베이션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혼자의 힘만으로 성장은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른다는 교훈을 준 셈이다.

최근 유한양행의 1조 400억원대의 기술수출의 쾌거가 오픈 이노베이션의 결과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시작은 “높은 상품매출 의존도”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걷어내기 위해서였을지 몰라도, 기술수요자인 제약기업이 자체 역량에만 의존하지 않고 바이오 벤처와 자본과 기술의 협업으로 발판을 마련하고 국내를 넘어 외국과의 협업을 모색하는 외연확장이 커다란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인터비즈 장터의 거래율을 보면 6~8%대로 아직은 성사 확률이 낮은 편이지만, 앞으로 유한과 같은 성공사례가 축적됨으로써 큰 기업은 큰 기업대로, 작은 기업은 작은 기업대로 각자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기술을 사업화하는 모든 영역에 걸쳐 장애는 무엇이고 기회요인은 무엇인지 규명하는 공부와 실천이 필요한 때다. 2020 경자년 새해를 맞으며 개인적으로는 당사가 추진한 오픈이노베이션의 씨앗들이 결실을 맺고, 나아가 더 많은 회사가 개방적 혁신으로 더 큰 성과를 가져오길 기원한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