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위주 급여화’ 재검토 필요하다

2020년 새해에는 정부가 잘못된 정책 방향을 인정하고 전문가 의견에 따라 대대적인 수정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은 좋은 선례로 남길 기대한다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의무이사

-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의무이사

[의학신문·일간보사] 2017년 8월 9일 “아픈 국민의 손을 정부가 꼭 잡아 드리겠다”는 대통령의 감동적인 연설로 시작된 정부의 보장성강화 정책, 이른바 ‘문재인케어’의 성적은 초라하다.

최근 건보공단이 발표한 ‘2018년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 보장률은 2조4천억원의 재정을 쏟아 부었지만 전년 대비 고작 1.1% 상승한 63.8%로 나타났다.

물론, 일부 긍정적인 결과도 있었다. 고액의료비(개인 연간의료비가 월급의 2배 이상) 발생 환자수가 57.2만명으로 13% 감소했다거나, 1인당 중증‧고액진료비 상위 30위 내 질환에 대한 보장률이 조금이지만 향상된 것은 나름대로 국민, 그 중에서도 취약계층에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케어로 전달체계 혼란 가속화

하지만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진료하는 상급종합병원의 보장률이 3%가 넘게 증가했으니 중증질환 중심의 보장성이 강화되었다는 식의 반쪽짜리 해석은 현재의 붕괴되어 있는 의료전달체계를 감안할 때 설득력이 떨어질 뿐더러 오히려 문재인케어로 인하여 전달체계의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를 의심케 한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의료계가 이미 예언했듯 원칙 없는 무분별한 급여화로 인하여 건강보험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70%라는 목표 보장률의 달성을 위해 정부 스스로가 급여화의 기준인 위급성이나 중대성, 치료 효과성 등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전면급여화에 나설 때부터 이미 예견된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는 짐짓 ‘착한 적자(예상범위 내의 적자)’라며 느긋한 척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예상치 못한 건보재정 지출이 늘어나자 다시 환자 부담을 늘리자는 ‘거꾸로 가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결국 당초의 목표와는 멀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건강보험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료계와 달리, 가입자들은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건강보험 보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암과 사투를 벌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지막 희망으로 보험이 되지 않는 고액의 항암제 치료에 한 달에 수백만원이 넘는 돈을 쓰고 있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근거가 미약한 한방 추나치료에 거액의 재정을 투입하는 정부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케어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대상이 중환자가 아니라 일반인’이라는 절규가 나왔겠는가. 건강한 국민의 입장에서도 불만이 쌓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보험료 인상은 역대 최고 수준인데 보장률은 답보상태다. 결국 보험료를 너무 쉽게 올린 셈인 것이다.

문재인케어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듯 현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은 단순한 보건의료정책을 넘어 정권이 대통령의 이름을 걸고 추진하는 간판 정책이다. 정책이 시작되었을 당시에는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와 환호를 받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냉정한 시각으로 돌아볼 때, 현 정권 내에서 본래 의도했던 목표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건강보험재정 악화로 인하여 다음 정부와 젊은 세대들에게 큰 짐을 안기는 셈이 되지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더 이상 보장성 강화를 현 정권의 치적이나 성공사례로 남기려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인 안목에서 건강보험,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의료 전반에 대한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보장률’ 산술적 목표서 벗어나야

먼저 ‘보장률’이라고 하는 산술적인 목표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와 같이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져 있고, 경증과 중증환자의 구분이 모호하며, 건강한 사람과 중증 환자를 동일 선상에서 다루는 시각으로는 제아무리 보장률이 향상된다고 하여도 국민건강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보장률이라는 지표를 따지는 이유는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얼마나 책임질 수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그 ‘얼마나’가 단순히 ‘더 큰 숫자’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정말 국민이 국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암이나 패혈증, 감염병, 심혈관계 합병증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과 마주칠 때다. 이와 같은 상황을 어떻게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일반인’이 가끔 허리가 아파 추나를 받거나 기운이 쇠한 느낌이 들어 한약을 먹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보장률을 그저 국가가 이만큼 더 많이 부담해줬다는 식의 산술적 시혜의 관점으로 봐서는 안될 것이다. 실제 국민, 그 중에서도 많이 아프고 생명에 위협을 받는 국민에게 실질적인 보탬이 될 수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 질환의 위급성, 치료의 효과, 합병증과 후유증의 강도 등 ‘필수의료’ 위주의 급여화의 ‘우선순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효율적’ 지출이 병행되어야 한다. 기존에 급여화되어 있는 것 가운데에도 의학적 근거가 미약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다시 비급여로 돌려야 한다. 재정상태가 위태로우면 불필요한 지출부터 줄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상식이다. 물론 성과와 혜택으로 내세웠던 것들을 되돌리기란 어렵다. 하지만 당장 불만을 사기 싫다는 이유로, 오히려 시간이 흘러 문제가 누적되어 더 이상 손을 대기 힘든 지경이 되었을 때에는 감당하기 힘든 국민적 분노와 마주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의 이름을 건 정책은 10년, 20년이 흘러도 만인의 뇌리에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의료계 ‘아픈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 당선되었다. 맞는 말이다.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분명히 자원의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결국 ‘어떤 사람’이 먼저냐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문재인케어는 그저 ‘사람’이라고 하지만 의료계는 2년전부터 분명히 주장해 왔다.

‘아픈 사람이 먼저이고,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은 더 먼저’라고. 의료계는 ‘사람이 먼저’라는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문제는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결과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예측한 그대로 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의료계의 마음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의료계의 말을 무시한 정책이 실패하고, 결국 그러한 이유로 또다시 부담을 안게 되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2020년 새해에는 문재인케어가 성공하기를. 정부가 정책의 잘못된 방향을 인정하고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대대적인 수정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은 좋은 선례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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