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유통구조개선TFT 위원

- 김용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유통구조개선TFT 위원

[의학신문·일간보사]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여러 해 동안 의료기기업계의 힘을 모아 의료기기 유통구조의 개선을 위하여 ‘간납업체 TFT’를 만들어 간납사들의 불합리한 운영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고 그 해결을 위한 목소리를 높여왔다. 최근에는 대학병원들이 자체 간납사를 운영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지난 10월 ‘유통구조개선 TFT’를 구성하여 다시금 간납업체 문제해결을 위해 활동을 개시했다.

대한민국 의료서비스의 수준은 세계적인 수준에 이미 도달하였으나, 의료기기의 유통 과정은 매우 흐릿하며 후진적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간납업체의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한번 짚어보고, 또한 간납업체가 사라질 수 없는 현실이라면, 앞으로 의료기기를 공급하는 제조사, 수입 및 판매사 그리고 기존 간납업체가 어떠한 방향으로 합리적인 유통구조 해법을 찾아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변화하는 기회를 찾아야 하겠다.

의료기기의 판매 과정에는 제조사나 수입사가 직접판매(Direct sale)를 하는 경우와 대리점을 통한 간접판매(Indirect sale)로 구분할 수 있다. 대리점을 통한 판매가 주를 이루는 제조사나 수입사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간납업체로부터의 피해를 한 단계 완화하는 구조이며, 대리점이 간납업체와 직접 상대하게 된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범위가 넓어지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압박이 가속화되며, 의료기기표준코드 (UDI) 정책 등 유통과정의 투명화가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현재의 시장 상황이다. 즉, 대리점이든 직판 체제를 유지하는 제조 및 수입사이든 간납업체의 불합리한 운영은 어느 회사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우선 간납업체는 국가에서 정한 보험가에서 할인이라는 명목하에 고시된 보험가에서 과도한 할인을 요구하고, 병원을 향한 ‘통행세 징수(Gate Keeper)’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나 정부측의 입장은 일정 마진을 주고 운영하는 대리점과 다를 바가 없다는 식의 논리로 간납업체의 존재에 대하여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사실이다. 산업계에서는 불공정한 유통단계를 인지하면서도, 자유시장 경제체제 하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유통구조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여기엔 다양한 논리적 오류가 있다. 그 논리라면 하나의 병원을 위한 간납업체는 다수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병원 하나에 간납업체 하나로 묶여있다. 이 구조에서 통행료와 다름없는 할인을 요구하는 것은 불공정한 거래임이 분명하다. 그곳에는 공정한 경쟁도 없고, 할인에 대한 적절한 구매의사 결정권도 없다. 병원을 등에 업은 간납업체의 불공정한 할인 요구만 있을 뿐이다.

의료기기를 제조 혹은 수입하는 과정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제조사는 말할 필요도 없고, 수입사 역시 매입가격, 통관에 따른 세금 및 비용, 재고를 유지 관리하는 물류비용,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마케팅비용, 직원 인건비, 수개월씩 나가는 대금결재 조건에 따른 이자 비용 등. 의료기기는 이 모든 비용과 일정한 마진을 설정하여 보험상한가를 국가에서 정하는 구조이며, 정해진 상한가 내에서 병원이 구매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비영리법인인 병원에서 수많은 공급업체들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제품들의 매입 과정을 직접 운영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그 전제 하에 간납업체의 존재 이유가 분명히 있으며, 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병원 납품을 빌미로 과도한 할인을 요구하며, 병원과 간납업체 간의 결재조건이 길다는 이유로 공급업체에 대한 결재 기간도 5~6개월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할인율 5%, 결재 기간 6개월인 경우 11%의 할인 효과가 발생된다. 이러한 할인 및 비용이 진료비를 낮추고 보험 재정으로 환원되며 의료기관으로 투명하게 재투자를 이룬다면 좋겠지만, ‘과연 그러한가’라면 그렇지 않다.

특히 많은 수의 전문병원들은 특수관계인이 운영하는 간납업체를 내세워 제품가격의 50%에 육박하는 할인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로 인하여 전문병원들에 공급되는 의료기기는 가격이 무조건 낮은 제품의 유통이 늘어나며, 결국 환자에게 품질보다는 저렴한 의료기기를 우선 사용하는 상황을 초래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현실은 간납업체가 도산하는 경우이다. 의료기기 공급업체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수개월에 걸쳐있는 판매대금을 보호할 담보도 없으며, 병원에 공급된 가납(간접납품) 재고에 대한 운영 책임도 그들에겐 없다. 이 부분에서 해당 병원은 해당 간납업체만 상대하는 구조이므로 대금결재에 대한 책임을 피해가는 상황이다. 또한 제조사, 수입 및 판매사들은 강화되는 의료기기 품질관리 프로세스에 맞추어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의료기관에 가납 형태로 공급되는 순간부터 품질관리 프로세스의 주체는 사라지고 만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건강보험 재정이 뚜렷한 이유 없이 간납업체를 통하여 어디론가 줄줄 새나가고 있는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적절한 서비스 없이 병원을 등에 업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불합리한 거래 관행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존하는 간납업체 그리고 앞으로 준비 중인 대학병원들의 신생 간납업체들의 문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임이 분명하다.

정부는 고령화 사회로 변해가는 사회구조와 국민복지 향상을 위해 티끌이라도 한데 모아 재정 확보를 강화해 왔다. 그리고 의료기기 유통구조의 투명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쏟아낼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공급업체들 또한 과도한 통행세를 더이상 지불할 여력이 없다.

간납업체를 없애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이제는 공급업체들과 간납업체, 의료기기의 최종 목적지인 병원과 함께 변해가는 시장 상황에 발맞춰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나름의 해법을 제시해본다면, 병원은 간납업체에 대한 결재 기간을 상식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간납업체는 납품가 할인에 상한선(2~3% 내외의 상한선을 둔, 간납업체의 책임 범위에 적합한 할인율)을 유지하며 국가에서 정한 보험가의 의미에 부합하도록 경영해야 한다. 또 병원에 공급한 가납 재고에 대하여 공급업체에 실질적이며 부가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물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시장에서 이해 가능한 수수료를 청구하는 등의 수익모델이 있어야 하며, 수개월 혹은 1년 이상 묶여있는 판매대금에 대한 담보를 제공하는 등의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밀레니엄을 말하던 2000년이, 한 달 남짓 지나면 무려 20년이 지나는 시점이다.

근거도 목적도 부실한 간납업체의 과도한 할인이 앞으로도 유지된다면 그리고 유야무야(有耶無耶) 그것이 인정되고 어느 누구도 변하지 않는다면 기댈 수 있는 것은 국가뿐이다. 차라리 국가 차원에서 강제적으로 간납 할인율을 최소로 축소하고, 간납업체 할인으로 사라지는 금액의 일정 부분을 보험재정으로 다시금 확보하여 공공의료 서비스를 위한 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적절한 대안이 아닐까 싶다.

간납업체는 사회 전반적으로 요구되는 “공정한 거래”, “투명한 사회”, “갑질 근절” 과 “상생”을 외치는 이 시대에 고민해야 할 것이다. 밀려오는 변화의 물결 앞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수준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나갈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고통스럽게 사라질 것인지 현명한 선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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