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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보건의료 정책원격의료 논의서 ‘전문가 배제’ 구태 되풀이
공공·공익성 겸비 ‘의사공공단체’ 설립 절실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 고려의대 명예교수 /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선거에 의해 여·야 정권이 바뀌는 것은 어찌 보면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피를 보는 유혈 혁명보다는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임은 틀림없다. 현 정권은 비록 선거에 의해 당선되기는 했지만, 실제는 ‘촛불 혁명’의 놀라운 힘이기도 하고, 오랜 기간 반독재 투쟁 경력을 쌓아온 정권으로써 과거 정권에 비해 우위적 역량을 확보하여 쟁취했다기보다는 전 정권의 무능함에 힘입어 정권 차지가 가능했다고 보는 시각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역대 보건의료정책 정권에 관계없이 비슷한 방식으로 무모하게 밀어붙여= 광복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독재정권이나 속칭 민주정권 할 것 없이 그동안 정부가 펼쳐온 ‘보건의료정책’에 관한한 의료계가 보는 입장은 비등비등하게 답답하고 착잡하기만 하다. 이들 정권의 색깔과는 무관한 해묵은 의료현안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일단 선거에서 권력 쟁취를 하고 나면 다음 순서는 정권의 지지와 유지를 위한 가지가지 방안을 동원해 보는데 영 신통한 방안이 쉽게 나오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창조경제센터’를 설치하면 순식간에 창조가 샘물 솟듯이 저절로 생겨나지 않듯이, ‘노벨상추진위원회’를 꾸렸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노벨상이 뚝딱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조국 근대화를 외치며 싼 노동력이라도 팔아 경제가 수직 상승하던 시절을 벗어나, 이제 오랜 지속이 가능한 힘센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차원적이고 전문적인 역량을 요구 받고 있다.

하늘에서 금싸라기가 쉴 새 없이 내리기 전에는 과거와 같은 경이로운 경제적 성장은 바라보기 힘들 것이다. 한 학생을 열심히 지도하여 60점까지 도달하는 것은 70점의 학생을 80점으로, 80점대 학생을 90점 이상으로 올리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한 것이 세상 돌아가는 보편적인 이치이기 때문이다.

의료의 본질 외면하고 정략적 경제논리만 앞세우면
‘원격의료’ 제주 영리병원과 똑같은 실패코스에 빠져

◇국민소득 3만 불 시대 케케묵은 원격의료 논의서 ‘전문가 배제’ 구태 되풀이= 국민소득이 3만불을 돌파한 이 시점에도 10년이 훨씬 넘은 케케묵은 의료사안은 습한 지역에서 곰팡이 피듯 끊이지 않고 반복되어 올라오고 있다. 일자리 또는 직장 창출이 어려울 때마다 정부가 단골 손님으로 꺼내 등장시키는 메뉴 중 하나인 ‘원격의료’는 대표적인 지겨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원격의료가 진정한 사회적수요에 의해 제안되는 것이 아닌 전자산업이나 다른 기업체의 생산 활성화를 위한 산업의 혁신으로 나타나기에 쉽게 진행될 리 만무하다. 여·야가 자신들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정권만 잡으면 꺼내드는 이 단골메뉴에 대한 유사한 사례는 출범 후 싹도 틔워 보지 못하고 곧바로 망해버린 절차를 택한 제주 영리병원이 비슷한 속성으로 짝을 이룬다. 애시 당초 영리병원의 목적은 중국인 진료가 아닌 내국인 진료를 염두에 두었던 것 같은데 이것이 안 되자 개원식 후 곧바로 폐원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부동산 투자를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선진국, 이익단체 아닌 의사공공단체 등 전문가 식견 청취로 정책 신뢰 형성= 선진국에서 원격의료 그리고 최근 뜨겁게 회자되는 인공지능(AI)과 같은 종래에 존재하지 않던 혁신적인 사안에 대한 결정적인 의견을 생산하는 곳은 전문직 단체로 그 중에도 이익단체와는 다른 성격의 의사공공단체가 전문적인 식견과 해답을 제공한다. 우리나라가 경쟁적으로 사들였던 왓슨 진단기기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공공 의사단체의 부정적 견해에 따라 정작 생산 국가인 북미지역에서는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공공의사단체는 대개 면허기구의 역할을 하는 단체나 의사의 교육과 양성에 관여하는 단체로써 이익단체와는 구별된다.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부정적인 입장은 우선 책임소재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만한 뾰족한 방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인공지능에서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오류가 발생했다면 과연 그 책임소재는 어디에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개발한 원개발자인지, 해당 기기를 응용·제품화하여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인지, 제품을 개발한 오리지널 연구진인지 확실히 선을 그어 대답하기가 어렵다.

인공지능이 환자의 진단과 치료방향의 결정을 제시한다면, 이 과정에서 의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 질병에 대한 진단은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본질이고 핵심 사안인데 진단과 치료에 대한 인공지능의 믿음은 초월적인 위치를 가질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자명하다. 인공지능 역시 신이 아닌 사람이 만든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원격의료 시행 전 의료시스템 큰 틀에서 의료생태계 변화와 안전성 검증해야= 원격의료를 시행한다면 대면진료를 대체할 만한 수준의 원격의료인가? 아니면 원격의료 시설설비업자와 창업을 위한 산업 활성화 예산지원의 국고낭비를 위한 구조인가?

원격의료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과 안전성에 대한 담보는 무엇인가? 원격의료에서 발생한 의료과오나 분쟁은 또 다시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로 귀결이 날 것인가? 매우 고차원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원격의료를 탐내는 기업은 많다. 과거 잘 알려진 대기업이 교도소의 재소자부터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해보자는 방안을 제시하자 “생명윤리의 기초 단계도 이해 못하는 추악한 돈 욕심 덩어리의 불량 기업”으로 선명한 주홍글씨를 달아 지우기 힘든 낙인을 찍어 버린 경험이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교도소의 의료가 열악하니 일정 부분 배려해보겠다는 뜻이었는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여론에서는 재소자를 한낱 임상시험 또는 기기판매의 대상으로 오로지 기업 이득을 위한 일종의 ‘테스트 베드’로 삼았다는 지독한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리고 당시 정부로서는 교도소가 의료사각지대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으로 받아들여져 무지한 정책적 발상으로 호된 홍역을 치렀다. 이런 해프닝들은 실상 원격의료가 지니고 있는 시대적 환경과 의미, 그리고 장점마저 일거에 묻혀버리게 하는 매우 위험하고도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식 발상이었던 것이다.

◇노인 등 일부 계층 편익증진이 목적이면 리스크 낮은 합리적 방안부터 강구해야= 또한 원격의료가 시골에 살면서 이동이 어려운 독거노인을 위한다는 논리도 매우 표피적인 이유 밖에는 안 되어 보인다. 거동이 불편해서 병원으로 이동 중 낙상의 위험이 높다는 주장도 모든 노인들에게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일반화시키기에는 설득력이 매우 옹색하다. 거동이 불편한 경우 환자 혼자 병원을 가도록 하는 것이 문제이지, 다른 대안이나 효율적인 방편에 대한 다양한 주장도 얼마든지 그 가능성을 열어놓고 타당성을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환자안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우는 어떤 경우이고, 반대로 원격의료를 시행해도 의료 시스템적으로 안전성과 그 유효성을 충분히 확보하여 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도 안전하다는 것도 동시에 보장되어야만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법원에 의하여 의료는 반드시 교과서적이어야 하고, 규범적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자리 잡게 되었다. 의료에서 어떤 실수나 간과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실에 원격의료의 기기고장, 정도관리와 시스템의 질적 불확실성에 대한 것도 의사가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병원에서 전기고장으로 자가발전이 안 되어 환자가 영향을 받아도 아마도 우리나라는 의사를 구속하여 적정배상금이 나올 때까지 볼모로 삼을 확률이 많은 나라인데, 원격의료 시스템 작동까지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책임의 경계선이 불분명하다.

도서지방이나 오지에 사는 주민을 위한 의료혜택도 심각한 상황에서 원료정보의 전달이나 감시(monitoring)정도면 약간의 이득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원격기기에만 의존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보인다. 환자나 환자가족이 보여주는 휴대전화 영상을 통한 의료정보의 교환이 기존에 제시하는 값비싼 원격의료 기기보다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어떤 정책이든 기업의 경제논리가 국민의 생명권을 우선할 수 없어= 이런 논란에도 현재 선진국에서 원격의료가 활발한 나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 영토가 광활하거나 우리처럼 의료접근성이 높지 않고 매우 취약한 배경이 존재한다. 일차진료가 발달한 나라에서 원격의료는 일차 진료의 보조수단이 될 수 있을지언정 완전하게 대체하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서 정부의 의료정책이 일차의료를 말라 죽게 하거나, 의사가 일차진료 영역에서 떠나게 하는 ‘사막화 현상’을 막지 못하기에 원격의료는 말 그대로 불가피한 사정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특정하여 인정해주고 있는 셈이다.

선심성 정책·피상적 배려는 의료환경 더욱 악화시켜
원격의료 시행 전 의료생태계 변화·안전성 검증해야

이런 사실은 시설이 좋은 대형병원의 원격의료 참여가 기존의 일차 진료를 더 취약하게 만들고, 벼랑 끝으로 내몰아 고사시킨다면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와 주장이 더욱 더 명확하게 성립된다. 여하튼 대형병원이 의료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관문을 차지하고 있는 일차진료 의사와 경쟁적인 관계가 성립되는 원격의료는 발상조차도 허용되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취약한 환경에 처해 있는 개원가가 대형병원의 일차진료 개입에 대한 불안증 해소 방책부터 가장 먼저 명쾌한 답을 찾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성 없는 보건복지부나 정부기관의 유권해석 또는 행정해석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닌, 선진국처럼 전문가 집단에 의한 실질적인 대안제시와 현실에 반영시킬 수 있는 살아있는 해결방안 마련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관장하는 보건복지부와 정권의 핵심 라인은 의료와 관계없는 부처가 산업적 측면에서 시도하는 원격의료를 스스로 통제하고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기구의 역할은 전체 의료의 틀에서 원격의료가 갖는 개념에 철저히 근거해서 경제적·법률적·행정적 검토를 올바르게 진행되도록 모든 책임을 다해야 한다. 단순하게 노인을 위한다는 각 지방자치 단체의 선심성 이유나 격·오지 거주자를 위한 피상적인 배려와 같은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구호는 원격의료의 정당성을 절대로 확보하지 못할 뿐 아니라,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의료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원격의료 논의부터 전문가 멀리하면 정부 정책 신뢰도 멀리 달아날 수 있어= 정부가 진정 원격의료의 출발이 사회적 의료수요에 대한 심각한 문제에서 생각한다면 우선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료계의 자문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더구나 자신들도 반대했던 의견을 다시 뒤집어 추진 할 때는 정책일관성이나 신뢰성의 문제가 본질보다 더 클 수도 있다. 현재 종합병원 쏠림 현상으로 의료계 내부에서 불안정한 기류의 반목현상마저 형성되는 현실에서, 그리고 의료접근성 1위를 자랑하는 나라에서 무엇이 더 부족하여 원격의료를 하는지는 보다 더 고차원적이고 설득 가능한 이유를 제시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정권장악을 위한 선심성 이슈로 여·야나 정권장악 후 한 번씩 해보는 정당의 고유 깃발 색과 무관한 실현 불가능한 단골메뉴로 전락할 것이다.

이런 정치에 의한 숨바꼭질과 같은 의료정책은 의사전문직 의견을 이익집단의 밥그릇 챙기기로 그리고 국가정책에 항상 반대하는 집단으로 폄훼하는 반면에, 정부가 연구비를 대는 관변 연구기관의 의견은 이미 ‘관 주문 맞춤형 결론 생산기관’으로 집권당의 정권연장 시도를 위한 선심성 결론을 이미 전제하고 진행된 연구로 간주되고, 정부와 전문가집단간의 상호 불신시대의 정점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의 기조가 △원가 이하의 싸구려 진료비책정 △의사의 수익 통제 △정권연장 도구로 활용하는 의료 괴물과 같은 3원칙을 고수하는 한 보건의료정책의 혁신은 불가능해 보인다.

◇과거 선심성 일색에서 가치중립적 전문성 곁들여 틀 바꿔야 미래 생존이 가능=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차대한 보건의료정책 수립 과정의 난맥 현상은 특정 이익단체도 아니요, 정부기구도 아닌 ‘제3자 조합주의(Tripartism)’에 의한 공공의사 전문직 단체 설립의 정당성과 시급성을 요구받고 있다. 선진국에서 이미 오래 전에 뿌리를 내려 운영되고 있는 의사면허관리기구나 의사양성을 위한 전문기구와 같이 사회적 필요와 목적에 부합하면서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는 공공성과 공익성을 겸비한 ‘의사공공단체’의 설립이 절실한 시점이다. 국민 1인당 3만불 소득과 4차 산업혁명에 진입하고 있는 현 시대는 정부의 영향이나 이익단체의 영향으로부터 독립되고 보건의료정책의 새로운 사안에 대하여 국가 사회를 대신하여 가장 전문직이고, 안전하고 신중하며, 그리고 가치중립적 의견을 견지하는 단체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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