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EMR 셧다운제 실태조사…“대놓고 당직자 아이디 사용 종용” 지적

[의학신문·일간보사=김현기 기자] 수련병원들이 대놓고 ‘전공의법’을 준수하기 위한 서류상 근거 만들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며, 편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련병원이 공공연하게 시행하는 EMR 셧다운제를 통해 타인 아이디 사용을 종용하거나 근무시간 외 처방을 냈다가 걸리면 전공의가 사유서를 작성해야 하는 사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박지현-삼성서울병원 외과)가 최근 전공의 회원을 대상으로 ‘EMR 셧다운제’ 실태 파악에 나섰다.

이번 설문에는 총 1076명의 전공의가 참여했으며, 상급종합병원, 기타 수련병원 등 수십 곳에서 비정상적인 EMR 접속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했다.

즉 전공의들은 정규시간에 일을 끝내지 못한 경우 불가피하게 당직하는 타인의 아이디를 이용해 처방기록을 입력해야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법 위반까지 감수해야하는 실정인 것.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이 직접 진찰하지 않고 진단서 등 증명서를 발행하거나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하는 것은 위법이다.

서울 한 대형병원에 근무 중인 A전공의는 “업무량이 많아 도저히 정규 근무시간 내에 해결할 수 없는데 처방해 줄 사람이 없고, 그렇다고 교수가 환자를 보지도 않는다”며 “어쩔 수 없이 다음 당직 전공의의 아이디를 빌려 처방을 내놓고 간다. 일을 다음 사람에게 던지고 갈 수는 없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또 지방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B전공의는 “병원 수련담당 부서 및 의국에서 대놓고 당직자 아이디 사용을 종용하고 있다”며 “전공의법 때문에 근무시간 외 처방을 냈다가 걸리면 오히려 전공의가 사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EMR 셧다운제가 전공의 수련교육환경의 근본적인 개선책이 아니라 오히려 법을 위반하게끔 전공의를 내몰고 있다는 게 대전협의 지적이다.

박지현 회장은 “EMR 접속을 차단한다 해도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의 양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며 “EMR 접속을 차단함으로써 수련병원이 서류상으로 전공의법을 준수하고 있다는 근거를 생산해낼 뿐”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대전협이 설문조사에서 EMR 접속차단이 업무량을 줄이거나 퇴근 시간 보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무려 85%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

대전협 이경민 수련이사는 “전공의법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이 제한돼 인력이 충원돼야 하는 시기에 오히려 수련병원은 보여주기식으로 80시간을 넘지 않도록 EMR 기록만 막기 급급했다. 법이 제정됐다 한들 어떻게 수련환경이 개선될 수 있겠는가”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에 따라 대전협은 EMR 셧다운제 폐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각 수련병원, 복지부 등에 그 폐해를 지적한다는 방침이다.

박 회장은 “서류상으로는 마치 전공의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근무시간이 지나도 타인의 아이디를 통해 처방하며 일해야 하는 게 전공의들의 불편한 현실”이라며 “대전협은 이 문제를 절대 간과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EMR 셧다운제 폐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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