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14>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

[의학신문·일간보사] ‘아방가르드’의 뜻은 원래 프랑스 군사용어로써 주 군부대를 위해 길을 터 주는 전위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19세기 중반에는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면서 스스로 개척자라고 여긴 프랑스 음악가들이 자신들을 표현하기 위해 이 용어를 쓰기 시작하였고, 현대에 와서는 정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의 시작을 말하고자 할 때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아방가르드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작곡가가 있다.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이다.

사티(Satie)는 스스로를 ‘짐노페디스트’(짐노페디란 고대 그리스의 종교축제로써, 이 축제에서는 청년들이 옷을 벗어던지고 나체로 신전을 돌면서 춤을 추었다)라고 부르면서, 그때까지 내려온 클래식 음악의 전통적인 틀을 과감하게 타파하기 원했다. 당시 19세기 중반에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독일 낭만주의 음악-즉 전통적인 형식, 화려한 기교, 과도한 감정표현, 장엄한 스케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티는 이러한 낭만주의 음악의 모든 거추장스러운 형식과 고정관념을 벗어 던지고 가장 단순하고 무덤덤한 음악- 즉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편안한 음악-을 지향하였다. 사티는 자유롭게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한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의 단순하고 평이한, 때로는 난해하고 신비로운 표현들을 사용하였지만, 작품들은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전위적이고 생소한 음악으로 취급 받았으며, 아무도 그의 음악을 연주하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평론가는 그를 “음악에 빠져 정신이 나갔으며 신비주의를 좇는 비의적이고 더러운 기생충”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근래 사티 음악은 ‘가구음악’ 장르로 자리 잡아

근대로 오면서 그동안 외면당했던 그의 음악은 가구 음악(Furniture Music)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았으며, 공간 음악(Ambiant Music)으로 발전하면서 우리의 삶 속에 녹아지게 된다. 시몬스침대 광고를 비롯하여 다양한 영화 속에 삽입된 사티의 ‘짐노페디’(Gymnopedi)는 작곡가의 의도대로 우리에게 가구와도 같은 편안함을 제공해주며, 사랑했던 여인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해 쓴 ‘난 널 원해’(Je Te Veux)는 결혼식에서 많이 연주되며 듣는 이들에게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전달한다.

사티의 삶은 어떠했을까? 프랑스의 한 바닷가 도시에서 태어난 에릭 사티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조부모에게 맡겨지지만 곧 조부모는 사망하고, 그는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어릴 적부터 극심한 외로움을 경험한 사티는 근처 성당에서 음악을 배우면서 성장하게 되고 아버지가 재혼을 하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새엄마로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다.

스스로 독립을 하고 싶었던 그는 13살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였으나 학교의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엄격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결국 자퇴를 하고, 반발심으로 그는 바로 군대에 입대를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조직생활을 견디지 못하여서 일부러 찬바람을 맞아가며 스스로 병을 만드는 등 결국 의가사 제대를 한다.

괴짜, 반항아, 중퇴라는 꼬리표 때문에 환영받지 못한 사티는 먹고 살기 위하여 몽마르트의 카바레에서 피아노를 치기도 했다.

그의 대인기피증과 엉뚱하고 괴팍한 기질로 인해 친구들이 별로 없었고,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인 수잔 발라동(Susan Valadon)과의 결별 이후, 27년 동안 사람들을 피해 파리 교외의 낡은 건물 꼭대기 방에 혼자 살았다고 한다. 살아생전에 그의 집에 가본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그가 죽은 다음에 들어간 그의 집에는 거미줄이 곳곳에 쳐져 있었고, 고장 난 피아노 뚜껑 밑에는 쓰레기들만 가득했다고 한다.

평생 냉대와 멸시를 받으며 외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에릭 사티. 과연 그는 혁신을 시도한 위대한 작곡가였을까? 아니면 전통을 무시한 시대의 왕따였을까? 규율, 형식, 전통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편안한 음악을 추구한 사티이지만, 그의 삶은 결코 편안하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나는 너무 늙은 세상에 너무 젊어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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