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제약바이오산업이 삼각파도를 맞고 있다. 안전성 이슈, 신약 개발 역량을 둘러싼 논란, 그리고 정부의 약가인하와 유통 투명화 등을 앞세운 규제 강화 흐름이다. 정부의 ‘미래 선도산업’ 선정으로 산업계는 장밋빛 기대를 가졌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한꺼번에 밀어닥친 삼각파도를 넘느냐 넘지못하느냐에 산업의 운명이 달려있다.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서 시험대에 오른 양상이다.
지난해 발사르탄 사태에 이어 올해 인보사 사건과 라니티딘 사태까지 이어지면서 의약품의 안전성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정감사 과정에서도 여야 의원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안전하고 유효한 의약품의 개발과 생산, 품질관리는 제약바이오산업의 존재이유임은 물론이다. 산업계로선 그간 안전성 등에 근거한 허가 절차와 기준에 따라 해당 성분의 의약품들을 생산해왔지만 예기치 못한 사태를 맞아 정부의 판매 중지 조치 등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고 있다. 동시에 향후 유사 사례가 발생할 경우 임기응변식 대응을 지양하고, 과도한 혼란 등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위기관리 매뉴얼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신약 개발 역량을 둘러싼 논란은 ‘바이오주식의 널뛰기’와 맞물려 산업의 본질적 가치를 되묻게 한다. 신라젠과 에이치엘비, 헬릭스미스 등 신생 바이오기업의 임상 결과 발표에 따라 단기간 급락과 깜짝 반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매출이나 수익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신약 개발 임상의 진행 경과와 관련한 뉴스에 따라 시가총액이 조 단위로 내리고, 다시 조 단위로 오르는 식의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다. 투자 신중론이 제기되는 것은 물론 연구개발이 아니라 주가 부양과 투자 유치 등 비즈니스적 접근에만 골몰하는게 아니냐는 비판도 뒤따른다. 신약 개발은 15년 이상의 길고 긴 개발기간, 막대한 연구 역량과 투자를 요구하는, 인내와 신념의 싸움이라고 할수 있다. 특히 안전성을 제1의 가치로 할 수밖에 없는 산업 특성상, 호재와 악재에 따라 춤을 추는 자본시장의 논리에 매몰되기보다 제약산업 본연의 철학을 함께 견지할 때 K-바이오의 건강한 미래가 가능하다. 바이오벤처의 활발한 해외 임상과 혁신 노력에 전통 제약사들의 노하우와 인프라, 신중함이 더해지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강조되는 이유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약가제도 개편 추진과 제네릭의약품 관리제도 변화 등은 산업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불필요한 누수 관리강화 차원에서 2020년부터 약제 및 치료재료의 급여항목에 대한 재평가, 노인의료비 관리 등 의약품 재평가에 의한 퇴출 등을 추진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특히 식약처의 위탁·공동 생동제도 폐지 추진과 복지부의 제네릭의 약품 약가 손질 등은 이제 더 이상 지금의 제네릭·내수 중심 시장에 안주할 수 없도록 산업계를 몰아세우고 있다.
의약품 유통시장의 투명성 제고를 앞세운 정부의 드라이브도 심상치 않다. 2014년 7월 리베이트 투아웃제 시행이후 CSO 이용이 급증했고, 그 수와 평균 지급 수수료가 너무 과도해 음성적 리베이트의 방편이 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복지부가 CSO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를 명시하고, 지출보고서 미보고와 허위 작성 등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것을 포함한 약사법 개정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정부의 이같은 정책변화와 외부 환경은 산업계의 엄정하고도 치열한 고민과 논의, 대처방안 모색을 요구하고 있다. 제약바이오산업이 양질의 일자리와 국부 창출의 확실한 미래 먹거리로 자리매김하면서 정부와 국민의 기대가 높아지는 것과 비례해 변화와 쇄신의 요구 또한 거세질 수밖에 없다. 연구개발과 윤리경영, 글로벌을 외치고 있지만 산업 현실은 여전히 제네릭·내수 위주의 시장 구조, 바이오시밀러를 제외한 완제 의약품의 미미한 해외시장 판매 등에 머물러 있는게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 팽배해 있다.
협회가 오는 29일 이례적으로 제약바이오 CEO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긴급 워크숍을 개최하게 된 것도 일련의 정책 흐름과 상황들에 대한 비상한 인식의 결과라 하겠다. 워크숍 제목을 ‘우리 어디에 있나’로 정한 것도, 원희목 회장이 직접 ‘제약바이오산업의 현실, CEO의 선택’을 주제로 종합발표를 하는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다. 위기의 본질을 적확하게 인식하고, 활로를 찾기 위해선 제약바이오 CEO들의 지혜와 공감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일체의 대참을 불허하고 CEO들이나 회사의 오너 등이 직접 참석하도록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9일 열리는 제약바이오 CEO 워크숍이 기로에 선 제약바이오산업에게 절체절명의 변곡점이자 위기 극복의 모멘텀이 될수 있도록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