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글로벌 개발본부 전무
약학박사

- 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글로벌 개발본부 전무 / 약학박사

[의학신문·일간보사] 코스닥제약 바이오 종목 84개사의 시가총액이 8월 말 기준 약 22조원으로 마감했다. 불과 5개월 전 33조에서 약 30%이상의 돈이 증발해 버린 셈이다. 세포치료제 ‘인보사’의 허가가 취소되고, 개발사인 코오롱티슈진에게는 상장폐지의 결정이 내려졌다. 항암바이러스제인 ‘펙사벡’을 비롯한 바이오 기업의 임상시험 중단, 라이선싱 제품의 반환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주식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손해를 입은 투자자가 많으니, 요즘 제약 바이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연구개발보다는 투자유치에만 신경 쓰는 업체가 많다, 개발보다 임상 허가 후 기업공개(IPO)나 지분매각 등으로 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는 지적들이다. 주가가 오르니 자신의 위치가 어딘지 모르는 ‘중2병에 걸린 우물 안 개구리’라는 자극적인 비난도 보았다.

돌이켜보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컬러가 다른 정권들을 거치면서도 제약바이오산업은 미래성장사업, 수종(樹種)산업, 성장주도사업 등 이름만 다를 뿐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되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요즘같이 일자리 사정이 어려운 때, 고용 있는 성장과 높은 정규직 비율로 칭찬 받는 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미래에 나라를 살릴 산업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동안 삼성처럼 굵직한 스타기업이 떠오른 적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자금이 몰려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금, 제약바이오산업은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의약품 개발은 항공기 산업과 비슷한 점이 많다. 새로운 항공기를 설계하고 수백만 개의 부품을 시험하고 완성품으로 조립해서 실수요자에게 인도되기 전까지는 개발자에게 한 푼도 안 들어 온다. 의약품 개발도 연구, 화학-제조-관리(CMC), 비임상, 임상, 허가, 상용화에 이르는 긴 기간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는 비장한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개발비용이 필요한 바이오 벤처는 투자자의 기대치를 한껏 높이려는 유혹을 느끼고, 자본들은 이에 호응하여 점차 프리미엄을 붙이는 속성을 보인다. 국내 유명대학의 스타 급 교수를 내세워 언론플레이를 하지만, 실상은 국내 임상시험계획승인(IND)조차 받지 못할 만큼 기초공사가 부실한 경우도 많다. 이 과정에서 삐끗하는 일이 생기면 선의의 개미들은 큰 손실을 입고 소위 회사의 “먹튀” 논란이 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들이 제약 바이오 기업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갉아 먹어 왔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가치판단은 온전히 투자자의 몫이다. 이런 판단은 예나 지금이나 ‘상식’과 ‘기본’이라는 선을 넘지 않는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전문가가 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자료 조차 불충분하여 공시제도를 바꾸려는 마당에 일반투자자가 어떻게 기업의 옥석을 가리는가다. 우리가 싸잡아 ‘제약바이오산업’이라 부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개별 기업이 지향하는 목표가 다르고 성과도 천차만별이다. 빛나는 보석은 아무리 시력이 나빠도 반짝이듯이 이 분야의 미래가치는 앞으로 시장을 주도할 신제품 개발라인이다. R&D 파이프라인이 고위험 분야에만 몰두하는가? 한 가지 파이프라인에만 집중되어 있는가? R&D 포트폴리오에 다양한 후보 군이 있는가?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성공가능성을 높이는 내실을 다지고 가는가? 그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사람은 보유하고 있는가? 정도는 판단해야 한다. 임상시험계획승인(IND)이 제품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고, 해외 유수의 다국적사와 계약했다고 상용화의 보증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리 잠재적 경쟁자의 싹을 잘라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설령 허가(NDA)까지 받았다 해도 기존의 제품 대비 어떤 강점이 있는지, 효과는 월등한지, 투자를 약가로 보상받을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할 점은 여전히 많다는 것은 그간 사건으로 누누이 알려져 왔다.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건실한 기업들의 신제품 개발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R&D 투자금액은 증가 중이고, 대외적으로 연구, 글로벌 임상, 기술수출 등 다양한 성과들을 내면서, 업계와 정부는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개발자 입장에서도 밀물처럼 투기성 자본이 밀려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반복적인 상황이 그다지 달갑지도 않다. 신제품을 손에 쥐고자 성실하게 매진하는수많은 기업과 개발자가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켜준다면, 앞으로 시련이 몇 번이고 오더라도 제약 바이오 산업의 밝은 미래는 반드시 다가오리라 믿는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