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발표한 자영업 성장・혁신 로드맵 과제 선정…‘미용사 또한 복지부의 주요 고객’

[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미용기기 제도화 방안 연구는 애초부터 ‘경기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에 방점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추진 단계부터 경제 논리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고, 의료계를 의도적으로 ‘패싱’하겠다는 목적이 확인돼 의료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불거진 미용실 내 의료기기 사용 합법화 추진은 지난 2018년 12월 정부에서 발표한 자영업 성장・혁신 종합대책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자영업 침체 기조를 해결하기 위해 범부처적으로 ‘자영업자가 잘 사는 나라’를 위한 중장기 정책로드맵을 수립, 오는 2022년까지 이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발표한 자영업 성장・혁신 종합대책 중 일부. '생활밀착형 업종별 규제완화 및 지원' 항목에 '미용기기 지정∙규격 논의 별도 위원회 구성∙운영'이 포함돼있으며, 주무부처는 복지부로 명시됐다.

중소벤처기업부 주관으로 추진되고 있는 자영업 성장 대책은 내수 경기 부양을 위한 강력한 수단 중 하나다. 게다가 미용기기 지정 항목은 ‘업종별 규제완화’ 항목에 포함돼있어 사실상 규제의 근거인 ‘안전성’과 ‘수익’을 저울질하는 모양새가 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타부처에서 미용기기 제도화 방안에 대해 계속 요구가 있어왔고, 이를 거부하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뷰티산업 진흥·육성법 제정 추진’과 ‘미용기기 지정‧규격 논의 별도 위원회 구성‧운영’을 연내 목표로 내세웠다. 이 가운데 미용기기 지정‧규격 논의를 위한 별도 위원회 구성이 바로 현재 복지부에서 진행 중인 미용기기 제도화 방안 연구다.

별도 위원회 구성 방식도 의료계가 지적하고 있는 사항이다. 현재 별도 위원회는 아니지만, 연구 과정에 포함돼있는 논의 주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립전파연구원 등이다. 의료계는 배제돼있는 상황인데,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의료계가 개입되면) 논의 자체가 진전되지 않을 것 같아 배제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의료기기가 의료행위를 목적으로 제작된 기기인 만큼, 의료계가 논의 주체에서 빠진 점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설득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도화 방안 연구에 대한 범위 설정도 의료계의 지적 사항 중 하나다. 복지부가 추계하고 있는 미용실 내 의료기기 사용 현황은 지난 2009년 자료가 가장 최근 자료다. 일단 현황부터 파악하고 제도화를 논의해야 함에도 불구, ‘목적에만 몰두해 한꺼번에 모든 것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비판이다.

상당히 강력한 이익단체 중 하나인 미용계의 지속적인 요구 또한 제도화 추진 요인으로 작용한다. 약 10만명이 넘는 인원이 현재 미용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의 목소리는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등을 통해 조직화된다. 정부에서도 지난해 자영업 현장소통TF를 구성했을 당시 대한미용사회중앙회는 협의단체에 포함돼있었다. 미용계는 지난 2011년 미용의료기기의 제도화를 추진했지만 국회를 넘지 못한채 불씨가 사그러들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협회는 이번엔 규제완화 트랙을 통해 미용의료기기를 제도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협회의 입장을 복지부 또한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미용사 또한 복지부의 주요 정책 고객”이라며 무조건 이들의 주장을 외면할 순 없었다고 설명했다. 미용사는 현재 복지부 내 건강정책과 내 별도 팀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의료계는 ‘말도 안되는 처사’라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미 지난 2011년 이들과 대립했던 피부과의사회는 당시에도 ‘미용기기가 제도화될 경우 미용기기로 규정된 범위를 넘어 의료기기 전체에 대해 유사 의료용으로 사용이 가속화될 것을 우려하고, 고주파‧초음파 등을 활용한 기기의 경우 미숙하게 사용시 인체에 중대한 해를 입히는 부작용의 우려가 높다’며 반대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치적으로는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 등 그간 이슈로 제기됐던 의료기기 사용 프레임이 ‘의료인 vs 의료인’이었지만, 이번 미용의료기기 이슈는 ‘비의료적 직역군을 의료의 영역에 편입시키는 상황’이라며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의료정책을 담당하는 한 전문가는 “국민 편의 등의 이유도 없이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을 들어 국민 안전을 해치는 상황이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같은 논리가 의료 외적인 영역에서 계속 침범해 들어올 수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미용기기 제도화와 관련, 복지부가 지난 2011년 제시한 검토의견. 현재 복지부 입장은 지난 2011년과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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