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과실과 사망 사이 개연성 없다"…수술 외 사망원인 부재 유가족에 증명 요구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코인색전술 시술 중 뇌동맥 파열로 사망한 환자에 대해 유가족이 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에서 법원이 병원 측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코인색전술 시 모혈관 파열은 스텐트를 삽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으로, 이러한 위험을 완벽하게 제거하기 어렵다는 의료감정 결과를 법원이 참고할 때 환자의 사망과 의사의 과실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중앙지법원은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려면 환자 사망과 관련해 수술 외 사망원인이 없다는 것을 입증할 것을 유가족에게 주문했다.

환자 A씨는 안검하수 및 두통을 호소하던 중 지난 2017년 3월 20일 B병원에서 CT촬영을 통해 우측 뇌동맥류가 확인되자 C병원에 진료를 예약했다. 이후 B씨는 예약일 전인 21일 극심한 두통과 안검하수 증상으로 C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C병원은 B씨의 뇌 CT촬영 결과 현재 뇌출혈은 없었으며, 좌우 모두에 뇌동맥류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으나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B병원으로 A씨를 전원시켰다.

A씨는 다음날인 22일 B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우측 뇌동맥류에 대한 코일색전술을 정상적으로 시술받았다. 이어 좌측 뇌동맥류에 대한 스텐트 보조기법의 코일색전술을 시술하는 과정에서 뇌동맥류 원위부의 내동맥이 파열되고 말았다. B병원 의료진은 A씨에게 임시 풍선폐색술을 반복 시행했으나 내경동맥 부위에서 혈전이 발생했고, 이에 혈전용해술을 실시하기 위해 좌측 중대뇌동맥 파열부위를 차단할 목적으로 마이크로스텐트를 삽입했고, 혈전용해제를 동맥주사했으나 오히려 혈전 증상이 오히려 악화되었다.

22일 저녁 B병원 의료진은 지혈 실패에 따라 A씨의 가족에게 설명한 후 두개골 절개 감압술을 실시했고, 가족의 동의를 받은 후 뇌척수액 배액술을 실시하고 수술을 마쳤다. 그러나 A씨는 24일부터 뇌 조직이 괴사되고 뇌 부종이 발생해 뇌실질조직이 밀려나는 등 상태가 악화되었고, 한달 후 인 4월 20일 사망했다.

A씨의 유가족은 B병원 의료진이 동맥류 파열을 예방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어야 함에도, 코인색전술 시술 중 유도철선이나 스텐트 원위부의 뾰족한 부분을 적절히 조작하지 못해 동맥류 벽에 자극을 가했으며, 동맥류 부위의 모혈관을 파열시킨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유가족에게 총 합 9600여만원을 보상할 것을 B병원에 요구했다.

이 같은 유가족에 주장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재판부는 “사건의 사실관계와 각 진료기록감정 결과들을 종합하면 유가족이 제출하는 증거들만으로는 B병원의 의료진이 실시한 유도철선이나 스텐트 조작상의 과실로 망인의 뇌동맥류가 파열되었다고 보기 부족하며,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모혈관 파열은 스텐트를 삽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중 하나로, 적절하게 시술을 하더라도 혈관 파열로 인한 출혈은 발생 가능하며, 시술 중 이러한 위험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료 감정 결과를 밝혔다. 또한 스텐트 삽입 시 혈관이 파열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진은 주의를 집중해야 하나, 이 사건의 경우 영상자료를 보았을 때 문제점이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발견할 수 없으며, 출혈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충분히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의료행위는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과 손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밝혀내기가 극히 어려운 특수성이 있다"면서 "수술 도중 환자에게 사망의 원인이 된 증상이 발생한 경우도 그 증상이 의료상의 과실에서 기인했는지 알려면 개연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의사에게 책임을 지우려면 환자의 수술 외 사망원인이 없다는 사실을 (유가족이) 간접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즉,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들을 가지고 환자의 사망과 의사의 과실의 인과관계를 추정해 의사에게 무과실의 증명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유가족의 배상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B병원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