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훈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법규위원회 부위원장

- 예정훈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법규위원회 부위원장

[의학신문·일간보사] 문재인 대통령의 의료기기 규제혁신 발표가 2018년 7월에 있었고, 올해 5월에도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이 있었다. 규제혁신 현장 방문 1년이 지난 지금 지표로 볼 때 시장은 성장했고, 창업은 증가 추세이다. 규제 측면에서는 선 진입-후 평가, 신의료기술평가제도 등의 개선이 있었다.

문재인케어는 보건의료산업 활성화에 기여하였고, 의료기기산업은 연평균 성장률 9%대를 견인하고 있다. 더불어 국내 제조 산업에 대한 국제 경쟁력 향상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정책안이 추진 중이다.

◇정부­산업계 역할 분담 필요= 문제는 앞으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하여 정부와 산업계를 중심으로 역할 분담과 노력이 필요하다. 즉 현재와 미래에 대한 중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먼저 현재를 분석하면, 규제 측면에서 국내 의료기기산업을 성장·발전해 온 보이지 않는 혜택이 다수 존재한다.

첫째, 우선 각종 수수료가 저렴하다. 제조및품질관리기준(GMP)의 하루 심사비가 30만원, 의료기기 허가(인증) 수수료가 비싸야 140만 원이다. 지금은 생물학적안전성 시험검사성적서의 의료기기 비임상시험관리기준(GLP) 적용으로 인하여 2배 이상 올라 내수제품의 차등적용을 건의하기도 했지만, 시험검사 수수료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하여 매우 저렴한 편이다. 국가가 공공재로서 의료기기산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용으로 몇 년간 지원을 위한 정책을 유지한 결과다.

둘째는 일찍 도입된 본질적동등성 평가제도가 제조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원천기술에 대한 투자 여력과 인허가 시 안전성·유효성 입증에 따른 부담을 경감시키는 제도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평가가 도입됨에 따라 신의료기기 개발과 국산화에 기여했다.

셋째는 글로벌 의료기기 규제조화에 대한 참여와 영향력 확대다. 이는 국민의 안전성과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장기 전략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심사부의 규제 수출을 통한 아시아권의 제품 인지력을 높이면서 서구 시장에서의 공신력도 높이고자 하는 정책이다. 이미 아시아의료기기조화기구(AHWP) 의장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바 있고 2021년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 의장직 수행이 예정되어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밖에도 보건복지부의 급여 단일상한가 제도, 의료기기산업종합지원센터 운영 등은 국내 제조산업 육성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이자 상당한 효과를 내고 있다.

◇의료기기 안전성 기준 강화 요구= 의료기기산업이 활성화되고 시장은 커지고 있다. 의료기기 역시 국민이 보는 눈높이가 과거와 달라지면서 안전성에 대한 기준 강화가 요구된다. 4월 제정된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시민단체는 법안이 국민 안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여러 우려와 불안에 대한 이유는 간단하다. 허가를 관리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안전국이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의료기기심사부 조직을 살펴보면 실상이 명확하다. 4차산업혁명의 기술이 출현하며 선진국의 경우 전문가를 중심으로 전담 조직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관리기구가 생겨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 식약처는 아직도 열정과 비정규직으로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고 있다.

보다 못해 업계에서 먼저 의료기기 관련 조직 확충을 건의하기도 했다. 당장 필요한 부서만 꼽더라도 4차산업혁명 제품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디지털헬스과, 개인맞춤형의료 기반 진단기술인 유전자진단과 그리고 이런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관리하기 위한 사후관리부서가 필요하다.

일부 제도적 보완으로 사후관리와 위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제품에 대해 외부기관에서 인증 및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결국 전문성과 인원 부족이 해소된 것은 아니어서 불안은 상존하고 있다.

해결책을 고민할 때가 됐다. 우선 산업계가 시각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받은 혜택만큼 이제는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전문성과 인원을 늘리기 위한 정부의 노력과 더불어 산업계도 일정 부분 국민의 신뢰와 지원에 대한 보답을 위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GMP 심사기관도 수년간 4개 기관을 유지하고 있다. 산업계 선택의 폭을 제한함으로써 갖는 불편이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GMP 심사의 적체 해소와 빠른 허가 심사를 원하지만 정작 우리가 지급하고 있는 비용 그리고 심사나 허가에 관여하고 있는 인적 자원 부족에 대하여 귀를 기울였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FDA 심사나 유럽 CE 인증을 받아본 기업이라면 우리나라의 수수료가 얼마나 저렴한지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일부 국내에 있는 외국 인증기관은 국내 심사료가 너무 낮아 국가 인증 확대를 위한 기관 신청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식약처로서도 문제해결에 힘든 점이 있다.

◇GMP 심사 저비용 구조 한계점 도달=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 유지했던 저비용 구조가 가지는 한계가 국민의 눈높이와 산업계의 요구를 맞출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다.

허가 심사를 위한 전문인력도 부족하다. 혁신기술을 통한 제품이 나오고 있지만 이를 전담하여 심사할 수 있는 전문 조직이 없다. 결국, 안전성과 민원 불만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사람을 늘리는 일도 시험기관을 늘리는 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군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다.

그동안 낮은 수수료로 유지되었던 허가 심사나 인증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이를 통하여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져 기업을 경영하기 적합한 환경을 만들 시기가 됐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열정만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과 조직으로만 가능하다. 전 주기적 안전관리 체계에서 지금 바로 시급한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고 4차산업혁명 기술을 실현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부족의 일상화가 갖는 피해를 우리는 이미 오랜 시간 경험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제도 개선은 누군가의 고통과 피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산업계도 대안을 갖고 책임 분담해야= 필요의 절박함만큼이나 전문성과 조직에 대한 충원 목소리가 높고 대통령께서도 바이오헬스의 인력 충원에 대하여 정책적 지원을 약속하였다. 이제 남은 몫은 발전을 위한 투자를 위하여 산업계도 대안을 가지고 책임을 분담해야 할 때가 됐다.

새로운 기술의 출현이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내고 그렇게 미래의 산업은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동안 정부 주도의 정책적 지원이 성공적인 만큼 이제 우리도 국민의 안전을 위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부담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안전이 구호를 넘어서 실질적인 제도적 보장을 마련하기 위한 전문성과 인력에 대한 확충 그리고 업계의 책임이 어우러질 때 의료기기산업이 갖는 신뢰성이 향상되고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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