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사회와 상의 없이 시행…원격진료장비 설치 이후 고지 황당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월 홍성군 구항 보건지소를 방문, 원격으로 의사-간호사 간 화상 연결 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의학신문·일간보사=김현기 기자]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함께 추진 중인 ‘원격의료지원 시범사업’의 핵심 인력인 공중보건의사(공보의)들과 상의도 없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대다수 공보의들은 원격진료기기가 설치되고 나서야 지자체 공무원으로서의 의무를 근거로 참여를 강요당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논란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발표한 ‘원격의료지원 시범사업’이 전국 곳곳에서 시행 혹은 준비 중으로 알려져 의료계 내부적으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대공협)는 원격진료의 전국적 확산에 대한 신속한 대응의 일환으로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이 사업에 대해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20일까지 전 공보의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이 결과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등에 속한 30여 개 시군에서 이 시범사업을 이미 진행하고 있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사업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공협에 따르면 이미 많은 수의 환자들이 원격진료를 받고 있었다. 지역별 편차가 있으나 한 달 평균 40명, 많게는 200명 수준으로 추산된다는 것.

구체적으로 시범사업의 형태는 공보의가 원격지 의사로서 참여, 보건진료소 공무원 혹은 방문간호사 등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현지 인력으로 참여하는 형태가 대다수라는 게 대공협 측 설명이다.

의학상담의 경우 대부분 원격지 의사에 의해 이뤄지고 있었으며, 절반 정도 지역은 진단과 처방 및 방문간호사를 통한 약 배부/배달까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공보의들은 원격의료지원 시범사업에 대해 많은 우려를 쏟아냈다. 원격진료 시 처방 후 증상의 악화와 합병증의 포착이 어렵거나 혈압과 BST 측정, 가벼운 문진만 가능해 대면진료에 비해 순응도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대공협은 “실제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하는 많은 공보의들은 약물과 관련 환자로부터 적절한 검사 없이 처방을 요구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약물을 조절하려해도 순응도가 좋지 않아 힘든 경우가 많다. 대면진료를 통해서도 해결하기 힘든 이 문제는 원격진료에서 더 큰 문제로 다가올 것이 자명하나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보의들은 제대로 된 투약이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이 불가능해 진료 시 항상 불안하며, 혹시라도 의료사고가 발생할 시 책임소재 등에 두려움을 나타냈다.

최근 불가피한 의료사고에도 분쟁이 폭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책임에 대한 사전조율 없이 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공보의들에게 상당한 부담인 것이다.

대공협은 “원격의료지원 시범사업은 의료법, 약사법 상 현지 인력이나 약 처방 등에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하지만 병역의무를 이행 중인 공보의들은 시범사업에 의문점이 있더라도 의견을 피력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또 대공협은 “원격진료는 국민 건강과 진료 질이 향상된다는 기본적인 연구조차 없다”며 “많은 재정이 투입되고 국민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급격한 원격의료 사업 추진은 반드시 재고돼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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