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이종태 기자] ‘입법불비’라는 생소한 법률용어가 약사사회를 휩쓸었다. 기자도 처음에는 잘 몰랐던 이 단어가 약사사회에 미친 파급력은 실로 대단했다. 기자의 전화가 쉴새없이 울려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제 자 ‘한약사 일반약 판매 막을 법적 근거 없다’는 기사의 후폭풍이다.

하지만 어제 들었던 항의전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차라리 잘됐다’다. 모 지역의 약사인 그는 전하 통화에서 "다들 애써 외면하려 했던 이슈가 제대로 부각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동안 복지부가 뒷짐을 지고 모른척하는 동안 현장에서는 많은 갈등이 있었다면서 차라리 이 기회에 제대로 된 논의를 할 수 있는 물꼬가 터지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당연히 약사들은 길건너 한약사가 개설한 약국으로 손님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유쾌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그 손님이 그 곳에서 일반약을 사서 나올 경우 더욱 그렇다. 게다가 면허범위에 대한 정확한 지침을 내려줘야 할 정부는 총대를 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약사들의 일반약 판매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어 신고는 커녕 보건당국에 민원을 넣는 것이 약사들이 할 수 있는 전부다.

거기다 정부는 약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약대를 신설하고, 기대하던 국제일반명(INN)은 의료계의 반대에 연구가 취소되고. 편의점에서도 일반약이 팔리는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건기식마저도 약국과 떼어놓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의도가 있던 없던, 정부는 약사직능에 대해 지속적으로 상처를 입혀왔다.

더군다나 일선 약사들은 그들을 대표하는 약사회에도 기대를 버린지 오래다. 최근 김대업 집행부에서 회원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와 움직임을 전해주고는 있지만, 그것도 아직은 시작에 불과해 힘을 더 실어줘야 효과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상처입은 약사들이 느끼는 절망감과 무력감은 그들이 굳이 약사직능에 대한 회의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한약사들은 좋은 시절을 누리고 있을까. 한약사들도 직능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기에는 마주한 현실이 무겁다. 한의약분업을 전제로 만들어진 한약사들은 아직도 한의약분업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도 잡지 못하고있다. 더군다나 첩약급여화를 앞두고 한의사측과 정부가 한의약분업이라는 분쟁요소를 만들리가 만무한 상황이다.

또한 약국과 한약국의 이원화를 담은 법률안이 발의되면서 일반약 판매를 정부가 언제 불법으로 규정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안고 살아간다. 때문에 이들은 일부 약사들로부터 범법자로 취급을 받으면서 ‘한약사’의 ‘한’자를 펜으로 가리는 등 눈치를 보며 일반약을 취급하고 있다. 또한 일부 한약사들은 생계를 위해 약사가 개설한 약국에서 근무하며 일반약을 판매하는 모순도 마다할 여유가 없다.

2500여명밖에 안되는 한약사들이 8만 약사들과 마주하게 되면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복지부에 한약사직능을 위한 제도개선을 주장하는 것도 사치인 그들이 과연 약사보다 직업에 대한 무력감과 희의감, 그리고 분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상 복지부가 두 손을 놓고 두 직능이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것을 뒷짐지고 바라보는 모양새다.

하지만 복지부도 이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약사법의 입법취지를 볼때 약사와 한약사간 업무범위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원칙은 있지만 한약사들의 일반약 판매에 대해 불법으로 규정하기에는 처벌조항이 없다는 점도 행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일선 약국에 대한 지도 감독시 한약사들의 일반약 판매에 대한 지적이나 언급은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배경도 이와 같다.

그렇다고 복지부가 주도적으로 국회에 정부입법을 발의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두 직역간 합의점이 없는 상황에서 복지부의 법안은 또 다른 논쟁과 대립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회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법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해줄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두 직능이 만나서 일반약뿐 아니라 국민건강과 보건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큰 틀에서의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

‘국민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두 직능간에 실무논의를 진행해 감정대립을 완화하고 업무범위 갈등을 어느정도 합의해야 입법불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복지부 관계자의 설명은 바로 이런 뜻이다. 다행히 복지부는 이 문제와 관련,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구상하고 있는 단계지만 약사-한약사간 만날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발전적인 논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복지부와 두 직역이 국민건강을 위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약사-한약사간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대립은 국가 보건의료에 있어서도 도움이 될리가 없다. 국민적인 지지를 얻고 보건의료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두 단체는 상생의 노력을 진행해주기를 바란다. 보건당국은 두 직역을 반드시 테이블에 앉혀 일선 약국들의 숙원을 풀어주는 한편, 감정적인 대립을 넘을 수 있도록 책임있는 자세로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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