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정 편집주간

[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 정부가 발표한 강원지역 원격의료사업이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이다. 의료계의 반발이 워낙 격해 과연 정부의 계획대로 1차 의료기관(의원급)이 사업에 참여할지 주목되고, 사업이 시행 된다 해도 안전성이나 효율성을 제대로 검증해 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래서 벌써부터 반쪽짜리 실증사업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원격의료는 십 수 년 전부터 논쟁이 야기된 사안으로 그 본질이 매우 복잡하다.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활용하여 의료서비스를 혁신해야 된다’는 입장과 ‘효율성보다 환자안전이 우선이고, 의료전달체계가 훼손되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 평행선을 긋는 바람에 아직 제대로 된 툴을 갖추지 못했고, 법률적인 정비도 안 된 상황이다.

그런데 돌연 정부가 전국 7 곳의 규제자유특구 가운데 강원도를 디지털헬스케어 특구로 지정하여 원격의료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논란이 재 점화됐다.

특히 이번 원격의료사업은 정부가 ‘혁신기술을 시험하고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며 국민들 앞에 공언하였기에 되돌리기란 어렵다. 결국 원격의료의 둑을 정부가 허문 셈이다. 그러니 의료계의 반대를 의식할 리 없고, 어떻게 해서라도 형식을 갖춰 사업을 추진한 뒤 ‘충분히 검증됐다’며 제도화를 밀어붙일 수순이 예상된다.

이런 전망이 가능한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일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있긴 하지만 원격의료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요구가 높은 게 사실이다. 시대적인 관점에서도 이미 대다수 의료기관의 진료형태가 모바일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등 병원과 환자, 의사와 환자들이 온라인으로 소통하는데 매우 익숙해져 있다. 이는 스마트진료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로 볼 때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젖어 사는 젊은 세대의 경우 앞으로 병원이 코앞에 있어도 안방에서 원거리 진료(telemedicine)를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을 선호할게 뻔하다. 의료시장 또한 수요자를 중시하는 원리가 작동하기 마련이고, 당연히 ICT와 의료기술의 접목은 끝없이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된다면 원격의료는 굳이 도서나 산간 등 오‧벽지 의료서비스를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재택의료’에 가까운 서비스로 시장변화를 주도해 나갈 수도 있다.

아마 정부도 이같은 시대적, 사회적 정서를 읽고 '규제자유'라는 이름을 붙여 원격의료를 밀어붙이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변화가 가까운 장래의 현실이라면 현재의 정부 시책이 다소 무모하다 할지라도 원격의료를 무조건 배격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요즘 처럼 격앙된 분위기에서는 논의 자체를 꺼낸다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집권 여당이 지난 정부 때 부터 '원격의료는 안된다'고 동조해 오다 갑자기 노선을 바꾼 상황인데 피켓을 들고 목청을 돋운다고 해결책이 나올 것 같지는 안다. 둑을 새로 쌓는 특단의 대책을 세우거나 무너진 둑의 물길을 터주는 선택이 필요한 때로 보인다.

막연히 정부시책에 대한 불신으로 어정쩡한 실력행사로 맞서다간 행정가들의 책상위에서 제도의 툴이 만들어 질 소지가 다분하다. 그 과정에서 자칫 기형적으로 제도가 확립된다면 의약분업이나 의료이원화 이상의 폐해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의료계가 보다 냉정한 대응에 나서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원격의료가 '절대로 시행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국가와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파하여 동의를 받거나, 아니면 이번 기회에 한국형 원격의료를 의료계 주도로 설계하여 모델을 제시해 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4차 산업의 물결이 일렁이는 지금, 원격의료는 세계적으로도 디지털헬스케어의 가장 영향력 있는 트랜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의료계도 후자에 집중하여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병정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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