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류체계‧원가 산정‧적정수가 모두 ‘총체적 난국’
토론회서 제도개선 요구 봇물…‘비포괄 분류 기준도 모호’

[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정부가 중점 추진 중인 신포괄수가제도와 관련, 의료계가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하며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22일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과 전혜숙 의원이 공동 주최하여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개최된 ‘의료서비스 지불방식 정책변화와 의료산업 혁신의 지속가능성’ 토론회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의료계 연자들은 한 목소리로 신포괄수가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주제발표에서는 여러 가지 지적이 나오긴 했지만, 크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환자분류체계’, ‘비용 산정(원가) 근거의 부족’, ‘비포괄 분류의 고민’으로 나뉘어 제기됐다.

기본에 미치지 못하는 환자분류체계

환자분류체계는 포괄수가제도 및 신포괄수가제도의 지불방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작단계이다. 이처럼 중요한 시스템임에도 불구, 김석일 가톨릭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재의 환자분류체계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증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임상적 동질성을 신뢰할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며, 주진단 체크‧합병증‧동반질환‧중증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환자분류체계의 원인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한 질병분류체계와 코딩 지침’을 들었다. 김 교수는 “가장 기본적인 환자분류체계 요소 중 하나인 질병분류체계와 코딩지침이 복지부에 없고 통계청에 있다”면서 임상 현장과 호환성이 떨어짐을 지적했다.

현장과 유리된, 상이한 진단코딩의 문제는 차재명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도 함께 지적했다. 차재명 교수는 “진료기록에 지불제도에 맞는 진단코딩을 유도해 진료기록이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 ‘진료기록의 상병과 지불용 상병의 이원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희박한 비용 산정 근거

신포괄수가제와 포괄수가제(DRG)가 비용, 즉 원가 산정 근거가 전무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석일 교수는 “자본비용 상황에 대한 고민이 없고 DRG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점인 취약지‧희귀질환 적용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면서 “지방에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이 점차 늘어날 것이며, 현재 200명으로 묶여있는 희귀질환 최소환자 기준은 연간 발생이 200건이 안되는 환자를 모두 같은 군으로 묶는 비논리적인 상황을 연출했다”고 비판했다.

신의료기술에 대한 비용 산정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산희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단일공 복강경 수술에서 쓰이는 신의료기술과 신의료기술 연계 치료재료 및 장비들을 소개하며 “현재는 새로운 기구나 재료를 사용할 경우 DRG 수가 체계 안에서 별도로 사용해 병원 또는 의사가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DRG 내에서 ‘감안하지 못하는 비용’도 병원으로서는 부담이다. 이산희 교수는 “환자 상태에 따라 입원일수가 증가할 수 있고, 이 경우 행위‧치료재료 투입량도 함께 증가한다”면서 이 또한 DRG에서 대응하지 못하는 비용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수술 방법도 DRG 시스템 내에선 ‘주류로 들어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산희 교수는 “행위에 대해 평가 가능한 객관적 데이터 확보가 어렵고 대부분 보험 당국에서 기존의 비슷한 행위를 인용해 수가를 산정하기 때문에 행위의 난이도의 수술 결과의 장점이 반영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새로운 가치에 대한 비용 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게 발표자들의 설명이다.

이산희 교수는 아예 DRG에서 효용성과 사용률에 따른 수가반영 결정구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효용성이 충분하고 고빈도인 경우 수가에 100% 반영하고, 효용성이 불충분하지만 고빈도로 사용하는 경우 5:5 또는 2:8 등 제한적 급여 및 별도보상을 유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같은 희박한 비용 산정 근거에 대해 정부가 신포괄수가제도에서 내놓은 방안이 다름 아닌 정책가산이다. 차재명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정책가산은 참여 가산 5%, 효율‧효과성 15%, 공공성 15%로 책정돼있으며 이로 인해 신포괄수가제도 참여병원의 비포괄, 비급여를 모두 포함한 총 수가 수준은 100.4%에 이른다. 정책수가 이전 원가 보전율은 약 83%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차재명 교수는 ‘원가 산정이 잘 안된 상황을 정책가산으로 보전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석일 교수 또한 “병원의 특수성, 즉 자본 비용에 대한 고민이 원가 산정에 포함돼있지 않으며, 이러한 원가 산정의 불확실성을 정책가산으로 메꾸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비포괄 분리,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이날 발표자들은 ‘포괄의 범위’, 즉 고가 약제 등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함께 문제로 제기됐다. 차재명 교수는 “현행 비포괄 약제/재료에 대한 80% 산정은 진료의 선택권 저하로 인해 의료의 질 저하를 우려할 수 있다”면서 “비포괄 약제의 경우 남용의 우려가 적어 100% 비포괄로 처리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재명 교수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비급여의약품의 포괄/비포괄 분류를 공개하고 비포괄 항목 분류 기준 시 처방변동계수 20% 이상으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제품 단위 단가 대신 총 투약기관 및 총 투약 비용을 고려해 분류하고, 희귀의약품의 비포괄 분류를 국내 환자수 2만 명 이하의 질환치료로 확대하며, 100/100 환자 부담 명시된 의약품을 비포괄로 분류할 수 있도록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복지부, ‘정책가산, 제대로 원가 산정해도 남길 수 있어’

신포괄제도와 DRG를 포함, 지불제도 변화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현재 정책가산을 도입할 수밖에 없는 상항을 인정하면서도 제대로 된 원가산정이 이뤄지는 이후에도 일정 부분 남기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와 함께 현재 비포괄 80% 영역에 있는 약제/치료 재료를 점차 별도 보상에서 행위에 산입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중규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치료재료를 별도보상 해주는 이유가 일단 한시적으로 산정해놓고 나중에 행위로 넣기 위한 것”이라며 “현재 비포괄 80% 영역에 있는 약제/치료재료는 점차 행위로 편입돼 포괄 영역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책가산은 제대로 된 원가산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보정하기 위해 책정한 것”이라면서도 “향후 제대로 된 원가 산정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일정 부분은 정책가산을 남겨야 하지 않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신의료기술을 신포괄 영역에 별도 포함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모든 의료기관이 신의료기술을 쓴다면 이는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인프라적으로 모두 써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면서 기술의 범용성 등에 대해 초점을 맞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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