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대석
서울의대 내과 교수

- 허대석 서울의대 내과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우여곡절 끝에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 2월부터 진료현장에 실시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1년 5개월 만에 5만3900명이 존엄사를 선택했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작성자가 25만 6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1년간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한 만19세 이상의 성인 1137명의 환자 중 809명(71%)이 법정서식을 작성하였는데,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시행하면 생명을 일정기간 연장할 수 있으나 시행하지 않은 ‘유보’ 결정이 90%, 연명의료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가 ‘중단’ 결정한 경우가 10%였다.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결정 서식에 직접 서명한 비율은 법 시행 전 1%에서 29%로 현저히 증가하였다.

과거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인공호흡기 중단을 ‘살인방조죄’로 의사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전례로 인해,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의료를 일단시작한 후에는 환자의 사망 전에 중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김할머니 사건’과 같은 법원 판결이 없어도 적절한 절차를 밟으면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해졌다는 것은 큰 변화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시점의 통계자료를 뒤집어 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사망하는 28만명 중 약 5만 명만 법정서식 작성이 가능하고, 나머지 23만명은 연명의료결정법 절차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연명의료결정법 법정서식을 작성하고 있는 병원은 주로 상급종합병원들이고,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운영할 수 없는 중소형 의료기관에서는 연명의료결정을 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립이 어려운 작은 의료기관에서는 환자들이 사전에 등록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전산으로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 국민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두어도, 요양병원과 같은 의료기관에 입원하면 연명의료결정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서울대병원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말기암 환자의 임종 1개월 전 중환자실 이용비율은 2012년 19.9%에서 2018년 30.4%로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서 편안한 임종을 돕기 위해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이 의료서비스 이용형태에는 아직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임에도 마지막까지 연명의료에 매달리는 의료집착 현상이 당연시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임종문화 속에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불필요한 고통을 당하면서 임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의 입법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환자가 작은 규모의 의료기관에 입원해도 법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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