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병원, 근무시간 외 연구업무 ‘금지’ 시행…전산 ‘셧다운’·집에 가세요

주 52시간제 시행은 기업·노동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저녁이 있는 삶'으로 대변되는 삶의 질 개선 효과가 있는 반면, 초과 근무 등으로 채워지던 기존 업무량을 어떤 식으로 채울 것인가는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다. 사진은 고용노동부 '주 최대 52시간제 확대적용' 카드뉴스 중 일부.

[의학신문·일간보사=안치영 기자] 정부가 전공의특별법과 주 52시간제 시행 등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의 연구환경이 무너지고 있는 징후가 포착돼 관계자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최근 A병원은 노사위원회를 통해 근무시간 외 연구업무를 금지하는 방안을 논의,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근무시간 외 연구업무에는 논문 작성 혹은 자료 정리를 위해 근무시간이 종료된 이후에도 병원에 남아있는 경우를 뜻한다. 실험동물 관리 등 연속적인 업무를 분담하는 경우 등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병원 측은 직원들이 근무시간 외 연구업무를 수행하지 않도록 관련 사항을 진료과장회의, 교수간담회를 통해 안내하기로 했다.

새로이 A병원에 적용되는 규정대로라면, 전공의나 간호사, 의료기사 등 병원 종사자들은 근무시간이 끝난 이후에는 병원 내에서 임상연구나 자료 정리를 위한 전산망 접속 등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미 전공의의 경우 많은 수련병원에서 근무시간 외 EMR 접속 및 수정을 금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사회 전반에 퍼진 ‘근무시간에 대한 보수적인 원칙 적용’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본격화되면서 근무시간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이미 사회적인 이슈로 불거진 상태다.

이미 의료기관 인증 대비 회의, 감염관리위원회 운영 등 ‘진료 및 임상 외적인 업무’ 또한 무조건 근무시간 내에 처리하는 상황 속에서 논문 자료정리 등 연구업무 또한 ‘엄연한 업무’라는 것이 노조 측 입장이다. 병원 측에서도 ‘혹여나 연구업무 자체를 근무로 간주해 불상사가 생기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아예 근무시간 외 연구업무 자체를 못하게끔 조치하겠다는 판단 속에 이뤄진 조치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A병원의 이같은 상황을 전해 들은 일선 연구책임자급 교수들은 당황한 기색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한 학회 이사장은 “그럼 언제 연구하냐”고 되물으며 “임상 자료 다 싸들고 집으로 가야 하냐”고 한숨을 내뱉었다.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 과장을 역임했던 중견 교수는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전공의들이 병원에 남아 근무시간을 채우는 상황을 없애기 위해서 당직실도 없앴다”면서 “어차피 현 상황 속에선 일부 진료과는 ‘미래가 없다’고 얘기하는 마당인데 연구고 교육이고 다 무슨 소용이겠냐”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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