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정당한 의료인의 의료행위 비용에 '환수 불가' 판단…원심 파기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다른 한의사에게 명의를 대여해줬다는 이유로 건보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환수조치를 받은 한의사들에 대해,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정당한 자격을 갖춘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실시해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았다면, 비록 병원 운영 과정이 속임수 등에 해당한다 해도 건보공단이 함부로 상당액을 환수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의사인 A씨는 지난 2011년 11월 1일부터 2013년 6월 13일까지 자신의 명의로 서울 소재 B한방병원을 개설한 후 운영했다. 또 다른 한의사 C씨는 2013년 6월 14일부터 현재까지 A씨가 운영하던 병원을 이어받아 자신의 명의로 B한방병원을 운영해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4년 12월 2일 한의사 D씨가 A씨와 C씨에게 명의를 빌려 B한방병원을 개설 및 운영하는 등 의료법 제4조 제2항(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A씨와 C씨에게 각각 2억 3800여만원과 4억 160여만원의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A씨와 C씨는 D씨와 동업을 해 B한방병원을 공동으로 운영했을 뿐, D씨에게 명의를 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료법 제4조 제2항은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의 면허로 의료기관을 여러 장소에 개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며, 설사 자신들이 D씨에게 명의를 대여해줬더라도 D씨는 B한방병원만을 개설 및 운영했으므로 의료법 제4조 제2항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의료법 제4조 제2항에 관해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의 명의를 빌려 1개의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까지 공단이 금지한 것은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고 의료인의 직업수행의 자유 등 기본권까지 침해하는 것이라며, 요양급여 환수처분 취소를 법원에 청구했다.

이 같은 원고들의 주장에 대해,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들의 청구를 기각하고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 고등법원 행정부는 1심에서 판결한 바와 같이 A씨와 C씨는 D씨에게 고용된 후 자신들의 명의로 B한방병원을 개설해 줌으로 명의를 대여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법 제4조 제2항은 A씨와 C씨의 주장과 달리 의료인이 수 개의 의료기관을 설립하는 것을 막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방지해 개설 및 운영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함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다른 의료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이 이로 인해 침해되는 의료인의 불이익보다 작다고 볼 수 없으므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원심판결의 파기 및 환송조치를 내렸다. 대법원에 따르면, D씨가 비록 A씨와 C씨의 명의를 빌렸더라도 B한방병원의 개설 자금을 전부 부담했으며, 병원의 인사와 재무관리를 전담하는 등 실질적으로 B한방병원을 개설·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의료인의 자격과 면허를 갖춘 한의사가 병원에서 건강보험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인 환자에 대해 의료행위를 실시한 후 건보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수령했으므로, D씨가 A씨와 C씨의 명의를 빌려 개설한 의료기관이라는 사유만으로 요양급여비용 상당액을 환수할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즉, 정당한 자격을 갖춘 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해 건강보험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에게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의료행위를 실시했다면, 명의 대여 등 속임수나 그 밖에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 비용을 지급 받은 것에 해당하더라도 공단이 비용 상당액을 환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이 의료법 제4조 제2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 B요양병원이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병원이 수령한 요양급여비용이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이 말하는 부당이득 환수의 대상이라고 판단한 것은 관련 법리를 오해해 판결한 것”이라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에 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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